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그날의 위기를 만든 깊은 뿌리' 를 읽고
9. 다시 만난 세계, 작동하는 헌법 을 읽고
- 탄핵심판은 그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고 실제로 구조가 어느 정도 형사절차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 하지만 중요한 차이들도 있다. 검사는 (비록 정확히 같은 검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모두 ’검사‘라는 기관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공소제기(기소)와 공소유지를 모두 담당한다. 또 공소제기 여부는 (물론 검찰 내부의 조직상 업무 통제를 받지만) 일단 검사의 권한이다. 공소제기에 비유할 수 있는 탄핵소추는 대통령의 경우 (재적 국회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재적 국회의원 2/3 이상의 찬성을 통한 의결(헌법 제65조 제1항, 제2항)을 통해 이루어지며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되는 소추위원(헌법재판소법 제49조 제1항)은 단지 청구인인 국회를 대표할 뿐이다.
- 한편 검사가 법원의 ’심판‘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약간 어폐가 있고 마찬가지로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피고인 또는 피청구인의 잘못 여부를 따지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국회가 헌법재판관들을 ’심판‘하지도 않는다. 인사청문회는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잘잘못을 따져 심판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그런 사유들을 가지고 헌법재판관으로서 자질을 갖추었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검증하는 절차일 뿐이다. 헌법재판소장의 임명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아예 국회에서 지명 및 선출하는 3인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관의 임명에는 국회의 동의가 요구되지 않는다. 본래 인사청문제도라는 것도 국민의 대표가 고위공직 후보자들에 대해 검증을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2000년에야 제정된 것이다.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의 임명에 관한 사항은 헌법재판소법에서 규정하는데 이 법은 1988년에 제정되었다. 그러니까 본래 헌법재판관의 지명과 임명에는 국회는 자기 몫을 제외하고는 전혀 무관했다.
- 계엄 국면에서는 정말 조마조마했다. 왜냐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택했으며 무엇보다 헌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포고령을 발포했다는 건 결국 물리력을 동원해 헌정 질서를 뒤엎겠다는 의지로밖에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설령 국회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헌법 제77조 제5항)를 한다고 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 밀어붙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리고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를 완전히 물리적으로 장악하려고 시도했다. 그날 밤은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1988년 현행 헌법 시행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 만에 법(法治)이냐 힘(人治)이냐의 시험대에 올라선 것이었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우리 국민과 헌법과 국가는 이 급습을 이겨냈다.
- 탄핵정국 때에는 여러모로 화가 나는 국면이 많았다. 정치권은 계엄이라는 핵폭탄급 사태를 맞고도 성숙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법을 도구화했다. 심지어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도 자기의 당리/당략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인 헌법해석을 내놓았다. 기성세대 정치인들에 대한 존중감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헌법은 계속해서 그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극단적인 경우의 수들을 맞았다. 그리고 그 경우의 수들은 내가 보기에는 헌법을 모독하는 것들이었다.
- 국무총리와 법률이 정하는 국무위원은 대통령의 유고 시에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데(헌법 제71조), 헌법상 대행하는 권한의 범위에 관한 명문 규정은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전례로는 고도로 제한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해 왔다. 그리고 학계와 법조계의 권고도 그와 같다. 당시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 등은 정부수반이 아닌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건 불가하다는 법리를 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국가원수로서의 권한에 해당하므로(대법원장, 국회 지명 몫까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므로, 국가 전체의 수장으로서.),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 등은 이러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 그런데 우선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 등이 대통령의 권한 중 국가원수로서의 권한은 행사할 수 없다는 근거가 없다(사실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과 정부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오직 후자만 놓고 보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국가원수라는 개념이 다소 독재적 뉘앙스가 있는 영향이 커 보인다.). 전적으로 내 생각인데, 헌법 제71조 제1항을 보면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독자적인 지위 같은 ‘명사’가 있다기보다 권한을 ‘대행한다’라는 ‘동사’이다. 그러니 예컨대 ‘권한대행’이라는 지위가 대통령과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권한대행’의 권한이 대통령에 비해 제한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문리해석이 헌법의 유연한 해석(헌법의 규범적 본질상 목적, 연혁 등을 고려하고 문리에만 갇힐 수 없음)이라는 해석 원리에 반하지도 않는다. 국무총리건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이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자는 적어도 법문상으로는 대통령의 권한을 모두 대행하되 그 구체적 행사를 고도로 자제해야 할 뿐이므로, 결국 권한을 대행하는 자의 권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의 문제와 같다.
- 국민의힘의 주장을 국가원수로서의 권한 중 행사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취지로 이해해야 할까? 예를 들어, 국가원수로서의 권한에는 군통수권(헌법 제74조 제1항)이 포함되는데, 국가의 현상 유지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군통수권이 공백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도 군의 경계 태세 등에 흔들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는 고건, 황교안 전 국무총리 그리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할 때에 이미 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 군통수권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 등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렇게 구분할 법적 근거도 실익도 없다. 만약 대통령 유고 시에 전시 상황이 되거나 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자가 제한적으로만 군통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앞서 언급했듯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자가 대통령의 권한 중 정부수반으로서의 권한은 행사가 되고 국가원수로서의 권한은 행사가 되지 않는다고 볼 법적 근거도, 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국가원수로서의 권한 중에서도 다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없는 권한이 있다고 볼 법적 근거도 전무하다.
- 2017년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선애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여 임명한 전례가 있다. 이 경우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여 세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할 것인지의 여부와 본질적으로 같다.
- 헌법재판소법 제6조 제1항에서 대통령이 재판관을 ‘임명한다’라는 법문은, 국회와 대법원장이 지명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삼부가 삼인씩 나누어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함으로써 헌법재판소 구성에서 삼부의 대등한 관여를 보장하고자 하는 헌법재판소법 규정의 취지가 몰각된다. 또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장관이 한 것처럼 선별해서 임명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안 된다. 헌법재판소는 권한쟁의심판 결정에서 헌법 제111조 제2항과 헌법재판소법 제5조에서 정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재판관으로 선출되거나 선출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경우 임명을 ‘보류’하고 재선출을 요구할 수는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재량이 아니라 기속이지만 요건 불비나 절차상 하자 등과 비슷한 경우로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임명이 의무이기도 하다고 판단했다.
(참고 : 헌법재판소 2025.2.27. 선고 2025헌라1 결정)
- 또, 후순위 대행권자들인 법률이 정하는 국무위원인 기획재정부장관 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의 유고라는 비상시국에서 선거를 통해 국민의 위임을 받지 않은 자가 권한의 대행을 하는 것이므로 물론 신중해야 한다. 더구나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지만, 기획재정부장관은 본래 그러한 지위와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므로 더 신중하긴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국무총리와 마찬가지로 법률이 정하는 국무위원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할 때 그 권한의 범위 같은 것이 명문상 규정이 있는 게 아니다.
- 헌법과 법률의 어디에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나 법률이 정하는 국무위원이 정치적/정책적 이유 등을 들어 재량으로 사실상 형식적 임명권이고 나아가 구체적 작위의무인 헌법재판관 임명을 선별적으로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근거 자체가 없다. 그러니 최상목 부총리는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아예 법적 근거가 없는 행위를 한 것이다.
-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2025년 2월 27일 헌법재판소의 국회-대통령 간 권한쟁의심판 결정이 난 후에도 한 달 가량이 지나 2025년 3월 24일에 탄핵소추 기각으로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무 복귀해 자기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도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이행하지 않았는데 이는 심각한 위법이다. 헌법재판소법 제66조 제2항에 따르면 헌법재판소가 부작위에 대한 심판청구를 인용하는 결정을 한 때에는 피청구인은 결정 취지에 따른 처분을 하여야 한다. 하지만 최 부총리 측은 그러지 않고 심지어 권한쟁의심판 결정의 효력을 임의적인 것으로 판단하려는 정황이 있었고 이는 국정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필요조건이 헌법, 법률과 헌법재판 결정의 준수라는 점에서 최상목 부총리가 자기 스스로 자기가 처음에 제기한 국정 안정이라는 명분을 깨뜨린 셈이다.
-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 때 국민의힘은 권한대행이기 때문에 정족수 요건이 대통령에 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건 독자적인 지위로서의 ‘명사’가 아니라 권한을 대행한다는 ‘동사’이다. 그러니 권한대행이라는 지위가 대통령과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문리해석이 헌법의 유연한 해석(헌법은 그 규범적 본질상 문리에만 구속될 수 없음)이라는 해석 원리에 반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국민의힘은 권한대행은 대통령이 아니므로 대통령의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탄핵소추 정족수만은 대통령에 준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다. 정부와 국회는 많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계엄해제 이후 수습 국면에서 헌법을 존중하고 국정ㆍ민심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치적 공격ㆍ방어에 모든 힘과 논리를 동원하는 미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 계엄과 탄핵 정국에 관하여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경제부총리, 국민의힘 등에 관하여서는 여러 차원의 비판과 평가가 있다. 그런데 민주당에 대해서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이재명 대표 주도 민주당은 계엄의 밤에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집합하여 해제시킨 ‘진압’의 공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수습’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것은 이후 정권교체가 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국가가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되고 있다. 이미 2022~2025년의 야당 시절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2021년부터의 민주당의 태도와 바이브는 폭주 기관차 같았다.
- 민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상원’으로 규정하면서 실질적으로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심사권이 입법 병목 현상을 유발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법제사법위원장을 비법조인 출신으로 했다. 그건 그럴 수 있는데, 하필 왜 가장 선동적이고 강경한 정청래 의원을 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사는 민주당의 정치 코드를 그대로 보여준다.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이 탄핵심판에서 소추위원이었다. 실질적으로는 국회 측 대리인이 되는 변호사들이 많은 것을 했다고 하더라도, 소추위원은 심판의 변론에서 피청구인을 신문한다(헌법재판소법 제49조 제2항). 헌법재판은 학교의 학생재판이 아니다. 미묘하고 복잡한 사실관계와 법을 서로 연결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래야 유의미하게 변호인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 최기상 의원은 이미 2023년에 헌법재판소법과 국회법 개정을 통해 소추위원을 법제사법위원장이 아니라 탄핵소추안 발의 의원 중 1인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 기술적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입법론적 차원이 아니라 정확한 사법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없이 피상적이고 자의적인 이해만 가지고 간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법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차원의 접근과 사법적 접근은 서로 다르다. 그 양자를 함께 이해해야지 어느 일방만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을 상대하는 영상을 보면, 정치권이 얼마나 포퓰리즘에 잠식되어 있는지 – 그것도 일반 국민이 아니라 민주당 당원과 일부 지지층만을 본위로 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감정적이고 단순화된 레토릭과 일방적으로 야단치는 말이 구체적이고 세부적이며 감정과 이성을 분리해 생각하는 말을 이기기 마련이다. 솔직히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하는 정부나 법원 인사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입법과 정치와 여의도 문법은 민의를 이해하지도 대표하지 못하며 무엇보다 내용적 합리성이 심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 탄핵정국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민주당 중진들과의 소통을 통해 최상목 부총리가 정계선, 조한창 재판관 임명이라도 했던 점과 민주당 중진들이 최상목 탄핵을 만류했던 점이다. 당시에 민주당은 상황을 유연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현재 민주당의 문법과 정서로는 ‘그렇게 약한 자세로는 예측 불가능한 광인(狂人)들을 상대할 수 없다.’라고 하겠지만, 사실 강/약과 같은 이분법을 전제로 ‘유연한 태도=약하고 끌려다니는 태도’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특히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 최상목 전 부총리와 민주당 중진들은 적어도 ‘정국과 국정 안정’이라는 큰 결은 공유하고 있었다. 최 전 부총리의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에 대한 경악과 반대도 그런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다만 그는 관료제의 논리가 너무 강했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관료제가 진정으로 복무해야 하는 대의나 구체적으로 따라야 하는 규범에 대해서조차 무감해진다. 그러한 부분을 민주당 중진들이 개별 설득을 통해 부분이나마 완화하는데 성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재선 주도의 강경한 태도가 아니라 중진들의 설득이 부분적이라도 성과를 냈다.
- 당시 중진들의 반응은 ‘초재선 의원들이 탄핵을 너무나 쉽게 생각한다.’, ‘선명한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일이 되게 하는 게 중요한 것’, ‘줄탄핵은 만능이 아니다. 중도층을 끌어안지 못하면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도 힘들어진다.’라는 것이었다. 최 전 부총리도 ‘민주당 의원들의 성의에 감사하다’라는 의사를 표했다.
- 민주당 입장에서는 어차피 대세가 이미 탄핵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책임 있는 수권정당으로서 수습하는 자세를 보이면서도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했다. 민주당이 이제까지와 같이 강 대 강으로만 대치한다면, 국민들은 서서히 양비론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국민의힘이 자기 책임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실제로 탄핵 반대론이 점점 증가했다. 걱정해야 할 건 헌법재판관들의 결정이 아니라 국민의 여론이었다. 탄핵심판 막바지에 국민 여론은 거의 찬:반이 6:4에 가까웠고 실제 헌법재판소 결정은 만장일치로 파면이었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에는 새누리당 비박+국민의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a로 누가 보더라도 이념을 막론하고 헌정 질서 수호라는 대의로 통합했다는 인상을 충분히 주었다. 그래서 찬성 측 시위가 국민 일반의 의지를 대표한다는 인상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탄핵은 좀 달랐다. 국민보다 민주당이 훨씬 앞섰고 애초에 무대에 민주당 말고는 유의미한 플레이어가 없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만 남은 상태에서 양자가 서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니 제3자적 관점에선 양비론이 고개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당은 한편으로는 원칙과 정의를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과 전략을 말했지만 실은 어느 쪽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민주당이 성공한 유일한 이유는 오직 윤석열 대통령이 자폭 스위치를 눌렀기 때문이다.
- 민주당이 성공할 때는 대체로 의견의 다양성이 보장되었을 때였다. 강경하게만 보이는 민주당의 얼굴로는 국민을 상대할 수 없다. 지금 당장은 국민의힘의 처참한 실패라는 거대한 레버리지에 기대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한계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것도 매우 크게. 2023년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때 솔직히 나는 놀랐다. 이재명 대표가 억눌러 놓은 국회의원들의 위기감이나 개인의 의사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만든 결과들이었다. 입으로만 통합을 말하고 뒤로는 함정을 파고 있었던 이재명 대표는 중진들이나 고문들 그리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조언을 사실상 묵살했다. 그래서 민주당엔 이미 다른 의견이라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는 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 표결은 꽤 놀라웠다. 그다음 해 총선에서 완전히 박살이 났지만. 그렇게 엉망인 공천 결과이긴 했어도 탄핵정국 때 보이듯 안 보이듯 노력한 민주당 중진들을 평가한다.
- 헌법은 위기 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평시에도 항상 작동한다. 법전은 법이라는 문언의 물리적 표상일 뿐이다. 실제의 헌법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국가기관 간 권한의 경계, 그리고 시민과 정치가 보여준 제도적 자제와 감시 속에서 늘 작동해 왔다. 또 헌법은 민주주의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인간존엄성과 개인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을 보장해왔다. 민주주의가 작동하지만 동시에 질적으로 망가져 있는 상황에서,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헌법이 깨어나는 순간’이 아니라 평시에도 헌법을 실질 규범으로 존중하는 태도와 언행, 그리고 그런 문화를 가진 공동체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