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정말 많이 아팠다. 감기에 걸린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아팠던 적은 처음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까지 아프면서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요즘 들어 마음이 평화로웠다. 글도 잘 쓰고 있었고 일상생활도 잘해나가며 이제는 낡고 슬프고 괴로운 감정 상태들을 버리고 맑은 마음으로 고요 속에서 살아가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아픈 아이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오자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마치 나의 다짐에 재를 뿌리듯 감기는 찾아왔다.
나는 몹시 서러운 마음에 사로잡혔다. 내가 하는 일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무언가가 이번에는 신체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하자마자 다시 싸워야 할 것이 생긴 것만 같은 서러운 마음에 나는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울었다. 그렇게 펑펑 울고 자고 일어났을 때 남편이 내 옆에 있었다. 그리고 나와 아이가 괜찮아질 때까지 일을 쉬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불행 중 다행처럼 남편은 아프지 않고 건강했다.
나는 물끄러미 남편을 바라보며 문득 아픈 것 하나가 감사한 것 열 가지를 불러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 않은 남편, 아픈 와중에도 잘 먹고 잘 놀아 준 아이, 남편이 일을 쉴 수 있도록 도와준 남편의 직장 상사. 아픈 와중에도 바람은 불어왔고 더운 날씨에도 비는 내렸다.
그렇게 나는 다시 또, 다시 일어났다. 아직도 아프지만 콧물을 훔치며 글을 쓰고 있고 아픈 와중에도 침착하게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쉴 때는 약을 먹고 푹 쉬었다. 또한 일기장에 감사한 것들을 적으며 아픈 와중에도 기쁨으로 가득 찬 마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오늘 점심을 먹다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파도 당신이 내 옆에 있어줘서 다행이야. 내가 아파서 당신이 고생이 많아. 미안해." 그러자 남편이 무신경하게 먼 곳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음. 날씨 때문이지 뭐." 그리고 나는 남편을 대답을 잠시 곱씹어 보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냥, 모든 것은 날씨 때문이었다. 올해는 유난히도 이곳 시카고의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갑자기 맑은 하늘에 우박이 쏟아졌고 추웠다가 찌는듯한 더위가 찾아왔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것은 그냥 갑자기 찾아온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날씨를 붙들고 이야기에 이야기를 지어내며 혼자 슬펐다가 감사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가만히 있는 것들을 붙들고 나 혼자 이것이 이렇게 움직였다 저렇게 움직였다 망상에 망상을 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모든 것은 그냥 제자리에 있는다. 날씨는 추울 때도 있고 따뜻할 때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춥고 따뜻한 날씨에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어쩌면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냥 때가 되어 벌어지는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들에 행복과 불행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누군가의 미소에 가슴이 설레었다가 누군가의 한마디에 상처받고 지나가다 지르밟은 똥물에 온 하루를 망친 것 같고 불합격 통지서에 인생이 끝났다가 합격 통지서에 인생의 행복을 맞이했다가 돈을 떼먹은 사람이 철천지원수가 되었다가 공돈이 생기면 기뻐하고 돈을 잃으면 슬퍼하고 감기 하나에 세상이 끝났다가 다시 시작되는.
오 주여. 인생이 한 편의 연극이라면 모든 인생은 희극이겠지요. 날씨를 붙들고, 가만히 있는 것들을 붙들고 전쟁을 치르는 코미디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