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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Aug 15. 2022

꽃순이를 우주로.

Latir by Eva Armisen







1. 꽃순이를 우주로.




친구 꽃순이(가명)에게서 아침부터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이 친구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자주 나에게 연락을 해 언제나 비아냥 거리는 말투로 나의 심기를 건드린다. 평소 같았으면 괘씸한 마음에 나도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답장을 했겠지만 오늘은 문자를 썼다 지웠다가를 반복하다 핸드폰을 닫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와 거울만이 존재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꽃순이는 왜 나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을까.

나는 왜 나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을까.


그리고 이렇게 물어본다. 꽃순이를 우주로 바꿔서.


우주는 왜 나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을까.




스티븐 호킹이 주장한 빅뱅이론에 의하면 무에서 빅뱅이 일어나기 전 우주는 모든 질량이 집중된 하나의 특이점(特異點 singular point)이었다고 한다. 꽃순이도 나도 우주도 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꽃순이가 보낸 문자가 결국은 내가 보낸 것이고, 우주가 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순이라는 존재는 나를 괴롭힐 수 없다. 그녀는 내 안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꽃순이의 문자에 괴로웠던 것이 아니라 그녀의 문자를 '비아냥'이라고 해석한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스스로가 상처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꽃순이가 나에게 문자를 보낸 건 나를 비아냥 거리기 위함이 아닌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만 이야기를 내려놓자.







2. 남편을 우주로.




며칠 전 고장 난 오븐을 고치기로 해놓고 소파에 누워 집이 떠나가도록 코를 골며 잠에 빠져 있는 남편을 보고 나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나는 또 눈을 감고 질문을 던질 수밖에는 없었다.


남편은 왜 이렇게 게을러서 나를 화나게 만드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게을러서 스스로를 화나게 만드는 걸까.


우주는 왜 나에게 게으른 남편을 보냈을까?




게으름에 빠져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것이 나의 모습이라면, 왜 그 모습이 이토록 보기 불편한 걸까. 나는 내가 게으른 것이 왜 이렇게 싫은 것일까. 그리고 질문들 속에서 나는 내 안에 있는 끝도 없는 게으름에 대한 죄책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은 부지런해야 하고 부지런해야 성공도 할 수 있고 꿈도 이룰 수 있는 건데 나는 게으르고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도 없었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던 거라는 뿌리 깊은 이야기가 내 안에 있었다.


실제 하지도 않는,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이야기를 믿으며 나는 얼마나 스스로를 미워하며 괴롭혔을까. 왜 모든 것을 '내 탓'으로만 생각했을까.


신이 게으르다면 나는 게으른 것을 나쁘다고 생각했을까. 신은 항상 여유롭고 너그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3. 몸을 우주로.




한동안 잠잠했던 왼쪽 날개뼈의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통증이 목까지 올라오며 나는 너무 답답하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항상 아파야 하는 것일까. 나는 답을 얻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았다.


몸은 왜 항상 통증을 만들어 내는 걸까.

나는 왜 항상 통증을 만들어 내는 걸까.


우주는 왜 통증을 만들어 내는 걸까. 통증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어린 시절의 가장 좋은 추억이 하나 떠올랐다. 열 살 때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적이 있었다. 병원에 엄마가 항상 옆에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잘생긴 아빠가 멋진 양복 차림으로 바람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아빠는 내 옆에 앉아 삼국지를 읽었는데 그때 아빠의 옆모습, 꼬여져 있는 두 다리 밑으로 빛나던 갈색 신발, 그리고 같은 병실 사람들과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아빠의 좋은 목소리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생각나며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도 이런 혼잣말을 종종 했던 것은 내가 오랫동안 아픔을 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 어딘가 아파서 병원에 며칠만 누워있고 싶다.


나는 아파야 했다. 아프다는 것은 나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픔은 자주 보기 힘든 아빠를 내 옆에 붙여 둘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몸이 아파야 남편이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 줄 거라는 믿음이 내 안에 있었다. 몸은 통증을 통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억눌린 자아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신이 자신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처럼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나를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한 거울.


언제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안으로 안으로.

그리고 바꿔보자.

당신을 아프게 하는 그것을 우주로.




미국 나사가 지난해 말 우주에 띄운 세계 최고 성능 천체망원경 제임스 웹이 찍은 첫 사진을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기존 허블 망원경보다 백배 더 성능이 뛰어난 제임스 웹이 찍은 사진은 우주의 가장 깊은 곳을 촬영한 것으로 사십억 광년 떨어진 SMACS 0723 은하를 선명하게 포착했는데 무려 130억 년 전 빛을 담았다. 나는 사진 속 빛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왜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130억 년 전의 빛이 내 안에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순이도 남편도 나의 아픈 몸도 먼 과거도 미래도 내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나의 마음을 바꿈으로써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존재였다.  




일본의 천문학자 코쿠보 에이이치로는 말했다.


우주는 머릿속에 있다. 그래서 무한無限하고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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