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 커피의 향연
익숙한 길이다. 오늘의 여행은 커피 애호가라면 꼭 방문하기를 권장하는, 내가 커피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면 이곳을 방문하고 리포트를 과제로 제출하라 했을 장소로 향한다.
개포동에 위치해 있지만 사실상 양재2동과 도곡2동의 생활권과 상당히 겹치는 곳이다. 나는 양재동을 거쳐 오늘의 목적지로 향한다. 여담으로,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역의 이름은 매봉역이다.
양재동은 큰 회사가 굉장히 많은 동네이다. 대표적으로는 현대와 기아 본사가 있으며 코스트코, 하나로마트, 이마트 등 서울에서 가장 큰 대형 마트들부터 트럭 터미널과 택배물류센터, 수입중고차 매매단지, KOTRA, 서초구청, 국립 외교원 등 수많은 회사들로 인해 직장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외곽으로는 경부고속도로로 바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입구가 있으며, 과천에서 수서로 이어지는 지하차도와 서초동, 대치동으로 빠져나가는 인구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코스트코 이용객들로 인해 이들 모두가 잠에 들기 위해 집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경적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항상 많은 유동인구를 피하기 위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양재천을 이용한다. 직장인들의 무덤에서 초록색 길을 따라 조금만 밑으로 이동하면 시끄럽게 움직이는 쇳덩이들과 사람들의 옷자락에서 뒤엉키던 미세먼지들은 어디 갔는지 새파란 하늘만이 보인다.
해가 떠있는 시간에는 보통 일을 하는 것이 이 동네의 룰이기 때문에 양재천은 텅텅 비어있다. 간혹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책임자들이 보일 뿐이다. 찬바람을 가르며 한참을 달리면 개포동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따릉이를 반납했다. 따릉이는 2015년부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대여 서비스이다. 연간 이용료가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나는 매년 연회원권을 끊는다. 만약 당신이 서울에 거주한다면 따릉이를 이용해 보시길. 참고로 서울에 거주하지 않아도 누구나 이용가능하다. 목적지 근처에도 따릉이 정류장이 여러 곳 있기 때문에 나는 가장 가까운 곳을 택했다.
정류장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글린은 초행자가 단번에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팁이 있다면, 글린의 간판을 찾으려는 것보다 바로 옆에 있는 '크린토피아' 간판을 찾는 것이 쉬울 것이다. 글린은 큰 간판이 없기 때문.
근처까지 도착하면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따뜻한 카페를 마주할 수 있다. 돌과 철로 이루어진 계단을 올라가면 친절한 바리스타님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맞이해 주신다. 나는 늘 그렇듯 이곳에서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시곤 한다.
단골손님이 많은 카페다 보니 손님들의 평균적인 이용시간도 다른 카페들에 비해 길다. 몇 명의 손님들이 앉아있는 자리를 피해 오늘의 커피를 즐기기 좋은 곳을 찾아본다. 카페 내부가 엄청 크진 않지만 다양한 모습의 좌석이 있고, 내부 인테리어와 음악도 즐기기 좋다. 오감이 만족되는 곳.
이 날은 준비되어 있는 원두가 많아서 재미있었다. 일본과 호주, 국내의 원두를 한 잔씩 마셨던 것 같다. 모든 커피가 세련되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커피를 여러 잔 마시면 약한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인데, 좋은 커피에서 오는 폴라시보 효과일까 이곳에서 부작용 법칙은 통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마시는 드립커피는 다양한 향미를 확실히 느낄 수 있으며, 바리스타님은 원두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을 거의 그대로 스캔해서 액자에 담아주신다.
메인 메뉴는 몽타주커피의 원두로 서브되지만 이 외의 로스터리에서 원두를 마련해 내려주시는 커피들도 아주 훌륭하다. 가끔은 직접 만드시는 디저트들이 한정적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원래 디저트를 메인으로 판매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참고하시길 바란다.
만약 이곳을 방문한다면 나는 카페라떼나 플랫화이트, 카푸치노와 같은 밀크 베리에이션 음료를 먼저 마셔보기를 추천한다. 바리스타님이 우유에 진심이기 때문에 만점에 가까운 카페라떼를 맛볼 수 있을 것. 커피에 못지않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허브티와 핫초코도 있으니 카페인을 섭취하지 못하는 사람과도 함께할 수 있다.
이곳에 여러 번 방문하게 되면 높은 확률로 동물들을 만날 것이다. 지나가는 새들부터 손님과 함께 방문하는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해 주자.
마음 안팎으로 따뜻함을 가득 채우고 나오니 벌써 해가 저물었다. 저녁 약속을 위해 근처 멕시코 식당으로 이동했다. 나는 대부분의 멕시코 음식을 좋아한다. 향신료에 거부감만 없다면 한국에서 먹는 음식들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은 집 밥을 뒤로하고 이국적인 음식을 먹는 것도 반복되는 삶을 환기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