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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Jul 21. 2022

나의 분노는 어디에서 왔나.

Night's Impossible Burden by Brian Kershisnik







나의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감정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힘든 것이 분노였다. 우울이나 슬픔은 그 본질이 조용하기 때문에 감정이 일어나면 들여다보고 발신지를 추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는 언제나 순식간에 불현듯 일어나 조용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겨를도 없이 죄책감이라는 잔해만을 남겼다. 그래서 남편이나 아이에게 화가 날 때면 언제나 그냥 엄마 탓을 하며 넘겨버렸다. 아마 엄마가 나에게 자주 화를 냈기 때문에 그 감정이 전염되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꽤 일리가 있는 추측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명상을 하고 엄마를 용서하고 엄마에게 혼나던 어린 나를 몇 번이고 끌어안아도 나의 분노는 사라지질 않았다. 도대체 이 분노는 어디에서 왔길래 이리도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조용히 나의 가슴에게 몇 번이고 며칠이고 물어보았다. 저의 분노는 어디에서 왔나요? 그리고 그 해답은 가슴 아프게 왔다.




며칠 전 딸아이 옆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는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고 갑자기 나를 향해 플라스틱 물병을 집어던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몰라 몇 초 동안 가만히 있었다. 정적을 깨고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이의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내가 어릴 때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리자 그 순간 살기가 온몸에 뻗히며 나의 오른손은 물병을 아이에게 던졌다. 물론 아이 몸에 닿지 않게 던졌지만 아이는 크게 놀라 울기 시작했는데 몇 초간을 울게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매정하게 방을 나서려는데 아이가 더 크게 울며 나를 따라왔고 겁에 질린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자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며 아이를 안고 펑펑 울었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걸까.


그리고 그 날밤 조용히 침대에 누워 생각해 봤다. 나는 왜 아이에게 화를 냈을까. 어떻게 하면 화를 내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분노가 불현듯 일어났을 때 멈출 수 있을까. 그리고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미안해, 좋은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해. 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몰라서 미안해. 무지해서 미안해.


그러자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너를 상처 입게 하고 화나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계속 화를 내면서도 멈추는 법을 몰라서 미안해. 평생 짜증만 내고 예민하게 굴면서 널 지치게 하고 아프게 해서 미안해.


그 모든 말들과 감정들과 눈물은 내 머릿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의 가슴에서 올라오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았다. 그냥 알았다. 답이 알아서 떠올랐다.


사랑받고 싶었구나.




나의 엄마는 사랑받고 싶었다. 어린 나에게라도 사랑받고 싶었다.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어떻게라도 채우고 싶었고 통제할 수 있는 어린 나를 짓눌러서라도 사랑을 얻어내고 싶었다. 그건 진짜 엄마의 모습이 아닌 엄마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상처로 얼룩진 에고의 모습이었다.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 어린아이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너라도 나를 무조건 사랑해야 해. 너는 나를 향해 항상 웃고 나를 안아주고 나를 항상 사랑해 줘야 해. 그래서 네가 나를 향해 화를 낸다면 나는 너에게 더 심하게 화를 낼 거야. 그래서 네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 거야.


그렇게 내 안의 모든 분노는 사랑을 향한 끈질긴 구애였다. 나는 모든 것에 화가 났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현실이 나를 버리고 외면하는 것 같이 느껴졌었다.


나는 눈물을 쏟아내며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괜찮다고 말해줬다. 네가 얼마나 아팠을지 다 안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를 향해 물병을 던진 것이 아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물병을 던져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세상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물병을 던진 것이 아니다. 나에게 물병이 필요했기 때문에 던진 것이다. 세상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의 모든 모습이 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항상 끊임없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수용해 주고 사랑해 줘야 한다. 어쩌면 단순히 그것을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 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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