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채는 뮤지컬처럼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대.
뉴욕에 엄마와 엄마의 절친인 재벌 이모가 왔다.
그냥 재벌 아니고 정말 재벌인 내가 태어나서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이쁜 사람이모가 왔다.
맨해튼 반 지하방인 내 집에 짐을 풀고 엄마와 이모는 뮤지컬을 볼터인즉 티켓팅을 하라고 했고
많은 클래식 공연과 뮤지컬은 무료 야외 공연과 타임 스퀘어 할인티켓으로만 보아 왔던 나는
처음으로 돈 봉투를 들고 극장 티켓부스에 가서 정가로 나와 친구 그리고 엄마와 이모의 왕과 나 뮤지컬 티켓을 샀다.
잘 차려입은 엄마와 이모 그냥 그렇게 학교에서 헐레헐레 도착한 나와 친구는 앞 두 자리에는 엄마와 이모가
바로 뒷 좌석에는 우리가 앉아서 공연을 봤고,
앞 두 자리에 엄마와 이모는 뮤지컬 공연 음악에 맞춰 가로세로 머리를 흔드시면서 공연 내내 피로를 푸셨다.
- 조지아주 이모네 아들집에서 뉴저지 우리 집으로 오신 지 하루 되셨고 유학생 아들집 방문은 재벌이모도 피할 수 없는 고된 가사 노동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뮤지컬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 분은 여자 주인공의 드레스에 대해서 열띤 대화를 나누셨는데 언제 졸으셨는지 모르게 정확하게 색상과 디자인을 맞추셔서 나와 내 친구는 두고두고 신기해했다.
공연 관람 다음 날.
난 오전에 학교 수업 갈 준비를 하고 엄마와 이모는 눈은 뜨시지도 못하고 어슬렁 나오시길래
난 냉장고를 열고 아침식사를 준비해 드렸다.
유학생 부엌에서 무엇을 바랄 수 있는까?
남아 있는 배추쪼가리들과 몇 잎의 풀들 어제 먹고 남아 있던 밥이 다였다.
그래서 커다란 양푼이를 꺼내서 생채를 만들었고 전 날 우아하고 화려했던 두 분은 딸의 신분으로 신분 강등 되셔서 숟가락 두 개를 들고 양푼이의 비빔밥을 세 숟가락에 한 번씩 감탄하시면서 드셨었다.
배추생채.
배추 ; 알배기 배추 반 개 (500g) , 다진 마늘 반 스푼, 설탕 한 스푼, 매실액 2스푼 , 액젓 반스푼, 식초 3스푼, 고춧가루 2스푼, 깨 반스푼, 참기름 혹은 들기름 취향껏
- 매실액, 액젓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통과! 액젓은 없어도 괜찮고 소금도 굳이 안 넣어도 좋아요.
식초 믿으세요.
배추 대신 양배추, 봄동, 얼갈이배추, 어린 시금치, 돌나물, 세발나물 다 괜찮아요
하지만 무는 절여야 해서 무는 조금 더 나중에 해보는 걸로 하죠.
배추를 착착착 채 썰고 (양배추는 좀 더 가늘어야 합니다.) 양푼이에 넣고 양념 재료들을
한 번에 때려 넣으세요 ( 기름은 나중에 밥 비빌 때 워~~~ 워~~~)
처음에는 손가락에 힘을 쭉 빼고 뒤집듯이 살살 무치시다가 고춧가루가 골고루 묻었다 싶으면
살짝 강도를 놓여서 버무려 주세요. 미리 양념을 한 번에 버무려 놓지 마세요 양념을 풀어서 무치려면
배추를 많이 만져야 해요 그냥 던지듯이 넣어 주시면 됩니다.
요렇게 물이 슬쩍 배고 고춧가루가 골고루 묻었다 싶으면 하얀 쌀밥 한 공기를 푸세요
밥의 두 배가 적절한 생채의 양이예요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또르륵 넣어 주시고 비비세요.
웃겨 보이지만 맛보시며 깜짝 놀라실걸요 냉장고에 있는 죽어가는 야채들을 몽땅 살리실 수 있어요
야채도 많이 많이 더군다나 짜지도 않아요. 몸에도 좋을 테죠 물론.
손에 힘 강도 조절을 조심하시면 정말 끝내주는 리드미컬한 생채를 즐기실 수 있어요.
그릇 두 개 쓰지 마시고 하나로 명절 끝났는데 우울하게 상 차리기 마시고 , 국 찾는 이가 있다면
배추 반 포기 남았잖아요 육수에 된장 실실 풀어 된장국 끓이세요.
부엌에서 얼른 나오는 빠른 부엌 마감 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일 중요한 것은 양념을 섞지 않고 뿌리듯 넣어주시는 겁니다.
흩어져야 맛있어요. 누굽니까? 고추장 찾는 분! 고추장 넣지 않습니다. 떡지고 상큼하지 않아요!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습니다.
제가 뉴욕에서 즐긴 가장 감동적인 공연은 센트럴 파크에서 들은 요요마 첼로 공연에 리허설 공연이었습니다.
이삼 분 정도 튜닝하는데 소름이 돋았었죠,
길게 보여줄 필요 없더라고요 감동이 오는 순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