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는 종종 우박이 내린다. 우박이 익숙지 않고 일기예보를 항상 보고 살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가끔씩 내리는 우박을 맞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나는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우박을 피한다.
작년 겨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딸 아라와 놀이터에 갔을 때의 일이다. 혹독한 추위가 며칠째 계속되자 집에만 있는 것이 아이에게 안 좋을 것 같아 옷을 몇 겹씩 입고 놀이터에 갔다.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도착하자마자 빗방울들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작은 빗방울 정도 신경 쓰지 않을 나였지만 그날따라 추운 날씨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순간적으로 불꽃처럼 솟아올랐다. 나는 마치 무언가에 이끌린 듯 잘 놀고 있는 아라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라는 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다시 놀이터로 돌아가야 하나를 두고 한참을 갈팡질팡 하며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작은 아라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집에 가는 척을 했다. 그러자 겁에 질린 아라가 급하게 뛰어오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화도 나고 서운한 아라는 크게 울어댔고 나는 그런 아라를 등에 업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왜 아라를 이렇게 성급하게 데리고 왔을까, 왜 그냥 조금 더 공원에서 놀게 하지 못했을까, 빗방울이 뭐가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아라를 겁먹게 하고 상처 입게 했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속상한 마음과 아라를 등에 업고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현관문에 열쇠를 꽂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에서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하게 창문을 강타해대는 우박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두려움과 죄책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것일까? 너무 집에만 있으면 아이 발달에 안 좋을 텐데. 비 오는데 밖에 너무 오래 있으면 감기 걸릴 텐데. 하지만 이런 걱정들이 과연 아이를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될까?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런 걱정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나는 엄마로서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지 명확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라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고 있을까?
처음에는 막연하게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공부를 일찍 포기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면 인생에서 가능한 선택지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공부를 잘해보지 못했는데 그 길이 좋은 길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만을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성공한 삶은 어떨까?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 주변에 가장 성공한 사람이 누가 있나를 생각하다 보니 아빠가 떠올랐다. 우리 아빠는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신문에 이름이 날 정도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했고 좋은 집과 차, 경제, 가족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정말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을 때 아빠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다음 성공'이었다. 성공에는 끝이란 없었다.
성공한 아빠를 둔 덕분에 내가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가지는 성공이 행복을 결정짓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 눈에 비친 아빠는 언제나 아무것도 모르고 앞만 보고 열심히 뛰어가는 어린아이처럼 위태롭고 외로워 보였다.
결국 모든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그럼 불행은 무엇일까?
나는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속에서 계속해서 부족한 점을 찾는다. 그리고 나에게 없는 것을 갖게 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만 이루어지면, 저것만 이루어지면.
집에 들어가면, 밖에 나가면, 아이야 네가 공부만 잘하면, 아이야 네가 성공을 하면, 아이야 네가...
우리는 어쩌면 행복한 아이를 원하면서도 아이에게 끊임없이 불행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 지금 이 순간 속에서 부족함을 찾도록 엄마인 내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현실과 싸우지 않고 언제나 현실 속에서 좋은 것을 찾는 방법 즉 현실과 친구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는 언제나 아이의 지금 이 순간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대단한 무언가를 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던 더 이상 무엇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호주에 있을 때 영어 공부를 하러 와서는 매일같이 학원을 땡땡이치며 서핑만 하던 프랑스 친구에게 왜 맨날 서핑만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그 친구는 농담처럼 이렇게 대답했다.
파도를 타고나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감이 오거든.
우리가 살면서 배워야 할 것은 어딘가에 있을 바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바다의 수많은 물살을 타는 '감'이 아닐까? 어차피 삶이라는 것이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고 실패도 성공도 있을게 뻔한데 그냥 그것들을 즐기는 법, 오고 가는 것들 사이에서 지금 이 순간에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 살면서 가장 필요한 지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리치는 우박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갈팡질팡하는 마음의 파도 속에서도 자신의 느낌을 믿고 집까지 갈 수 있는 힘 말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명확해졌다.
아라야 알아서 크거라. 엄마는 남은 파도타기를 즐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