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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Jul 17. 2022

밀크와 쿠키.

성률님의 일러스트입니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오오츠카大塚의 한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곳에는 '미유키'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피부가 하얗고 예뻐서 나는 그녀를 '밀크 ミルク'라고 불렀고 그런 밀크를 따라다니는 나를 점장님이 '쿠키 クッキ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점 내에서 '밀크와 쿠키'로 불리기 시작한 우리는 장난 삼아 '밀크와 쿠키 모임 ミルクアンドクッキー会'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서점 사람들과 다 같이 밥을 먹는 일종의 회식자리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작은 서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가 누구에게 고백했다 차이고 누가 누구와 몰래 사귄다거나 갑자기 점장님과 사원 A 씨의 깜짝 결혼 발표가 이어지는 등 가슴 벅찰 정도로 기쁘기도 하고 한없이 행복하게 쓸쓸해지는 경험을 했던 서점이었다.


나도  작은 서점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별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서 펑펑 울며 밀크에게 '쿠키가  부서져 버렸습니다'하고 문자를 보내곤 했는데 밀크는 언제나  걸음에 메지로目白의 언덕있던 나의 작은 다다미식 집으로 달려와 다정한 위로를 아낌없이 주었다.


하지만 매번 남자에게 고백해서 차이는 나와는 다르게 밀크는 언제나 고백을 받는 입장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동경의 유명 여자 대학교에 다녔던 밀크는 치과 의사 부모님을 둔 덕에 화려한 고급 전원주택에 살고 있었고 그렇게 단짝이었던 밀크와 쿠키는 이름만큼이나 많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던 것은 밀크가 나에게 종종 "나는 네가 참 부러워"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난 집 자녀들의 고상한 인사치레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밀크의 눈동자가 언제나 반짝이고 진지했기 때문에 나는 혹시나 밀크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합리성 짙은 이성적인 논리와는 다르게 밀크는 어느샌가 서점에서 가장 잘생긴 와세다 대학생겸 록밴드의 기타리스트인 남자와 사귀고 있었다.


나는 밀크와 내가 천년이고 만년이고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밀크가 언젠가 '와세다 기생오라비 기타리스트'와 헤어지고 나면 나에게로 다시 돌아와 '밀크와 쿠키'는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어느 더운 여름날 밀크가 나에게 울면서 전화했을 때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그 '계집애처럼 생긴 와세다 떡갈나무 기타리스트'가 밀크를 떠났다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오오츠카의 고급 주택가로 달려갔다.




나의 작고 여린 밀크는 더운 여름날에도 항상 긴팔 옷을 입고 다녔는데 나는 당연히 그녀가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열리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리는 거대한 대문을 지나 밀크의 방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반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 불안하고 안쓰럽게 울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두 팔을 내밀며 나에게 소리쳤다.


"나는 이걸 멈출 수가 없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까? 삶에는 끊어 내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고 반복되는 어떠한 패턴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밀크가 그 반복의 중심에 있었다. 내 주변에는 언제나 정신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이 끌려들어 온다. 그래서 나는 피가 흐르는 밀크의 손목을 보았을 때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다만 반복이 다시 시작되었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며칠 전 연애 소설을 한 권 읽었다. 연애라는 두 글자를 들으면 설레고 아름다운 기억들보다 낯이 뜨거워질 정도의 부끄러운 영상들이 머릿속을 쿡쿡 찔러대기 때문에 나는 연애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멈추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완주했다. 이 책의 작가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주인공 릴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오오츠카의 연약한 나의 '밀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책은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자란 릴리가 성인이 되어 폭력적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다소 잔인할 정도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릴리의 아버지처럼 나를 공포로 몰아세우며 가슴 한가운데 큰 상처의 구덩이를 파서 그곳에 나를 던져버린 밀크가 떠올라 눈물이 멈추질 않았는데 그 눈물은 나의 상처 때문이 아니라 연약한 밀크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리운 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학대를 받은 사람이 왜 또 폭력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왜 내 삶에는 언제나 제2의, 제3의 밀크가 끊임없이 나타났던 것일까?


나는 책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혹시 우리의 삶 속으로는 언제나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감정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경험들만이 흘러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릴리가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많은 고통을 경험했지만 그 마음을 안아주지 못하고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저항했기 때문에 가슴속 응어리진 감정들이 사랑받고 싶어서 다시 삶 속으로 같은 경험들을 불러들인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내 안에 깊이 숨어있는 두려움과 공포를 마주하려 하지 않는 나를 위해 언제나 밀크 같은 연약한 영혼들이 내 주변을 계속해서 따라다닌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 내 삶에는 더 이상 밀크 같은 인연이 반복되지 않는다. 아마도 내 안의 연약함을 이제는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면 작은 손길에도 부서지는 쿠키 같은 나와 다르게 단단한 돌 같은 남자가 옆에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조금 단단해졌나 보다.


밀크는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밀크도 이제는 단단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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