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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Jan 29. 2022

은퇴자의 시간(2)

과정>결과

예순살 때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예순살이 되면 자전거를 타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자전거로 전국을 누볐다. 인증센터가 있는 모든 자전거 길 1,850km를 완주하여 그랜드슬래머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 후에는 높은 곳을 올라가기로 마음 먹었다. 지리산 고개가 첫 목적지였다. 집 근처에 있는 고갯길을 찾아 다니면서 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오르막 길에 적응이 됐다.


작년 가을에 지리산을 갔다. 성삼대, 정령치, 지안재, 오도재를 하루 안에 다 돌았다. 집 근처의 고갯길과 지리산의 고갯길은 차원이 달랐다. 가파른 경사의 장거리 오르막 길을 자전거로 가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그만큼 재미도 남달랐다.


지리산을 가기 위하여 오르막 훈련을 하면서 서글픔을 느꼈다. 훈련을 할수록 허벅지는 강해지겠지만 나이가 뒤쫓아와서 애써 일구워 놓은 허벅지 근육을 갉아먹을 것 아닌가. 예를 들어 80세 때는 아무리 악을 써도 무정차로 지리산 고개를 오를 수는 없을 것 아닌가.


그러니 역시 시간이 중요하다. 더 늙으면 할 수 없는 것이 무수히 많다. 시간은 고맙게도 공짜로 주어진다. 공짜로 공급되는 귀중한 원자재다. 그 원자재를 어떻게 쓰느냐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지난 번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젊을 때는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못 쓴다. 마치 매일 누가 돈 1,000만원을 주면서 그 중 얼마는 여기에, 나머지 얼마는 저기에 쓰라고 지시를 받는 식이다. 그러나 은퇴자가 되면 그 시간은 전체를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시간이 공짜로 주어지니까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하게 된다.


어떻게 시간을 써야지 소중하게 쓰는 것이 될까? 반대로 생각하면 어떻게 쓰면 시간을 버리는 일이 될까?


즉각적으로 재미를 느끼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러나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돈이 많이 든다. 둘째 지겨워진다.


돈이 너무 없으면 삶이 괴로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돈이 있어야 한다. 아니, 돈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돈을 벌기는 무척 어렵다. 또한 돈이 많다고 행복이 계속 추가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이를 샤워에 비교했다. 돈 없이 사는 것은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하는 것처럼 괴롭고 불편한 일이 된다. 돈이 있으면 더운 물로 샤워할 수 있다. 편안하다. 그렇다고 계속 물을 더 뜨겁게 하여 샤워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더운 물이 되면 그 이상은 무의미하다. 재벌들이라고 매일 매일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을 잘 쓰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능동적 삶을 사는 것이다. 성취감을 주기 때문이다. 지리산 고개를 자전거로 올라가는 고생을 하는 것은 그 성취감을 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러가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달성을 위하여 매일 매일을 쫓기면서 사는 것은 오히려 시간을 버리는 일이 된다.


너무나 하기 싫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목표를 정해서는 안된다. 12월에 있을 일본어 능력시험 합격을 목표로 하루에 1시간씩 공부하기로 하였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만, 매일 1시간씩의 일본어공부가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 된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그 합격이 뭐가 그리 중하다고 매일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하겠는가.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새 골프공이 생기면 아끼지 말고 그 새공부터 먼저 쳐야 한다. 옷도 좋은 옷부터 입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유행이 지나가서도 못입는다.


말이 쉽지 실천하기는 어렵다. 언제 죽을지 모를 뿐 아니라 나아가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살기 때문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발상의 전환을 진심으로 하기는, 눈 앞에서 해가 움직이는데 사실은 해는 가만이 제자리에 있고 지구가 돌고 있다는 인식을 진심으로 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은퇴자는 그런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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