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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Dec 26. 2021

좋았던 책들

글쓰기의 방법, 동기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쓴 '생각에 관한 생각( Thinking, Fast and Slow)'이었다.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 사고의 편향(偏向)에 대해서 평생 동안 연구하였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다.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내더니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좋아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원숭이들 뿐만 아니라 인간도 그런 편향에 빠진다는 것을 대니얼 카너먼은 집요하게 증명하였다.


조삼모사는 내가 든 예이고, 대니얼 카너먼은 다음과 같은 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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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80달러짜리 연극 표를 두 장 샀다. 극장에 도착해 지갑을 열어보니 표가 없다. 이 여성은 연극을 보기 위해 다시 표 두 장을 살까? (표를 잃어버린 경우)


한 여성이 한 장에 80달러 하는 연극 표를 두 장 사려고 극장에 간다. 극장에 도착해 지갑을 열어보니 표를 사려고 넣어둔 160달러가 없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신용카드를 쓸 수는 있다. 이 여성은 표를 살까? (돈을 잃어버린 경우)


응답자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틀에 따라 다른 결론을 내린다. 표를 잃어버린 여성 이야기만 읽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 여성이 연극을 안 보고 그냥 집에 가리라고 생각하고, 돈을 잃어버린 여성 이야기만 읽은 사람들은 대부분 표를 사서 연극을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는 심리적 계좌와 매몰 비용 오류가 담겼다. 틀이 다르면 심리적 계좌도 다르고, 손실의 중요성은 그 손실이 어느 계좌에서 처리되느냐에 달렸다. 특정 연극의 표를 잃어버렸다면 당연히 그 연극과 연관된 계좌에서 처리된다. 비용은 두 배가 될 테고, 연극 한 편을 보는 비용치고 비싸다. 반면에 현금을 잃어버렸다면 ‘일반 수익’ 계좌에서 처리된다. 이 여성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약간 더 가난해지는데, 이때 자문할 내용은 가처분 재산이 약간 줄면 표를 사려는 결심이 바뀌겠느냐는 것이다. 응답자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 중에 현금을 잃어버린 이야기는 좀 더 합리적인 결정을 이끌어낸다. 이 틀짜기가 좀 더 나은 이유는 손실은 비록 표를 잃어버린 경우라도 ‘매몰’로 처리되고 매몰 비용은 무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이력은 문제가 아니며, 현재 주어진 선택과 그 선택의 예상되는 결과만이 문제될 뿐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든 중요한 것은 지금은 지갑을 열기 전보다 덜 부자라는 사실이다. 표를 잃어버린 사람이 내게 조언을 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같은 액수의 돈을 잃어버렸다면 표를 다시 사겠습니까? 사겠다면, 지금 가서 표를 새로 사세요.” 더 넓은 틀과 포괄적 계좌로 생각하면, 대개는 더 합리적인 결정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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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카너먼은 위 책에서 위와같은 예를 끝도없이 만들고 제시하면서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간은 항상 원인을 찾아내려는 경향(편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원인이 없는, 또는 찾을 수 없는 결과가 있다고 말한다. 구태여 찾자면 통계적 확률,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평균회귀 성향'이 원인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드 징크스'라는 것이 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ited)'라는 스포츠 주간잡지가 있는데 운동선수가 뛰어난 성적을 내다가도 그 잡지 표지 인물로 나오면 그 뒤로 성적이 뚝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유명한 스포츠 해설가들은 이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그 선수가 잡지의 표지 인물이 되면서 유명해졌고 그 유명해진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느껴서 그 다음 해에 성적이 안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표지 인물이 될 때 그 선수의 입장에서는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고 그 최고의 성적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표지 인물로 선정된 이후에는 성적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골프중계를 보면 1라운드 때 경이적으로 타수를 줄인 선수가 그 다음날 어이없이 망가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럴 때 골프해설가는 그 선수의 스윙동작의 문제 또는 심리적 압박감을 언급하면서 이유를 찾지만 실제의 이유는 평균 타수로 돌아가는 경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부자가 삼대(三代)를 가지 못한다는 것도 평균회귀 성향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삼대째의 인물이 무능하다거나 도박에 빠졌다거나 등등의 눈에 보이는 원인이 있겠지만 사실은 통계적 확률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2021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 새해계획을 짜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1년 후인 2022년 12월에 그 새해결심을 실천한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성공한 사람의 확률은 모든 분야에서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대다수는 참가자의 역할에 그치고 확률의 분모 숫자를 크게 하는데 기여할 뿐이다.


소설가 장강명이 쓴 '책 한 번 써봅시다'라는 책도 좋았다.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책을 한 권 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는 대단히 실용적인 안내를 한다. 좋은 내용이 많았지만 특히 다음의 몇 문장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콱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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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작가를 꿈꾸는 분들께 내가 제안하는 목표는 ‘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매 쓰기’다. 200자 원고지 600매는 얇은 단행본 한 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이다. 원고지 100매 분량의 단편소설이라면 여섯 편을, 원고지 30매 분량의 에세이라면 스무 편을 쓰라는 말이다. 하나의 제목 아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글들이어야 한다. 실용서도 마찬가지다. 원고지 30매 분량의 글은 막힘없이 뚝딱 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필력이 대단하거나 운이 엄청나게 좋다면 원고지 100매짜리 글도 술술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원고지 600매는 불가능하다.


작가의 일에는 주변을 둘러보고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것이 포함된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실용서든 마찬가지다. 이런 기획력 역시 훈련해서 길러야 한다. 반응하는 글(때로 배설하는 글)과 기획하는 글은 다르다.


뛰어난 사업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 안 되는 걸까? 중요한 건 ‘뛰어난 사업가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사업으로 내가 무엇을 얻을까’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지난주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몇 년 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써야 하는 사람이다. ‘의미의 우주’에 한 발을 들였고, 그 우주에 자신의 의미를 보태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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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는 가끔 내게 열심히 글을 써보라는 격려 메세지를 보내 준다. 물론 사람이 보내는 것은 아니다. 포스팅한 글에 라잇킷 숫자가 일정 수준을 넘었고 그 필자가 일정 기간 동안 새 글을 올리지 않으면 이런 종류의 메세지를 보내라고 알고리즘을 설정해 놓았고 그 알고리즘에 따라 챗봇이 내게 보낸 메세지이다.


그 메커니즘을 뻔하게 알면서도 그런 메세지를 받으면 뭔가 써야 될 것 같은 가벼운 압박감을 받는다. 의무감과는 다르다. 일종의 창작 욕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막상 뭐를 써야 할 지를 모르겠어서, 보다 만 넷플릭스 드라마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런데 장강명 작가는 ‘한가지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매를 쓰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한다. 골프 레슨 프로가 "닥치고!, 드라이버로 240미터를 똑바로 날리는 것을 목표로 하세요" 라고 훈련목표를 정해 주는 것과 같다.


또한 "작가의 일에는 주변을 둘러보고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것이 포함된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실용서든 마찬가지다. 이런 기획력 역시 훈련해서 길러야 한다. 반응하는 글(때로 배설하는 글)과 기획하는 글은 다르다."고 말한다.


이제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았다. 대학원생이 고심 끝에 박사 논문 주제를 정하고, 방대한 연구자료를 수집하고, 치밀한 논증을 통하여 주제를 파고 들어간다.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하면 박사 논문이 될 자격이 없다. 그 주제에 관하여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작가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책을 한 권이라도 내는 작가가 되려면 쓸거리를 찾는 일에 우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것도 작가의 업무 중 하나에 속한다, 즉 기획력이 있어야 한다. 쓸거리가 생기면 쓰는 것이 아니라 쓸거리를 의도적으로 찾아야 한다.


2022년에는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관하여 200자 원고지 600매(공백 포함하여 12,000자다) 분량의 글을 브런치에 쓰겠다.


애덤 브라운(Adam Braun)이 쓴 ' 연필 하나로 가슴 뛰는 세계를 만나다(The Promise of a Pencil: How an Ordinary Person Can Create Extraordinary Change)는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다.


애덤 브라운은 대학생 때 인도를 여행하게 된다. 길에서 만난 구걸 소년에게 묻는다. "너는 세상에서 무얼 제일 갖고 싶니?" 그 소년은 '연필'이라고 대답한다. 가난 때문에 학교를 갈 수 없었던 그 소년에게는 연필로 글을 쓰는 학교생활이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이다.


불과 25살의 청년이었던 그는 못사는 나라에 학교를 만들어주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는 5 년 만에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낙후된 지역에 약 200개의 학교를 만들어 주었다. 그가 만든 비영리단체 Pencil of Promise는 지금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 책은 애덤 브라운이 그 꿈을 이루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애덤 브라운은 그 책 서문에서 '목적이 있는 삶, 가슴이 뛰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썼다. 흔히들 하는 소리 같지만 사실은 너무도 중요한 이야기다.


블로그(브런치)에 가끔 글을 써서 포스팅 한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의 숫자가 나만 알게끔 표시된다. 불과 수십명에 불과하다. 그 수십명을 위해서 공들여서, 시간을 바쳐서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있어서 신나는 일이 된다. 스위스나 하와이 여행처럼 그냥, 무조건 신나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글을 쓰는 일은 내게 고역이 되는 경우는 없다.


불과 몇사람만이 읽더라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신나면 되는 것이다. 신나는 일을 한다는 그 자체가 글쓰기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그 동안 간과하고 있었다. 


유익해서가 아니라 어쩌다보니 책 읽는 취미가 생겼다. 나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싶고, 특히 야외활동이 포함된 취미를 가지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이제는 저항하지 않고 책 읽는 일을 더욱 사랑하기로 했다. 새해에도 좋은 책, 재미있는 책을 많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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