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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Apr 02. 2024

남이 소소 5.

엉엉 앓다.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베갯잇이 젖었다.

' 뭐야 나 운 거야?'

아팠다.

전기요 온기는 따뜻했는데 난 덜덜 떨었고 밤새 아팠었던 기억은 희미한데

내 눈은 울었나 보다.

우는 줄도 모르게 울었구나.

과외 수업을 해야 하니 일찍 나섰다.

가게에 도착하니 아직 수업시작할 때까지는 시간이 여유가 있다.

뭐라도 좀 먹어야겠다. 싶어서

가게에 남아 있는 시들한 야채와 이것저것을 넣어 샌드위치를 하나 말았다.

돌나물의 발견.

비싼 로메인, 치커리 라디오치아는 넣어 두고 돌나물이 시들한 게 있길래 케요네즈 바르고 돌나물 한층 깔고 삶은 란 넣고 햄 깔고 즈 넣고 대충 반개를 만들어 GS 커피를 하나 사서 샌드위치와 함께 우적우적 먹었다. 밤새 앓은 듯했는데 샌드위치를 먹고 나니 수업할만하겠다 싶었다. 돌나물이 샌드위치에 괜찮았다.

아니 훌륭했다. 하나 건졌다. 돌. 나. 물.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망고잼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그 기운은 남아 있지 않아서 망고를 집으로 데려와서 집에서 망고잼 작업을 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과외하고 돌아온 게 무슨 벼슬한 것처럼 난 드러누웠고 엄마는 아픈 나에게 화를 내시다가 달래시다가 또 화를 내시다가 따뜻한 물 계속 갖다 주시고 오후에는 365 병원에 다녀와서 일요일이 끝났다.

월요일에는 경남이네 집밥 연재를 하는데 브런치는  내가 아픈데 쓰라고 쓰라고 문자 계속 뜨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골골 죽어가 면서 마지막 작품 남기는 대가처럼 레시피글을 하나 쓰고    좀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다들 잠든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동생 베짱이 도시락을 싸고 가족들의 구박을 한껏 받으면서 아침시간을 보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 잘 못하는 나는 오후가 되자 외출하신 엄마를 찾아 이마트에서 만나자 해서 이마트 외출을 감행했고 이마트 쇼핑을 끝내자 베짱이가 꽃구경하자고 퇴근길에 전화가 와서 꽃구경을 나섰다.

아직은 만개는 아니고 나름 이쁜 꽃과 빛나는 햇살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는데 엄마의 폭풍 같은 잔소리에 머리가 너덜너덜 해져서 하지만 나름 행복해서 "엄마 봄날같이 엄마를 사랑해"하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 폭풍 일시 정지, 난 편안해졌다.

커피 마시자고 베짱이가 말했고 그녀가 사겠다 해서 당연히 난 좋다 했다.

아이스가 간곡히 당겼으나 엄마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아몬드라테 윈드스톤의 아몬드 라테는  아름답다

묵직한 바디감 햇살과 잘 안 어울릴 듯 하지만 최고였다.

저 자리에서 우리 엄마 나한테 자신이 차고 계시던 까르떼에 시계 주시겠다 선언하시다.

이십대 끝언저리에 엄마가 주신 까르띠에 시계를 세탁기에 돌려서 작살냈는데

난 귀한 걸 받을 자격이 없는데 자꾸 주시고 난 또 작살을 내고 잃어버리고 뫼비우스의 띠이다.

난 이상한 복이 있는데 필요하다 생각하면 잘 들어온다.

가져야겠다가 아니라 있었으면에서 끝인데.

닷새 전에 아침 체육관에서 샤워하다가 클렌저 다 썼네 사야겠다.라고 잠깐 생각했는데

일요일 클렌저가 걸어 들어왔다.

베짱이는 소름 끼친다고 할 정도이다.

내가 이런 일을 인지하게 시작한 것은 중3 소니 워크맨부터이다.

그냥 잠깐 "갖고 싶다" 생각만 하는데 사달라고 말도 안 꺼냈는데 걸어 들어온다.

나도 신기하니까. 립스틱도 아귀포도 고추냉이도 다 그렇게 걸어 들어온 친구들이다.

감사한 일이다.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잠깐 생각을 하고 내가 잊어야 내 것이 된다.

예전에는 맘이 쓰린 일이 있어서 몸이 아팠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건 몸이 아파서 맘이 쓰려지는 것 같다.

온갖 부질없는 일들이 머릿속을 떠돌고 난 시름거리게 한다.

지난 삼일 동안 어쩌면 오늘 밤에도 쓸데없는 기억들과 상념들이 나를 힘들게 할 것이다.

내 맘이 후벼질 때마다 내가 누굴 후빈 적이 있는지 생각하고 힘들어하고 이렇게 몸도 맘도 늙어간다.

오늘 낫지 않는 기침 때문에 (드디어 등통을 동반했다) 잘 가는 동네 병원에 갔다.

대기실에서 난 기침이 터졌고 내 기침 소리에 진료실에 계시던 할아버지 샘이 나오셔서는

"너 들어와"하시면서 날 데리고 들어가셨다. 기다리시던 환자분들도 슬쩍 웃으시고 난 민망해하고

진료를 끝내시고 할아버지 샘은 내 어깨를 토닥토닥해 주시면서 "주사 맞고 가"하셨다.

누구에게라도 다정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내가 받는 다정함이 헛빵이 안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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