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나는 한국 슈퍼가 너무 멀어서 한국 음식을 자주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며칠 전 집에 정말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감자랑 계란을 넣어서 초라한 감자 계란 국을 만들었다. 반찬 하나 없이 딱 국 하나와 흰쌀밥이 전부였는데 남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잘 먹었고 아이도 평소처럼 "음~ 음~" 하며 맛있다는 표현을 하며 아주 잘 먹었다. 그리고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남편의 친구 두 명이 전해줄 물건이 있다며 우리 집을 찾아왔다.
둘은 식탁에 있는 감자 계란 국을 보고는 "와우" 하고 탄성을 자아내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이렇게 생긴 음식을 처음 본다면서 도대체 무슨 요리냐고 나에게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었다. 아마도 계란후라이나 스크램블이 익숙한 미국 사람들에게 달걀이 국물에 풀어져 있는 모습과 그 위에 장식되어 있는 초록빛의 파가 굉장히 예쁘게 보였던 것 같았다.
내가 다시마와 멸치로 일단 국물을 낸다는 말을 꺼내자 그들은 또다시 감탄을 자아냈다. 그들은 멸치와 다시마를 요리에 사용한다는 것 자체를 매우 신선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새 식탁에 앉아 감자 계란 국을 각자 한 그릇씩 들고는 먹기 시작했는데 신선하다, 고급스럽다, 아름답다, 최고다, 굉장하다 등등의 형용사들을 한 숟가락에 하나씩 뱉어내며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매일같이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당신은 정말 행운아라면서 남편을 부러운 눈동자로 쳐다봤고 남편은 나의 부인은 정말 최고의 요리사라고 말하며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는 겉으로는 부끄럽다는 듯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뒹굴 수밖에는 없었다. 과연 이들은 한국에서 감자 계란 국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을까? 이 음식이 너무 초라해서 자주 해 먹지도 않는다는 것을, 너무 하기 쉬워서 백종원조차도 이 음식의 레시피는 소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남편의 친구들은 집을 떠날 때까지 감자 계란 국의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언젠가 자신들의 집에 와서 요리 비법을 자세히 알려 달라는 부탁을 간곡하게 했고 나는 특급 레시피를 아무에게나 전수할 수 없다는 농담을 하며 그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며 문득 모든 것은 감자 계란 국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별거 아닌 것이 누군가에는 정말 멋진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에게는 특별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지금 끙끙 거리며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이 누군가에게는 왜 고민거리인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작은 것일 수도 있고 나에게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는 평생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깊게 파고 들어가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나에게는 초라한 감자 계란 국이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번 먹기도 힘든 특별한 요리이지만 결국 감자 계란 국은 감자 계란 국일뿐이다. 그 안에 어떠한 이야기를 담느냐에 따라 신분이 초라한 요리에서 특별한 요리까지 상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값어치 있게 생각하는 돈이나 집이나 명예나 성공조차도 우리의 이야기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아무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그것들은 그것들일 뿐 꼭 반드시 애지중지하며 집착해야 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것은 그곳에 우리가 어떠한 이야기를 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일 뿐이다.
남편은 내가 감자 계란 국을 주던 고급 스테이크를 해주던 아무 말이 없이 잘 먹는다. 맛없다는 말도 안 하지만 맛있다는 말도 안 한다. 한때는 매번 아무리 정성을 들여 요리를 해줘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섭섭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단 한 번도 '정성스러운'이라는 이야기가 담긴 요리를 나에게 부탁한 적이 없었다. 그건 내가 만든 이야기일 뿐이었다. 지금은 남편이 요리에 '정성스러운' '감사해야 하는' '맛있다는 말을 해야 하는'이라는 이야기가 없이 음식을 언제나 남기지 않고 먹어주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요리를 하고 내가 남편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이야기가 없는 남편에게 언제나 감사함을 느낀다. 남편에게는 감자 계란 국이나 스테이크나 그냥 음식들일뿐이고 내가 요리를 잘하던 못 하던 그냥 사랑하는 아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