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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Jul 09. 2022

진정한 사과.

사진출처 pinterest







책을 읽는데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에게 화가 난 만큼 당신에게 화가 나."


나는 잠시 멈추고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나에게 화가 난 만큼 당신에게 화가 나."


그리고 여러 번 읽다 보니 이 문장이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안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 그것을 당신에게로 투영했다.'




감정은 메시지이다. 감정이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감정은 우리 안에 있는 기억으로부터 일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밖으로 투영된 감정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흔히 타인 때문에 화가 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타인을 통해 나의 내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타인은 말이 없는 거울이고 우리는 그 거울을 통해 언제나 거울이 아닌 나를 보아야 한다.




언젠가 남편과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밖에 나가서 백 명의 사람들에게 누가 잘못한 거냐고 묻는다면 구십구 명이 남편이 잘못했다고 대답할 것이 분명할 정도로 그의 잘못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싸움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화가 났고 감정을 좀처럼 흘려보내기가 어려웠다. 분했고 슬펐고 괴로웠고 나를 이런 감정으로 밀어 넣은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감정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조용히 방에 들어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눈물이 흐르며 머릿속에서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남편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명하게 말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몸의 에너지는 나를 바닥으로 강하게 끌어내렸다.


나는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는 에너지를 느끼며 내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나를 생각했다.


'남편이 거울이라면 나는 이 거울을 통해 나의 어떤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일까.'


나는 내면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어떤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엄마와 크게 싸우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남편과 똑같은 방식으로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마치 무언가를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주지 않는 엄마가 미웠다. 나를 수용해 주지 않는 엄마에게 화가 났고 모든 것이 엄마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엄마에게 던진 내 안의 무언가는 다시 남편을 통해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이제 온전히 나를 받아 줄 수 있니?


나는 화나는 감정 속에 억눌려 있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마주치지 않고 외면해 버리고 싶은 나의 모습이었다. 깊은 무의식 속에 갇혀있던 아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내가 문을 굳게 닫아 버리고 보내주지 않아 떠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과했다. 그것은 내가 봐야 할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의 인생의 무대에 함께 있어 준 남편을 위한 감사의 마음이었고 엄마를 위한 사과였고 나를 위한 용서였다.


그러자 그때까지 아무런 잘못을  것이 없다며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던 남편이 갑자기 놀란 얼굴과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나를 안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던진 것을 내가 받았을 뿐인데 사과까지 해주는 남편에게 진정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을 향해 불같이 화가 나던 감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남편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한다. 하지만 내가 타인의 마음을 상처 입힐 수 있을까? 누군가가 나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사실 상처를 입히는 건 언제나 '나 자신'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타인에게는 그런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 타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상처 입히는 것은 언제나 나의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은 '분리'라는 망상이다. 모든 것이 나라는 것을 알면 타인은 언제나 나이고 나를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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