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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Jul 12. 2022

남편은 게임을 해야 해!

Photograph by Helena Almeida







작년 새해 첫날은 신년 벽두부터 게임을 하는 남편과 싸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올해 첫날에는 남편에게 들어가서 게임을 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러자 남편은 새해 선물이 너무 멋지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선물을 한 것이었다. 더 이상 남편의 게임이 나의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에게 당당하게 보여주는 선물이었고 일 년 동안 내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스스로 가늠해 보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게임만 안 하면 정말 완벽한 남자라고 생각했었다. 남편의 게임 때문에 나는 자주 신경질을 부렸고 화를 냈고 그런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남편은 까치발을 들고 사는 사람처럼 언제나 나의 눈치를 보고 살았다. 그리고 나는 또 그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정당하다고 믿었다. 게임은 당연히 나쁜 것이고 중독이 되면 몸과 가족을 망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실제로 게임을 하는 시간보다 내 머릿속에서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정작 게임을 그만둬야 하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게임을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머릿속에서 같은 악몽을 계속 재생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언제나 생각이라는 환영에 붙들려 사느라 녹초가 되어 있었고 다르게 사는 법을 몰랐다. 남편은 현실 속에서 그냥 게임을 할 뿐이었지만 나는 그 현실 속에 '중독된 남편', '일상과 가족을 망치는 남편', '나쁜 게임' 등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존재하지도 않는 환영들을 붙들고 괴로워하며 나 자신과 남편을 괴롭혔다. 결국 게임(게임에 대한 나의 이야기)에 중독된 것도 나. 일상과 가족을 망치는 것도 나(나의 이야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오직 나였다.


그리고 그 해결법은 단지 환영을 놓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현실 속에는 그냥 게임을 즐겁게 하고 있는 사랑하는 나의 남편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냥 놓아주는 .  쉬운 방법을 두고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을 바꿔보려고 갖은 애를 쓰며 많은 날들을 스트레스와 괴로움에 빠져 살았다. 그냥 나의 내면이 바뀌면, 머릿속의 이야기들을 놓아주면 모든 것이 해결된 다는 것을 모른  외부 환경(남편) 바꿔 보려고 어렵게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남편이 게임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의 게임 덕분에 나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터득했다. 환영은 환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살면서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이 나를 돕기 위해 온다는 것도, 모든 괴로움들이 나를 생각과 이야기들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 온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생의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게임을 하는 남편'이라는 설정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다시 태어나도 남편은 언제나 나를 위해 게임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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