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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Feb 26. 2024

선선한 청하생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선선하게 청하와 차돌 샐러드.

언제부터인지 난 선선한 남자가 좋다고 생각해 왔다.

걸음걸이도 선선하고 목소리도 선선하고 사고방식도 선선하고 융통성은 있지만 자신의 깊이는 간직한 사람

이런 디즈니적인 애매한 이상형으로 인해 독야 청청 하는 듯 하지만

난 선선함이란 단어가 주는 중후함과 가벼움의 사이를 쫓는다.

스무 살을 갓 넘어서 뉴욕에서 랭귀지 코스를 마치고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천천히 술을 배웠다.

기숙사에서는 버드와이저와 도리토스를 쌓아 놓고 학교 동기들과 마셨고 유학생 오빠들은

위스키와 체리  혹은 아보카도를 김에 싸서 고추냉이를 곁들여 비교적 가볍게 즐겼고

- 오해하지 마시라 뉴욕 유니언 스퀘어 파머스 마켓의 체리와 아보카도는 비교적 저렴했었다.

   물론 위스키도 소주나 청하보다는 구하기도 수월했었고 가격도 높지 않았다-

학과 한국인 동기들과는 앱설루트 보드카  혹은 소주에 라면에 뭐든 다 려넣은 이상한 부대찌개를 즐겼다.

학교 앞에 작은 칵테일 바에 한때 빠져서 아르바이트하고 여유 있는 돈을 쏟아부은 시기가 있었는데

왜냐? 바텐더 오라버니 때문이었다. 우리가 스물 하나였 드니 그 오라버니는 23, 24 정도였을 것이다.

수려한 백인에 매너도 깔끔해서 우리는 학교 수업 끝나면 일상의 루틴처럼 오라버니를 찾아서 피나 콜라다, 치치, 미도리 사우어 ( 난 요구르트를 좋아하니까 딱 취향이었습니다.) 마셨다.

나중에 한 학기가 지나서 알게 된 오라버니는 게이이셨으며 오빠들이 우리의 남자 보는 눈의 등급을 한심해했을 때에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도 오라버니가 남자가 아니었고 오라버니도 우리가 여자가 아니었으니 더 좋았었다.

킥테일을 쫓던 시기가 시들해지고 청하를 만났는데 와... 달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선선한 맛.

은은한 향과 은은한 맛 둘 다 좋았다.

하지만 가격이 6.99$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아주 아주 드물게 마실 수 있었는데

주로 방들이(기숙사 탈출하고 하우스 생활 기념)  생일 혹은 벼르고 벼른 주말 모임에서 청하를 만났다.

우리 주제에 청하도 힘든데 안주까지 챙겨  만들어 먹을 일은 없었는데

만들기 좋아하고 먹기 좋아하고 그 당시에는 사람을 졸졸 따르던 내가 있어서 그들은 우리들은 잘해 먹었다.

일본 마켓에서 샤부샤부용 소고기 혹은 돼지고기를 구입하고 숙주와 파 많이 넣고 무만 있다면 꽤 품위 있는 안주를 뚝딱 만들어 내곤 했었다.

당시 인기 몰이를 했었던 나의 조신한 차돌박이 샐러드 만들어 봅니다.

비 오는 밤 친구 즐겨보세요.


주재료 : 무, 차돌박이 혹은 대패 삼겹 (얇은 고기 ), 숙주, 파채, 맥주

   양념 : 무즙 150ml , 간장 50ml, 식초 3 tsp, 설탕 2 tsp, 유자청 2 Tsp, 연겨자 2 tsp.

* 유자청을 넣으시려면 연겨자를 아닌 경우에는 고추냉이를 사용하시는 게 맛이 알싸합니다

   제 유자청은 단맛이 없어서 설탕을 넣었으니 단맛은 잘 조절 부탁드립니다.

숙주와 파채는 드시고 싶은 양을 준비하세요. 고기양에 맞춰서 저는 고기 300g에 숙주 한 움큼 파채 한 움큼.

                                            무는 세로 4-5cm 1 토막 준비해 주세요

무를 강판에 갈으신 후 무즙과 무 건더기를 분리해 주세요. 즙, 건더기 둘 다 필요합니다.!

                                             무즙과 양념 재료를 다 섞어 주세요

                                             인간적으로 파채는 사서 할까요?  

팬에 기름을 두른 듯 만 듯 조금 넣으시고 한껏 달궈서 숙주 휘리릭 세 번 뒤척이도 파채 투하 헤서 휘리릭 한번. 절대로 푹 익히면 아니됩니다. 차라리 덜익은게 더 나아요. 센불에 휘익. 잊지 마세요.

볶아 낸 숙주와 파채를 넓은 접시에 펼치신 후 상추를 손으로 뜯어 악센트를 부여합니다.

                                                냄비에 맥주 넣어서 끓이세요

                 맥주가 팔팔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중불로 줄이시고 고기를 잽싸게 익혀주세요

펼쳐 놓은 숙주와 파채 위에 고기를 띄엄띄엄 놓고 무 건더기도 슬슬 뭉쳐서 놓아주세요.

                                             소스를 위에 끼얹어 주시고 마무리.

이 음식에 키포인트는 무심함입니다. 정성? 그런 거 꺼내지 마세요 괜히 열받아요.

당근 같이 보이지만 유자청구요. 상추 손으로 뜯어 툭툭, 고기도 슬슬 익혀 툭툭 무건더기도 손가락으로 잡아서 툭툭... 잊지 마세요. 소스 짜지 않아요 듬뿍 뿌려 드세요.


생채도 좋고 갱시기도 좋지만 아주 뜨문뜨문 이런 아이 곁들여서 술 한 잔 즐길 수 있잖아요.

소스 홀딱 반하실걸요 날씨 척척할 때 툭툭 해서 드셔보세요

유자청 없으시다면 고추냉이 잊지 아세요 이 버전도 너무 좋아요.

맛이 선선하다니까요!


바텐더 오라버니를 보내면서 내 친구의 명언

" 어차피 우리가 못 가질 바에야 게이가 나은것 같아 욕심도 안나고 딱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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