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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Aug 25. 2024

맛 따라 맘 따라

매운 돼지갈비찜 도전기.

돼지갈비찜 먹어본 적 없음.

매운 갈비찜의 맛은 상상도 잘 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늘  그렇듯이 난 책으로 시작한다.

심영순, 김수미, 아하 부장, 류수영, 백종원, 청담동 선생님 등등 집에 있는 한식 요리책을 보고 덮고 보고 덮고

인터넷 검색창을 뒤지고 또 뒤지고 

나흘 정도 나는 매운 돼지갈비찜에 심취되어 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주변 식당에서 먹어 볼 생각은 왜 안 했을까 싶다.


아무튼 이틀을 고심하고 불현듯 지갑 들고 잰걸음과 비장한 각오를 품고 동네 큰 정육점에 가서

찜용 돼지갈비를 2kg 구매했다.

고기 구매하고 다시 이틀을 보냈고 드디어 휴무일이 되었고 

머릿속에 뒤죽 박죽된 조리법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맘에 와닿는 게 없었다..

일단 그렇다면, 

돼지갈비는 덩어리 흑흑.

내가 절단해야 하는구나 란 잠깐의 절망감을 느끼며 절단,

핏물 가볍게 빼고 생강즙, 배즙, 간장에 과하지 않은 간으로 재웠다.

여기까지도 '어떻게 해야겠다' 한 계획은 없었다.


가게 밖 햇빛이 따가운 오후

'이번 추석에는 뭘 팔아 볼까' 싶어서 생각하는 듯 멍 때리는 듯 앉아있었다.

매번 LA 갈비를 재워서 준비했었는데 저번 설에 너무 힘들고 남는 게 없었던 끝이 생각나서( 소기름 제거하고 무게 달아 팔았더니 손해가 와장창 났었고 내 손가락은 부었었다.)

LA 갈비는 선뜻 맘이 가지 않았다.

"'추석 때 매콤한 돼지갈비찜 괜찮지 않나? 기름진 음식 많으니 매운 것도 좋을 듯싶고 나름 고기니까 든든하기도 하고 양념에 야채 넣어 먹기도 당면이나 떡 넣어 먹을 여유로움도 있고 

하지만 내가 먹어 본 경험이 없으니 어쩐다.'


등갈비는 양식 버전으로 해서 별 문제가 없었는데 찜갈비는 갈피를 잡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일단 책으로 독학을 시작하고 가게에서 틈틈이 검색을 통해서 레시피를 살폈는데

같은 요리 다른 레시피는 나를 더더욱 카오스로 밀어 넣다.

한 삼십 개 정도의 레시피를 찾아서 읽고 (물론 건성건성이다) 상상하고 또 읽고 맛을 가늠하고

하지만 다 맘에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비장하게 휴무일 오후에 난 부엌에 섰다.

밑간을 해둔 고기를 꺼내고 잠시 생각을 하고 재료를 꺼내 정리를 했다. 

감자?  껍질 까기 정말 귀찮음. 패스.

딸기잼? 굳이? 왜? 싫고

케첩? 애냐? 싫어.

이상하게 다들 당근 안 넣었더라.

카레, 찜요리에 당근은 여왕이지 , 난 당근 좋아. 당근 넣고 

어라? 고사리 있네. 저번에 백종원에 보니까 돼지고기랑 고사리 맛있다고 하시더구먼 

그럼 고사리도 넣고 ,

다시다? 그리 맛있게 먹어서 뭐 하게? 적당하면 됨. 집에 다시다 없으니 패스.

수많은 레시피들이 내 머릿속을 흘러 다녔고 난 완강히 저항했으면 내 멋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있잖아 사과랑 시나몬이 돼지고기랑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아?'

그래서 다시팩에다 시나몬을 넣어 준비하고 사과 준비하고

'감자는 귀찮지만 난 단호박 있다. 너희는 없어서 못 넣었구나. 나와봐라 단호박'

' 깨끗하게 매워야 하니까 고추장은 좀 비껴줄래. 마른 고추 나와'

'양념하면 내가 또 한 양념하지 청양 고춧가루, 샘표 701, 다진 마늘, 물엿? 너 별로 조청 가자'

집에 다행히 쌀엿 조청이 있어서 꿀을 뜯는 불상사는 피했다.

이리저리 불안 불안하면서도 딸기잼이 빠지고 다시다가 빠진 내 레시피가 맘에 든다.

제일 먼저 고기 넣어 한번 구워내고 양념 붓고 두 시간 재우고 

물 좀 부어서 조리기 시작.


양파, 당근은 처음부터 삼십 분 끓이고 나서 단호박과 고사리 청양고추 넣어서 이십 분 더 부글부글.

시나몬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설탕대신 사과의 단 맛이 배이겠지 좀 덜 달고 덜 자극적이겠지만 괜찮아.

너무 시뻘거면 신분 낮아 보여 괜찮아. 자극적일 필요 없어. 넌 너야!

한 시간 정도의 조리 끝에 마침내 완성.

뭐든지 처음엔 두렵다.

며칠 밤을 내내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들여다 보고 의심을 하고.

하지만 막상 부엌에 서서 시작을 하면 맘보다는 머리보다는 손이 움직인다.

어떤 맛을 내고 싶어 하는지 내 맘을 살피는 게 먼저인 듯하다.

뭉근한 단호박과 뭉근한 당근, 양념이 촉촉이 배인 돼지갈비.

맘에 쏙 드는데.

우리 집에 당면도 없고 떡도 없고 그렇네. 

그럼 뭐다. 밥 볶으면 되지. 

뜨겁고 습한 날씨에 뜨겁고 뭉근한 매운 돼지갈비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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