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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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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남효진 Apr 24. 2017

1.2. 기대와 다른 현실

여행이 끝나면 일상이 온다.

리서치를 위해 만난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 물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지.

미국에 온다는 것 때문에 크게 설레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다들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새롭게 출발할 수 있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경험할 수 있고, 미래와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다음 직업을 준비하고 싶어 했다. 또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휴식하며 재충전하고,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지내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육아휴직으로 육아에 전념하며 복직을 앞두고 있던 경우, 기대만큼 실제로 여유를 즐기기가 쉬웠다. 3년 가까이 미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다가 귀국과 복직을 준비하고 있던 미소씨가 말했다. “여기 살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학교나 직장 다니면서 쉰 적이 없어서 이렇게 쉬는 것이 처음이에요. 한국은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하고 그런 거 보면 불안하죠, 우리도 빨리 저렇게 해야겠다, 우르르 따라가는 게 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신경 써야 될 게 많잖아요. 이 사람, 저 사람 계속 부딪히고. 그런데 여기서는 우리 가족밖에 없으니 너무 좋았어요. 여기 살면서 마음의 여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이렇게 여유롭게 보낸 적이 없어요."

그러나 진로 계획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초기의 여유는 금세 불안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시작됐고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했다. 또한 가정에 충실하고 여유를 즐기는 삶은 좋지만, 진로 면에서 정체되어 있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한국에서 약사로 일하다가 남편과 함께 미국에 와서 쉬는 시간을 가졌던 혜원 씨가 말했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일이 있고 잠깐 쉬는 거라면 당연히 좋죠.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면 이렇게 계속 쉬는 거잖아요. 그건 불안하더라고요.” 그리고 내 앞에 주어진 공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건지, 묻고 또 묻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 온 하영 씨가 말했다. “남편이 학교를 시작하면서부터 학교가 워낙 바쁘니까 저는 아침에 학교 갈 때 인사하면 밤늦게에나 보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뭐를 해야 하지? 내가 이러려고 왔나? 저는 되게 잘 할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니까 이게 안 되는 거죠.”

‘쉬는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실제 경험

물론 고민과 혼란의 시기를 거쳐 다시 제 길을 찾은 사람들은 지난 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회상했다. 그러나 이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겪어낸 후 얻은 긍정화된 결론이었다. 대개의 경우, 해외로 이주하면서 진로까지 불확실해진 상황은 처음의 기대만큼 행복하기 어렵고 다짐만큼 여유로울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로 이주하는 변화가 자기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단지 기회가 돼서 외국에 가고 남편을 위해 같이 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내 인생과 생활과 진로가 송두리째 바뀐다는 것은 시작한 후에 하나하나 겪으며 얻게 되는 깨달음이었다. 가족을 위해 과감히 결정하고 따라온 길이라 해도, 내 길과 정체성을 다시 만드는 일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았다.

철학자 이사야 벌린 Isaiah Berlin에 따르면, 자유에는 소극적 자유(~으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와 적극적 자유(~로의 자유, freedom to)가 있다. 익숙한 환경, 지겹고 반복적인 일로부터 떠나 자유를 찾았을 때, 우리는 여유롭고 간섭 없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잠시 행복하다. 그러나 그곳이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를 허락하지 않을 때 당황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나는 적극적 자유가 필요한 사람이었음을. 소극적 자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음을.

(본문에 나오는 인터뷰 참가자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