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년이 도道를 찾아 길을 떠났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어지러워진 자신의 마음을 구원하는 것은 도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도를 깨달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다. 불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와 철학관을 찾아 헤맸고 밤낮으로 명상을 하며 도를 깨닫기를 소망했다. 그는 도를 깨달아 부를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도 했으며 좋은 부인과 자식들을 얻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메꾸기 위해 그는 다시 도를 찾아 떠났다.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도에 관한 책들을 읽고 위대한 스승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도를 깨달을 수가 없었다. 평생 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는 이곳저곳을 헤매다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노숙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길거리에서 잠을 자다 옆에 있는 한 노인의 부름에 잠에서 깼다.
당신은 왜 이렇게 노숙하는 신세가 되었소? 노인이 그에게 물었다.
평생 도를 찾아 헤매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 나와 똑같구먼.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르신도 저처럼 도를 깨닫기 위해 길을 헤매고 계시나요?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아니, 나는 평생 돈을 좇았네.
어제 명상을 하다가 불현듯 진정한 도라는 것은 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외부에서 도를 찾는 것을 이제 멈추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많은 책을 읽고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웠고 그중 몇 개의 것들은 효과도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속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나의 내면을 채워 줄 그 무엇.
하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해야 했던 것은 외부에서 깨달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계속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에고의 그림자에 등불을 비추는 일이어야 했다.
나는 항상 내가 새장 속에 갇혀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항상 가슴이 답답하고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스무 살을 넘기자마자 독립을 하고 외국에도 나가 살아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밖으로 나가도 나는 여전히 새장 속에 갇혀 있었고 날개가 있어도 나는 법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생각했다.
새장 속에 갇혀 본 적이 없는 새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새장 속에 갇혀 봐야 하늘을 날았을 때 내가 자유롭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작가 이외수가 집필을 위해 집에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고 글을 썼을 때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자신을 가두어야만 좋을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야.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이외수는 자신을 가두기 위해 감옥을 만든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기 위해 감옥을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천재는 정신이 나가야 한다. 정신 밖으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우리도 그렇게 밖으로 나가기 위해 스스로 새장 속으로 들어온 것은 아닐까? 삶을 경험하고 희로애락을 느끼고 고통받기 위해 '삶'이라는 새장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철저히 새장 안에 갇혀 있음을 견뎌내는 것이 우리의 미션일 것이다. 그냥 살아 내는 것. 우리는 그냥 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삶이던 모든 것은 그저 하나의 새장과 같은 장치일 뿐이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새장으로 들어왔고 나를 알기 위해 나를 지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평범한 오늘을 잘 사는 것이 도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외부로부터 도를 찾건 돈을 찾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우리는 자신의 안에 있으면 된다. 진정한 나는 내 안에 있고 모든 진리 또한 내 안에 있다. 새가 새장에 갇혀 있건 하늘을 날 건 그의 고유한 정체성이 바뀌지 않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