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능력이 생긴다.
스스로를 거부하면 우리의 마음은 늘 공허하고 채워지지 않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매력 있고 가치 있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자 다른 사람을 이용하게 된다.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 우리는 우리더러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타인과 타인의 개성 같은 것에 도무지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관심이 가는 것은 오로지 이 사람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상대를 그 자체로 사랑하지 않고, 그가 자신에게 주는 사랑과 인정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타인의 사랑이 우리가 사랑받을 만하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타인의 좋은 평가를 잃어버리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도로 가치 없고 열등하다는 느낌으로 돌아가버릴 것이다. 상대가 함께 하는 동안에만 스스로를 가치 있게 느끼게 되고, 상대가 떠나가면 그와 함께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도 따라서 가버리고, 완전히 비참한 기분으로 서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스스로와 스스로의 삶이 불만족스러운 사람은 그런 불만족을 어떻게든지 채우려고 한다. 그것은 아주 당연하고 이해가 가는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채움을 받고자 하거나, 돈이나 명성이나 업적 같은 외적인 것을 통해 채우고자 하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자기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면 이는 다른 사람의 사랑이나 인정, 또는 돈을 통해 상쇄될 수 없다.
롤프 메르클레,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중
행복은 만족과 감사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나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내 삶에서 나를 지울 수 없으니 영원히 불만을 품은 채 살 수밖에 없다. 평생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자존감이 그리 높지 않았다. 어떤 이는 너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니 자신을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조언도 하지만, 역시 타인보다 나 자신을 평가하는데 너무 인색했다.
누군가는 좋은 외모를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는 뛰어난 운동능력,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없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갖지 못한 다른 장점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눈에 띄지 않고, 간혹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 하여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았던 것은 아닐까?
최근 다녀온 동사섭 영성수련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방법의 한 가지로 '자기 감사점 찾기' 명상을 진행했다. 자기 스스로의 장점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장점이라는 것이 '잘생긴 얼굴'이나 '명문대를 졸업한 재원' 같은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신체', '영혼'과 같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사소하게 여겼던 것조차도 나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고 감사할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 리스트를 정리하다 보니 '나를 믿어주는 직장상사', '나를 지지해주는 교수님', '나를 아껴주는 선후배와 친구들'도 감사해야 할 점들이고, 나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이 나를 이렇게까지 아껴주고 높이 평가해 주었을까 하는 반성도 하게 됐다.
어쨌든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할 '나'이니까 올해는 더욱 나를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존감'을 검색해 보게 되었다면 딱 한 시간만 고민하여 자신에게 감사할 점(본인만의 장점) 30가지만 적어 크게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