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미 안투네즈 Aug 16. 2022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반지.

남편과 나의 결혼반지







내가 몇 번을 말해도 엄마가 배꼽을 잡고 웃어대는 나의 인생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결혼식에 대한 아무런 로망 없이 살아온 나는 언젠가 결혼을 하면 혼인신고만 하겠다고 혼자 결혼해 줄 사람이 없을 때부터 결심했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미국 비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을 치러야 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결혼식 전 날 시카고 외곽에 있는 대형 아웃렛에 가서 20달러에 하얀색 드레스를 사고 40달러에 내 발보다 조금 큰 구두를 샀다. 그리고 결혼반지는 오래 낄 거니까 좀 비싸게 내 거 300달러 남편 거 200달러에 구입하고 시청에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호숫가에 가서 사진을 찍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결혼식을 마쳤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엄마가 좋아하는 나의 결혼반지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결혼식 전 날 결혼반지를 샀기 때문에 매장에는 맞는 반지가 없었다. 하지만 매장 직원이 조금 크더라도 결혼식 때 사용하고 다시 가져오면 반지를 작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해서 남편과 나는 큰 반지를 끼고 판사님 앞에서 결혼식을 치른 후에 반지를 다시 매장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전화를 주겠다고 한 매장에서 2주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남편이 직접 매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매장 직원으로부터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어야 했고 그렇게 남편과 나는 길고 긴 일주일을 다시 기다린 후에 매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매장 직원으로부터 남편의 반지는 있지만 나의 반지는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다시 한번 잘 찾아 달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자신들도 반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반지를 고쳐주는 업체에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나의 언니와 여동생은 누구보다 멋지고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 둘은 언젠가 남자도 없이 서른 중반이 된 내 앞에서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남자가 없는 것도 서러운데 그 둘의 다이아몬드 반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배알이 꼴린 나는 혼자 방에 들어가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결혼하면 저 둘 보다 더 비싸고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리라 결심했었다.


그리고 그 결심이 뒤늦게 값싼 드레스와 신발을 사고 난 후에 생각이 난 나는 눈알을 굴려대며 그 둘 보다 더 좋은 반지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대형 아웃렛 매장에는 언니와 동생보다 더 좋은 반지는 없었다. 그러자 나는 갑자기 값싼 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반지를 사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고 이 모든 것이 남편의 잘못인 것만 같아 남편에게 온갖 투정을 쏟아내고 짜증을 부리며 반지를 고르러 다녔다.


그래서 결혼식 반지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남편에게 화를 내며 반지를 골랐기 때문에 나의 반지만이 사라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며 눈물이 흘렀다. 내 앞에서 반지 이야기를 하던 언니와 여동생 그리고 남편의 남동생 가족만이 참석한 초라했던 결혼식과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남편에게 화만 냈던 미안함들이 모두 엉키고 섞여 눈물과 함께 쏟아졌다.


그런데 갑자기 울기 시작한 나의 모습을 본 매장 직원들이 나에게로 달려와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직원들에게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인 것 같아서 울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들은 나를 매장 안에 있는 사무실로 안내하더니 소파에 앉게 한 다음 차를 내오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했고 사장님까지 나와 사과를 하며 지금 당장 본인이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리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새 반지를 가지고 직접 차를 운전해 다른 매장에 가서 반지를 작게 만들어서 돌아와 윙크를 날리며 나에게 반지를 내밀던 대머리 사장님의 민머리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매장의 특급 손님이 된 나는 새로운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남편의 손을 잡고 집에 돌아오며 생각했다. '그래, 언니와 동생이 나보다 훨씬 비싼 반지를 갖고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특급 서비스는 받지 못했을 거야'




나의 반지에는 세 개의 아주아주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남편은 반지를 내게 끼워주며 이 세 개의 다이아몬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면서 너의 지난날들과 지금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너를 사랑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따뜻한 말을 들으며 이런 엉망인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반지보다 더 값어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불행들은 때로 감사한 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해 찾아오는 것 같다. 불행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나에게 없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통해 나에게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의 잃어버린 반지가 특급 서비스와 남편의 사랑으로 돌아왔듯이 세상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다 무언가를 주기 위해 사라지는 것이고 세상의 모든 불행들은 행운을 주기 위해 찾아온다. 물론 그 행운은 찾아보려는 노력 없이는 찾을 수 없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는 반지를 잃어버린 한 여성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리고 톨레는 잃어버린 반지 이야기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삶은 그것이 무엇이든 의식의 진화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경험만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그 경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이것이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반지가 사라진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남편에게 화를 냈던 것에 대한 앙갚음의 카르마가 아니라 남편의 사랑을 깨닫는데 필요한 경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전 06화 남편은 게임을 해야 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