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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Jan 07. 2022

은퇴자의 시간

능동적 삶

아침에 눈을 뜰 때 마다 1000만원씩 돈이 생긴다는, 즐거운 공을 해보자. 대신 그 1000만원은 그 날 하루에 무조건 다 써야 한다. 돈은 벌기가 어렵지, 쓰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매일 1000만원씩, 1년 365일 동안 쓰라고 하면 아무리 쇼핑에 이골이 난 사람이라도 나중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매일 그냥 돈이 생기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다. 시간은 매일 24시간씩 공짜로 주어진다. 그 24시간은 어떻게든 소비된다. 


젊은 시절에는 24시간 중 많은 부분이 타율적으로 소비된다.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하다. 내가 원하는대로 시간을 쓸 수 없다. 


노인이 되고 은퇴할 시기가 가까워지면 일은 줄고 시간은 늘어난다. 돈이 있으면 다양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이 없어진 은퇴자에게 돈이 풍족할리가 없다. 


눈뜨면 매일 새로 생기는 24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 자유를 어떻게 행사할지 부담스럽다. 


은퇴자들이 시간을 쓰는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뉴스를 보는 것은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조금 지적(知的)으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똑같다. 뉴스를 열심히 보는 사람은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자라서가 아니라 달리 취미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두번째로 보편적인 것은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이다. 흔히 술이 동반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친구보다 술이 더 목적이다. 대화내용은 사실 별 것 없다. 술 마시고 싶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만나 비슷한 이야기를 되풀이 하면서 은퇴 이후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쁜 인생은 아니다. 삶에서 꼭 의미를 찾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나도 사실상 은퇴자의 길로 들어섰다.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은 뉴스를 포함하여 거의 아무 것도 안 보지만 넷플릭스를 열심히 보고 있으므로 별로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책을 제법 읽는 편이지만 책을 읽는 행위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것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텔레비전을 보고 친구 만나 수다 떠는 일이 되풀이되면 인생이 지루해진다. 수동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흐르는 강물에 누워서 물결 따라 떠내려가는 것이 수동적인 삶이고, 물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것이 능동적 삶이다. 행복감을 주는 요소 중 하나가 성취감이다. 수동적인 삶에서는 성취감을 느낄 수가 없다. 


돈이 더 필요하고 돈 버는 일을 하고 싶지만 평생을 바친 본업에서 은퇴를 하는 마당에 다른 일을 시작해서 돈을 벌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돈을 날리고 스트레스로 건강만 해칠 수 있다. 


생각해보면 하루에 24시간씩 매번 새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돈이 공짜로 생기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다. 단 시간을 잘 쓸 수 있을 때만 그렇다. 나는 능동적인 삶을 사는 것이 공짜로 매일 받는 시간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능동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첫째는 운동이고 둘째는 일본어공부다. 


운동은 이미 어느 정도 습관이 되어 있지만 더욱 철저히 하기로 했다. 새벽에 출근을 하면 사무실에서 반팔과 반바지의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스트레칭을 한다. 푸쉬업 bar로 20개씩 3세트로 푸쉬업 60개를 한다. 5kg 짜리 덤벨 한 개를 가슴 앞에 들고 20개씩 3세트로 스쿼트 60개를 한다. 5kg 짜리 덤벨을 양손에 들고 다섯가지 종류의 덤벨 운동을 각 12개씩 3세트를 한다. 고무 밴드를 철봉에 감고 한쪽 무릎을 그 밴드에 끼우고 턱걸이를 10개 한다. 고무밴드의 도움없이 맨 몸으로 턱걸이를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직은 요원하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플랭크를 1분씩 3회를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유산소운동을 할 차례이다. 실내 자전거(스핀 바이크)에 탄다. 평균속도 30km 이상이 나가도록 페달을 빨리 저어서 40분을 탄다. 얼굴에 땀이 비오듯이 흐르고 끝날 때쯤 운동복은 물에 젖은 수건처럼 된다. 근육운동은 재미있는데 유산소운동은 지루하다. 지루함을 줄이기 위하여 유튜브 보기 등, 딴 짓을 하면 바로 속력이 시속 30km 밑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러면 운동효과가 없어진다. 


운동이 끝나면 수건을 물에 적셔서 온몸을 닦는다. 샤워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무실에 샤워 시설이 없으므로 궁여지책이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운동복을 빨아야 한다. 세면대에 물을 채우고 세제를 조금 풀어 넣는다. 손으로 빤다. 땀만 씻어내면 되니까 열심히 빨 필요는 없다. 기능성이므로 빨아서 옷걸이에 걸어 놓으면 짧은 시간 안에 마른다. 몸을 닦은 수건도 빤다. 땀에 젖은 머리도 물에 적셔서 헹구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다. 그렇지 않으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마구 헝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이다. 출근하자마자 이렇게 운동을 한다. 아침에 운동을 하는 것은 10년도 더 된 오랜 습관이다. 사무실 근처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해 왔다. 코로나가 발발한 이후에는 마스크를 끼고 운동을 하라고 하기에 사무실에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멋진 철봉과 스핀 바이크를 샀다. 샤워가 문제였는데 물수건으로 몸을 닦는 방법으로 대신하기로 한 것이다.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일본 전국을 기차로 여행하는 것이다. 일본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말하기, 쓰기는 잘 못한다고 해도 듣기와 읽기는 어느 정도 해야만 할 것이다. 20여년 전에 일본어 공부를 했었다. 거의 초급 수준이었다. 


일본어공부를 다시 하기로 했다. 공부는 시험을 전제로 해야 제대로 된다. 그래서 JLPT에 응시하기로 했다. JLPT는 1년에 두 번, 매년 7월과 12월의 첫째 주 일요일에 시험이 있다. 1급부터 5급(N1~N5)까지 등급이 있는데 나는 2022년 12월에 시행하는 시험의 N3 등급에 도전할 생각이다. 


매일 1시간씩 일본어 공부를 한다. 출근해서 위와같이 운동을 하고 바로 이어서 일본어 공부를 한다. 핸드폰에 있는 타이머 앱을 켜고 1시간을 설정한다. 종료 알람이 울릴 때까지 몰입한다. 중간에 방해받는 일이 있으면 타이머 일시정지를 시킨다. 공부가 재개되면 타이머도 재개한다. 농구시합에서 in play 때만 시간이 진행되는 것과 같다. 


일본어를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교재도 샀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튜브에 들어가 봤다. 역시 유튜브에는 없는 것이 없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강의가 있었다. 화면에 문장이 나오고 일본인이 문장 하나를 몇 번 반복하여 읽어준다. 그 다음 문장이 나오고 역시 일본인이 반복하여 읽어준다. 문장과 단어를 통째로 외운다. 그래야 단어가 쉽게 기억된다. 단어만 별개로 외우려면 잘 외워지지 않는다. 


외국인이 언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문법 공부다. 문법은 언어공부의 지름길이다. 예전에 일본어 공부를 할 때 문법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어휘 확보다. 어휘는 탄약이다. 좋은 총이 있어도 탄약이 떨어지면 무용지물이 된다. 


일제 36년동안 일본인들은 자기 식의 한자(漢字)를 우리 언어에 심어 놓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네의 시스템을 우리 나라에 적용시켜 놓았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어 공부를 하면 수월한 점이 있다. 한자로 쓰여진 단어가 대부분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일부 다르게 쓰는 한자어도 물론 있다. 예를들어 우리가 '경우(境遇)'라고 쓰는 것을 일본어에서는 '場合(ばあい)'이라고 쓴다. 


이 번 기회에 아주 오래간만에 한자 공부도 다시 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읽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잘 써지지 않는 글자가 가끔 있다. 네이버 사전을 사용하면서 늘 고마워하고 있지만 한자 사전을 이용하면서 더욱 그런 마음이 생겼다. 언제 그 기능이 추가됐는지 몰라도 네이버 한자 사전에서는 '획순보기'라는 기능이 있다. 획순 대로 글자를 쓰는 것이 그림으로 나온다. 


또한 일본어 사전에서는 한자를 한국어로 어떻게 읽는지도 설명해준다. 에를 들어 さら의 뜻을 찾으면 [皿]라고 한자가 병기되어 있고, 우리 나라 말로는 '명'이라고 읽는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학창시절에 국어와 영어를 잘 했다. 어학에 소질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무래도 어휘 암기가 잘 안된다. 뇌의 기능 중 암기력이 떨어졌다. 그렇지만 JLPT N3 가 아주 어려운 등급도 아니고, 또한 좋은 공부방법을 찾아서 공부한다면 하루에 1시간씩만 공부해도 올해 12월의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과 일본어, 이 두 개를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다. 2022년 마지막 달의 마지막 날에 과연 이 약속을 1년 동안 잘 지켰는지 점검해보겠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정초만 되면 많이 등장한다. 작심삼일로 그치는 사람들의 특징은 오랜 시간을 참고 견뎌내고 해 냈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을 맛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잡아 줄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이 있다. 틀렸다. 아이들을 물고기 사냥의 명수로 만들려면 물고기 맛을 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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