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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Aug 17. 2020

전담 간호사와 1인실에서 출산을 하고

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내 출산은 유도분만이 예약되어 있던 39주 1일의 새벽에 양수가 터지면서 시작되었다. 아침 7시에 분만 병동에 전화를 걸어 입원 자리가 있는지를 확인 후 8시까지 병원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새벽 3시 30분에 양수가 터지면서 조금 일찍 움직이게 되었다.


새벽 4시에 분만 병동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후 출발해 4시 30분에 분만 병동 입구에 도착했다. 출산 예정 환자로 11월에 Overlake Hospital에 미리 사전등록(pre-registration)을 마쳤기에 병동 입구에서 건강보험 회원카드를 보여준 후 잠시 기다리다 마중 나온 간호사에 의해 Obstetrical Emergency Department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방으로 안내됐다. 방문 앞에는 KEEP CALM AND WAIT FOR LABOR라는 패널이 붙어 있었다.


사진. 출산 병동 출입문 밖에 위치한 산과 응급실(Obstetrical Emergency Department).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방으로, 커튼으로 구분된 공간에 모니터링 기기를 갖춘 여러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크기는 작지만 응급실이기 때문에 30분 정도 머무른 비용으로 2,000불이 조금 넘는 비용이 보험사에 청구되었다.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침대에 눕자마자 간호사가 동의서를 내밀었다. '케어와 재정 책임에 대한 동의서'(Consent to Care and Financial Responsibility)라고 이름 붙은 종이에는 의료진들이 필요한 만큼 치료와 케어를 제공하는 데 동의하며, 의사들이 병원 소속이 아닐 수 있음을 이해하고, 병원이 그러한 의사들의 행위나 누락된 행위에 책임이 없고, 병원에서 내게 제공된 치료나 검사에 아무런 보장이나 약속이 없음을 알고 있다는 내용과 재정적 책임에 대해 동의한다는 등의 내용이 나와있었다.


사실 동의서의 구체적 내용은 퇴원 후에 읽어봤다. 당시에는 뒷면까지 읽어볼 생각도 못했다. 양수가 터지고 아이가 어떤 상태가 될지 모르는데 동의서 내용을 따져가듯 읽어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무엇을 요구하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법적 책임과 재정적 책임에 대해 서술한 심각한 동의서였지만, 양수가 터져 불안한 나는 동의서 내용에 크게 고민할 여유 없이 서명했다.


양막 파수가 확인된 후 처음 만나는 KP 당직 의사가 침대로 와서 앞으로의 순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임신 내내 유산, 기형아, 조산, 사산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했던 나는 드디어 의료진들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는 병원에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사진. 산과 응급실 침대에 눕자마자 간호사가 건네 준 동의서

짐을 챙겨 들고 병동 안으로 들어와 분만 병실(Birthing Room)로 안내를 받았다. 진통부터 분만까지 진행되는 1인실 병실은 한국 대학병원의 2인실보다 약간 큰 크기로, 투어 때 미리 둘러본 병실보다 사이즈가 컸다. 환자 침대 옆에 컴퓨터와 모니터링 기기가 있었고 보호자를 위한 간이침대가 있었다. 작은 크기의 화장실에는 양변기와 함께 아담한 사이즈의 자쿠지가 있었다. 진통부터 분만까지 이동 없이 이 방에서 모든 것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나의 담당 간호사라는 J가 병실 물품을 알려주고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리고 내게 좀 전과 같은 동의서를 다시 내밀었다. 이번에는 아기를 위한 동의서에 사인할 차례였다. 세상에서 아이를 위해 처음으로 서명하는 일이 미국 병원의 재정 책임을 위해서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기와의 관계에 Mother이라고 적고 사인했다.


J는 내가 입원한 새벽의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나를 담당했다. 내 병실과 병동 스테이션을 수시로 오가며 나를 계속 챙기기에 근무 시간 중에 몇 명의 환자를 담당하는지 물었더니, 간호사 1명이 산모 1명을 케어한다며, 태아도 같이 책임지므로 결국 2명을 맡는 셈이라고 했다. 나만의 병실에서 나만의 간호사가 내 옆에서 머무르며 나만을 도와주는 의료 서비스를 처음 경험하기에 황송했다. 겉보기에 오래된 병실이 알고 보니 VIP 병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J는 화장실 문에 붙은 패널에 앞으로의 계획을 적어가며 나와 남편에게 설명해주었다. 유도 분만의 시작으로 자궁 경부를 부드럽게 하고 수축을 자극하기 위해 4시간마다 Misoprostol을 경구 복용할 것이고 양수가 먼저 터졌으므로 감염 예방을 위해 내진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분만에 대해 내가 원하는 바를 묻고 이를 패널에 기록해두었다.


사진. 출산 병실에서 나만을 전담한 간호사 J가 패널에 앞으로의 일정과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며 내용을 기록했다. 또 분만 과정 중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른 의료진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적어두었다.

진료 때 만났던 Dr. L을 병실에서 다시 만났다. “언제쯤 출산할 수 있을까요?” 묻는 내게 Dr. L은 “저녁이 되거나 내일이 될 수도 있지만 언제쯤 일지 확실하지 않아. 다만 확실한 건 내일은 네가 더 이상 임신해있지 않을 거라는 거지.”라며 웃으셨다.


Misoprostol을 3번 복용하는 동안 통증은 점차 심해졌다. J는 부착하고 있던 태아 모니터링 기기를 무선 기기로 바꿔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짐볼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통증이 더 심해지자 병실 안 자쿠지에 물을 받은 뒤 내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마사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마저 도움이 되지 않자 진통제를 주사해줬고, 진통제를 맞았음에도 줄어들지 않은 통증에 체면 차릴 것 없이 침대 위를 굴러다니자 마취과 의사를 연락해 경막외마취 시술을 받도록 도와줬다. 아이의 상태가 괜찮은지 묻자 J가 말했다. “여기에 온 이상 너와 아기는 우리가 책임지니까 걱정하지 말아.” 아픈 상태에서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경막외마취 시술 후 통증은 느끼지 못했으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간호사가 30분 단위로 체위를 변경해줬다. 왼쪽으로 누웠다 오른쪽으로 누웠다 앉는 자세로 체위를 바꿀 때마다 내 무거운 몸을 돌리고 팔다리 사이사이에 베개를 넣어줬다. 또 태아의 심박동이 떨어질 때마다 체위를 다시 변경하고 산소마스크를 씌워줬다.  


J의 근무가 끝날 즈음 J가 인수인계를 하며 내 두 번째 간호사인 S를 소개했다. 경막외마취를 맞은 후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게 되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간호사는 내 체위를 수시로 변경해줬고 그 사이 진행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새로운 당직 의사인 Dr. W와 담당 간호사가 내진을 했다. 새벽 3시가 넘어 자궁 경부가 다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힘주기(push)를 할 시간이라고 했다.   


힘주기를 하는 동안 S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 다리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회음부를 마사지하며 진통이 올  때마다 힘주기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나를 붙잡고 격려했다. Dr. L이 KP에서는 분만 때 가급적 회음부 절개(Episiotomy)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냥 절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가 계속 옆에서 회음부를 마사지하며 열상을 막기 위해 준비시키기에 가능한 것 같았다. 간호사는 침대 옆 컴퓨터를 잠시 사용하다가도 진통 그래프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힘주기를 도우러 내 옆으로 왔다. 3시 30분부터 시작된 힘주기가 끝없이 이어졌고 매번 열심히 노력했다. S의 근무가 끝나면서 다음 간호사와 인수인계를 했다. 새 간호사도 힘주기로 정신이 없는 내 곁에서 마사지를 계속하며 힘주기를 도왔다.


사진. 출산 병실의 환자 침대 옆에 위치한 워크스테이션과 모니터링 기기

4시간 동안 끝없이 힘주기를 이어가다 아침 7시 30분이 되었을 때 처음 만나는 당직 의사 Dr. W가 내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한국의 산모들이 출산 후기에서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최악의 케이스, 바로 자연분만을 시도하며 진통을 다 겪은 후 응급으로 제왕절개를 하는 케이스에 나 역시 걸렸음을 느꼈다. 의사는 더 이상 기다리면 아기가 위험하다며 제왕절개를 권했다. 허탈했고 아쉬웠지만 내게 남아있는 이성을 끌어모아 즉시 동의했다. 병실 안의 사람들이 갑자기 바쁘게 움직이며 나를 수술실로 옮길 채비를 하는 사이, Dr. W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내게 자신에게 요청할 것이 있는지 물었다. 위급한 순간에도 존중받는다고 느꼈다. 경막외마취 시술 후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직접 버튼을 눌러 주입 용량을 추가할 때 몇 차례 메스꺼움을 느꼈던 나는 항오심제를 부탁했다.


의학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 채로 복도 건너편의 응급 수술실로 급히 옮겨졌다. 환한 수술방 안에 많은 사람들이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병실 침대에서 수술방 침대로 옮겨졌다. 경막외마취 시술 때 만났던 마취과 의사에게 아기가 나오면 나는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내 위에 놓인 거울을 통해 아이가 나온 후 바로 탯줄이 잘리는 모습이 보였다. 태맥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다 아이 아빠가 탯줄을 자르고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눈을 맞추며 초유를 먹이는 것 같은 여유와 감동의 기회는 사라졌고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유도분만부터 수술까지 27시간의 긴 과정 끝에 보라색으로 세상에 나온 아기는 신생아 전문의의 처치를 거쳐 NICU로 옮겨졌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원래의 분만 병실로 옮겨진 후였다. 마취로 정신없는 와중에 간호사가 내게 초유를 짜내어 NICU에 있는 아기에게 먹이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했다. 다른 간호사와 남편이 회복 병실로 옮기기 위해 짐을 챙기는 동안, 간호사가 한참 동안 내 양쪽 가슴을 공들여 마사지하며 초유를 짜서 작은 스푼과 면봉에 묻혔다. 정신없는 상태에서 간호사의 행동을 지켜보다 내 가슴에서 젖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무엇보다도 간호사가 나와 내 아기를 위해 내 가슴을 정성 들여 마사지하며 샅샅이 초유를 찾고 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간호사는 방울방울 나오는 초유를 스푼으로 긁어 작은 통에 담고, 스푼으로 옮겨지지 않는 초유는 면봉에 흡수시켜 조금이라도 버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 초유를 확보한 간호사는 초유가 묻은 스푼과 면봉을 챙겨 NICU로 갔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복도를 이동해 출산 후 회복 병실인 MBU(Mom & Baby Unit)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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