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소셜 모임
아이들과 투닥하면서도 자기 전 '아빠 오늘 정말 재밌었어. 내일 또 재밌게 놀자'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을 마음껏 받아본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온 아내에게조차 '오늘 수고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짧지만 깊은 응원임을 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나에게 쌓여왔던, 누구도 공감해 주기 어려운 그 어렴풋한 외로움이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감정이 해소되어 가고 있다.
그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말하기 혼자만의 고민을 털어놓고자 시작했던 글쓰기가 문득 잠시 멈추었던 것도 이 이유다. 한국에 다녀오고, 아이가 입학하고 나름 가족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일들이 있었던 핑계도 있었다. 더 큰 이유는 소셜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3개월 정도 주 2회 정도 레슨을 받으며 혼자 연습해오고 있었는데, 지인과 연습 중 만났던 이웃의 소개로 2곳의 테니스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베트남에 도착 후 4주 간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생에 기억에 남을 불안 증세가 있었음을 이전 글에 고백했었다. 하지만 호텔 레지던스 생활을 끝내고 월세지만 우리 가족만의 공간에 들어오며 많이 완화가 되었었다. 차츰 안정화를 다가갈 무렵,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서인지 또 고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 바쁘니 다른 고민을 할 여력이 없는데, 시간이 있으니 배부른 고민을 한다라고. 공감한다. 맞는 말이다. 바쁘면 관계에 신경 쓸 여력도 없고, 내가 곪아가는지도 일이 터지고서야 알게 된다. 고민은 여기에 나의 주변인들이 많이 없다는 것이었다.
외향적인 성격을 타고난 나로서 주변과의 관계에서 많이 힘을 얻곤 한다. 그 관계 사이의 신뢰가 세상에서 나를 실존하게 하는 받침이 되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은 사실 많이 없다. 뜨거운 친구 관계를 가져본지도 오래되었다. 회사를 다니며 미지근한 관계들이 대부분이 되었고, 원래 뜨거웠던 관계도 그 온도를 서서히 잃었다. 나는 이 온도를 좋아했다.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도 하고, 그냥 관계라는 것에 얇은 실만큼의 연결도 적정했다. 내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활동이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 보니 나를 지키는 생각이었다.
초기에 느꼈던 불안의 원인 중 하나는 육아휴직을 선택하며 잠시 구석에 보관해 둔 사회에서의 내 모습이다. 한 가족의 남편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온전히 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알게 된 점. 사회에서의 내 역할에 내가 너무 충실하게 이행을 해왔기 때문에, 상실된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의 일부를 지워버린 느낌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별 것 아닌데, 확실히 친구나 주변에는 두지 않는 의미 부여를 가혹하게 나에게 부여했다.
상실의 의미 부여가 옅어질 즈음, 초대받게 된 테니스 소셜 모임은 그냥 운동을 좋아하고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참여를 한 것인데, 내가 비워버린 공간을 천천히 채워주었다. 기업의 주재원 분 들이거나 지자체에서 파견을 나오신 분들과 저녁에 2시간씩 함께 운동을 했다. 리더께서 잘 가르쳐주시기도 하고 비슷한 실력이신 분들과도 레슨을 받고 게임을 하며, 이 그룹 속에서 나의 존재를 형성해 가는 것이 꽤나 보람찼다.
두 번째 모음에서도 마찬가지다. 오가다 인사만 했던 한국인 아파트 이웃을 우연히 테니스장에서 만났고, 테니스 모임에 초대를 해주셨다. 3개월밖에 안된 왕초보 테린이 이지만 나오라는 초대에 감사했고, 거기서도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신 형님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 관계 속에서도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3개월 차 테린이지만 기간에 비해 잘 치고 열심히 뛰는 친구.
이 두 모임에서 가지게 되는 나의 모습은 극에서 각각의 페르소나로 연기하는 것과 같이 묘한 만족감을 준다. 한국에서의 주된 페르소나는 회사에서의 직장동료이자 같이 잘 노는 아빠였다. 여기서는 육아휴직 중인 애 잘 보는 아빠이자 열정 있는 초보 테린이다. 아빠로서 아내와 아이들과의 경험에서 얻는 행복도 있지만 사회생활에서 얻는 행복도 분명히 있다. 업무든 회사 동료 관계든 친구 관계든.
그나저나 테니스를 너무 무리하게 해서 친 것 같다. 인정욕이 있는 성격이라 일이든 운동이든 일단 최대한 불사른다라고 생각하고 시작을 한다. 3개월 간 함께 치고 있다. 그러던 중 손목 통증이 생겼고 무릎과 발목도 조금씩 삐그덕 댄다. 어제는 고관절에 무리가 와 왼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첫 시작한 나의 사회생활이 비록 운동취미의 모임이지만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모임에 개근이다. 하지만 이번 주는 쉬려고 한다. 몸이 빨리 낫고 코트로 복귀를 하는 것이 이 운동을 더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쉬자. 그리고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