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투병 중입니다.

갱시기 당기는 날.

by 남이사장

삼 일 전부터 시름시름 살살 감기 기운이 돋더니

오늘은 절정에 달했다.

아침부터 목이 잠기기 시작했고 코피도 계속되고 열도 나고

내 몸뚱이는 노동에 최적화되었는지 가게만 나가면 아침에 천근만근 하던 컨디션이 멀쩡해진다.

핑곗거리 찾아 좀 쉬고도 싶은데 정말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세상천지에 없다.

일요일엔 번외돈벌이로 과외 수업이 있는데 목이 붓고 아파서 취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두 개의 수없중에 하나만 하기로 하고 학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잘 자고 있는 내 학생님께 새해 선물 같은 나의 상태보고와 그녀의 학습 단속을 하고 수업 한 개를 했다.

"서윤아 선생님이 목이 아파서 오늘은 네가 다해. 읽고 해석하고 나에게 애틋한 동정심을 가지고 책 읽어 준다 생각하고 너만 말해" 오늘의 나의 수업 방향을 서윤이에게 알렸다.

겨울 방학 내 중2 학생인 분들에게 교과서, 문법서, ebs 교재 등은 멀리하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어 보자 했었다. 서윤이는 천천히 모리를 읽어갔고 드문드문 내용에 공감하면서 "모리가 다리를 못 쓰네요" " 아직 안 죽은거 죠? 하면서 내용에 공감을 했고 공감을 할수록 해석은 띄엄띄엄하기 시작했고 난 중간중간 단어 확인과 문법설명을 해주었는데 점점 내용에 빠져 드는지 가만히 깊게 읽어 나갔고 나도 굳이 그녀의 독서 공감대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다소 편안하게 흐릿한 창밖 풍경과 서윤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수업을 마쳤다.


계획대로 라면 이번 주 연재 메뉴는 카레 볶음밥이었다.

찬밥 처리를 도와줄 메뉴를 몇 개 뽑아서 리소토와 볶음밥을 하려고 했는데

이실 이 실 한 내 몸과 스멀스멀 내리는 온수빗방울이 볶음밥을 거부했다.

볶음밥을 하면 내가 먹어야 하는데 내 목구멍으로는 도저히 고슬고슬하게 기름을 두른 볶음밥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뭘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갱시기가 떠올랐다.

퍽 퍼진 죽이라는 단계보다는 살짝 들퍼진 자작한 국물을 담은 갱시기가 맘에 들었다.

찬밥, 신김치, 육수, 소면과 수제비 반죽만 있으면 비 오는 날 갱시기가 짬뽕보다 운치가 있지 않나 싶다.



밥 반 공기, 소면 50g , 수제비 반죽 30g, 콩나물 반 줌, 신김치 국물 넉넉하게 150g 정도

육수 600ml


끓이고자 하는 양보다 0.5배 정도 물양을 넉넉하게 잡고 밥, 소면, 수제비는 국물에 비해서 부족하다 싶을 정도가 난 맘에 든다. 너무 꾸적꾸적한 느낌은 품위가 떨어지는 듯합니다.

준비해 둔 육수가 없으시다면 msg 쓰면 되긴 하지만 전 그 미끈한 맛에 거부반응이 있어서 가게에서도 집에서도 쓰지 않는 답니다. 내가 멸치 넣고 복잡하게 끓인 육수보다 다시다 한 스푼이 더 진한 멸치향을 내는 것이 전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급할 땐 쓰세요. 라면 수프를 쓰신다면 좋은 선택이십니다.

육수에 김치를 넣고 4분 정도 팔팔 끓이시다가 소면 투하 하시고 바로 밥 투하 하시고 수제비 반죽 넣으시고

소면, 밥, 수제비 반죽의 투하가 잽싸게 이루어져야만 생명력 있는 갱시기를 만나 실 수 있습니다.

제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다 보니 수제비 넣은 과정의 사진이 엉망이라 수제비 사진은 없네요.

수제비 반죽은 힘이 남는 날 양껏 만드셔서 냉동 후 사용하셔도 좋고 이것저것 귀찮으시면 시제품 쓰셔도 좋고 안 넣으셔도 별일 없답니다.

밥을 넣으신 후 휘젓지 않으셔도 됩니다. 불을 중불로 낮추시고 국수 익을 때까지 밥알이 슬슬 풀어진다 싶을 때까지 끓여주세요. 소면이 수제비 반죽보다 익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니 수제비는 확인을 안 하셔도 됩니다

- 수제비는 얇게 떠 주셔야 해요 뇨끼 아닙니다-

밥알이 슬슬 풀리고 3분 정도 후에 마지막으로 콩나물 투하 하시고 산발돼서 나부끼는 그네들을 국자로 꾹 눌러 숨이 죽으면 끝입니다.

자.... 여기서 김치가 덜 익으셨다면 식초를 반 스푼정도 넣으셔도 되고 간이 안 맞으면 액젓에 도움을 받으면 된답니다. 식초 혹은 액젓은 냅다 쏟아붓지 마시고 반스푼씩 살살 간을 보시면서 넣어 주세요.

제가 갱시기 죽이라는 말대신 갱시기라 칭하는 이유는 소면이나 밥이 푹 퍼진 상태보다는 살짝 도도한 모습을 좋아하게 때문입니다.

자작한 국물도 나름 탱탱한 소면도 밥도 진이 빠지지 않은 콩나물이 저는 좋거든요.

김치 국물을 넉넉하게 넣으시는 것 김치건더기를 많이 넣지 않는 것도 품위 있는 갱시기의 시작입니다.

서늘한 날씨에 감기 기운 돌고 뜨뜻한 온기가 당길 때 한번 해서 드셔 보세요.


정리해보면,

소면, 수제비, 밥, 김치, 콩나물을 준비하시고 육수 팔팔에 김치 넣고 소면, 수제비, 밥을 순서대로 잽싸게 투하하시고 간 보시고 콩나물 넣으시고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생각보다 국물양을 어떻게 잡느냐가 가장 어려울 수 있습니다.

넉넉히 좀.. 많다 싶게 여유 있게 잡으셔야 합니다. 밥도 면도 너무 많이 넣지 마세요

욕심이 김치떡을 만들 수 있습니다.

흐르는 콧물을 부여잡고 뜨끈한 눈을 가지고 갱시기 마칩니다.

건강하세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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