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미 안투네즈 Jul 08. 2022

똥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Her Tea Leaves (tumblr)






며칠째 주적주적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볕이 땅 밑으로 떨어지자 나는 한껏 좋아진 기분으로 아라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밝은 햇살 아래 선 나의 작고 귀여운 아라는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앙증맞은 손으로 떨어져 있는 솔방울들을 줍더니 마치 식물을 심듯 모래사장에 정성스럽게 솔방울들을 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을 혼자 즐겁게 놀고 있던 아라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불현듯 조용한 놀이터를 휘감은 날카로운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쥐고 있던 핸드폰도 떨어뜨린 채 헐레벌떡 아라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눈물을 떨어뜨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라의 손을 보니 소량의 똥이 묻어있었다.


나는 바로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서 아라의 손을 닦고 또 닦았다. 그리고 아라가 놀고 있던 모래사장을 살펴보니 누가 개똥인지 사람 똥인지 모를 똥을 모래 속에 숨겨 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이기적일 수 있을까? 다른 곳도 아니고 어떻게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 더러운 똥을 숨겨 놓을 수가 있을까? 만에 하나 아라보다 더 어린아이들이 놀다가 똥을 먹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이런 짓을 했을까? 나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화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급하게 가슴속에 꾹꾹 눌러버리고는 아라를 유모차에 넣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라의 손을 비누로 벅벅 문질러 닦고는 잠시 쉬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은 잠깐의 쉬는 틈도 허용하지 않고 이기적인 사람들에 대한 각종 예시를 들어가며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전날 읽은 이기주 작가님의 '언어의 온도'라는 책에서 본 사자성어가 생각이 났다.


'좌우 봉원左右逢源'


좌우, 즉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사물과 현상을 잘 헤아리면 근원과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좌우 봉원'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며 혹시 오늘 만난 똥에서도 배울 것이 있을까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라는 유모차에 절대 가만히 앉아있는 법이 없는 아이다. 항상 까까를 달라고 하거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주어달라고 해서는 손에 무언가를 꼭 쥐고 있어야만 가만히 있는다. 그런데 오늘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라가 두 손을 펼치고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라는 아마도 내가 무서웠을 것이다. 나는 아라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똥을 버린 사람에게 화가 났을 뿐이었지만 아라는 그냥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무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두려워했을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내가 화를 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똥은 그냥 똥일 뿐인데 왜 나는 거기에 각종 스토리를 만들어 내 가며 화를 냈을까? 어쩌면 지나가던 길 잃은 고양이의 똥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그곳에 묻어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똥은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스토리도 없이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노는 곳에 똥을 버린 이기적인 사람들'을 기어코 만들어서 화를 낸 것은 나 자신이었다.


결국 나는 내가 만든 스토리에 화가 났을 뿐, 똥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화의 불똥은 아라에게까지 튀었다.


어쩌면 모든 감정들은 다 이렇게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도 분노도 우울함도 기쁨도 내가 만든 스토리에 의한 반응으로 생겨나는 것일 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아무 이야기 없이 그냥 일어난다.


나는 똥을 보고 각종 스토리를 만들어 가며 화를 낼 수도 있었고, 종이에 잘 담아 다른 사람들이 같은 피해를 겪지 않도록 쓰레기통에 버리고 기쁨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냥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일 뿐이었다.


그렇게 똥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나는 혼자 놀고 있던 아라를 꼭 안아주었다. 그러자 마치 아라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라와 점심을 맛있게 먹고는 청소를 하고 있는데 전날 남편이 버리지 않고 쌓아놓은 바나나 껍질과 휴지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은 그 쓰레기들을 보자마자 즉각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왜 이 사람은 절대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없을까?'


나의 머릿속은 매일같이 쓰레기를 쌓아놓는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속을 붉게 태울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차 싶었다. 나는 또다시 스토리를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자 갑자기 가슴이 시원해지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오늘은 똥과 쓰레기의 날인가 보다'

나는 갑자기 똥과 쓰레기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즐겁게 청소를 마쳤다.


그렇게 이상한 깨달음은 똥에도 있었고 쓰레기에도 있었다.









이전 10화 포솔레 솔라시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