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그리고 정책과 법

by 남재준

[판결] 자해 위험 우울증 환자 딸에게 '대리 처방'… 법원, '정당행위'로 의사 무죄 < 지방법원·지원 < 판결기사 < 판결큐레이션 < 기사본문 - 법률신문


나는 정신질환 정확히 말하면 우울증과 관련된 정책의제, 법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는 반드시 정신건강복지법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시대에는 먹고 사는 문제, 가족이나 국가 등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너만 힘든 게 아니라 다 그렇게 산다. 하나하나 다 문제라고 하면 이 세상에 문제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 너무 심약한 거 아니냐.'라는 말이나 생각도 상당했다.


틀린 말은 아니고, 정신건강문제에 대해 정직하게 대응한다는 것이 그 문제 뒤에 숨어 문제의 직시나 자기 주도적 삶을 회피해도 된다는 의미는 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의사나 상담사나 사회복자사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고 다만 자신이 극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따름이다.


현대사회는 근대사회와 달리 분배와 복지국가의 중시를 넘어 사람의 정신적, 실존적 문제에 대한 대응이라는 차원으로 문명이 발전해 있다. 삶의 질을 양적으로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돌보아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정신질환은 낙인이나 비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고, 관점에 따라서는 정신건강의학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중요한 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는 점', '정신적/신체적 노력만으로 견디거나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다는 점' 등에 있고, 여기에 의학적/심리적 치료와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 있다.


오늘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거나 임상심리상담, 정신건강사회복지 서비스의 도움을 받고 있는 한편, 우울증과 자살의 문제는 사회문화적 밀도와 압력이 아직도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 계속 주요 사회문제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은 국가의 정신건강보장정책 수립/시행 의무, 국가-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정신건강서비스, 정신건강요양/재활시설(통칭 정신건강증진시설), 정신건강질환자 권익 보호 시스템, 입원과 퇴원의 규제 및 통제 등을 규정하는 사회보장법ㆍ일종의 행정법이다.


특히 입원과 퇴원 관련한 부분이 중요한데, 소위 ‘비자의입원제도’가 오랜 기간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기본권 관련 문제의 뇌관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2016년은 이 쟁점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정책과 정신건강사회복지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온 해였다. 입법-행정-사법 전반에 걸쳐 중요한 혁신이 이루어졌다.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21년 만인 2016년 5월에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로 전면개정되면서 보호입원제도가 개선되고, 4개월 뒤에 헌법재판소의 구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제2항상 소위 ‘비자의입원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헌법재판소 2016.9.29. 선고 2014헌가9 전원재판부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해 2월에 정부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치료 본인부담률을 30~60%에서 20%로 낮추면서 상담료 수가를 현실화하여 약물 처방 위주에서 심층 상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문재인케어 하에서의 건강보험 정신건강보장 확대(어린이-청소년 조기 치료 지원, 심리검사와 인지행동치료 등 급여 확대), 지역사회 정신건강서비스 확충 및 지원 강화 등으로 정신건강의료와 (지역 차원) 정신건강사회복지 및 임상심리 서비스의 양방향에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박근혜-문재인 정부 등 보수-진보를 불문한다.


하지만 정신건강질환자에게는 그 자신이 당사자가 되는 여러 법적 문제가 있게 된다. 보험법의 주요 주제가 되어 온 생명보험에서의 자살 면책 약관(피보험자가 자살로 사망한 경우에는 보험자(보험사)는 보험수익자에게의 보험금지급의무가 면책) 문제가 대표적이고, 형법에서는 이 기사와 같은 사건이 문제 될 수 있다. 의료법(제17조의2 제1항)에서는 환자 본인이 처방전을 수령해야 하고 의사도 환자 본인에게 처방전을 교부/발송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동법의 벌칙(제89조 제1호, 제90조)에서는 대리처방한 경우 처방전을 교부한 의사와 수령한 대리인을 모두 처벌한다.


의료법

제17조의2(처방전)

①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관찰한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가 아니면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전자처방전에 한정)하지 못하며,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에게 직접 진찰을 받은 환자가 아니면 누구든지 그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가 작성한 처방전을 수령하지 못한다.

제89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15조제1항, 제17조제1항ㆍ제2항(제1항 단서 후단과 제2항 단서는 제외한다), 제17조의2제1항ㆍ제2항(처방전을 교부하거나 발송한 경우만을 말한다), 제23조의2제3항 후단, 제33조제9항, 제56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 또는 제58조의6제2항을 위반한 자

제90조(벌칙)

제16조제1항ㆍ제2항, 제17조제3항ㆍ제4항, 제17조의2제1항ㆍ제2항(처방전을 수령한 경우만을 말한다), ... (중략) ... 을 위반한 자나 제63조에 따른 시정명령을 위반한 자와 의료기관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되어 의료행위를 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사건에서는 환자가 내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딸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한 처방전을 교부한 의사가 해당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안으로 보인다. 내가 시스템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처음부터 이 사건이 어떻게 입건되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환자 당사자가 결국 자살에 이르렀으므로, 그 사건이 경찰에 신고되었거나 하다면 그때 정황을 말하면서 대리 처방 사실이 수사기관에 인지되었거나 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사실 대리처방은 명확히 위법행위로 규정되어 있지만, 사실관계만 보면 위법성조각사유로서의 정당행위의 하나인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형법 제20조)에 해당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래서 법적 해명과 판단이 필요한 지점이 있으므로 기소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다만 의사 본인이 받았을 스트레스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애초에 기소의 필요가 있었을까..?)


의료법 해당 조항은 구성요건이 너무 단순해서 구성요건해당성은 별로 판단할 것도 없고, 다음으로 위법성조각 여부가 문제된다. 다만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지’는 추상적인 것으로서 판단기준으로서는

1. 행위의 동기, 목적의 정당성

2. 행위의 수단, 방법의 상당성

3. 보호이익-침해이익 간 법익 균형성

4. 긴급성

5. 보충성 (그 행위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음)

이 있어서 이의 충족 여부를 살펴야 한다.


중요 사실관계 요소로는 (a) 환자가 우울증 환자였다는 점 (b) 딸이 병원에 내원한 사이 환자가 스스로 주거지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점 (c) 환자가 고령이었다는 점 (d) 사건 발생 2일 전에 환자가 진료를 받은 점 등이 있다.


특히 (b), (d)가 중요해 보인다. 고작 이틀 만에 내원했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의 상황이 자해나 자살 등의 위험이 크고 급박했음을 의미하고 실제로 딸의 내원 중 환자가 자살했다.


또 환자가 고령이고 사건 당일이 9월 22일인데, 이때는 가을로 접어들거나 여름이 아직 가시지 않거나 하는 환절기이다. 본래도 신체적으로 조심해야 하는 고령자가 (설령 병원이 가깝더라도) 외출을 쉽게 택하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 게다가 우울증이 중하면 무기력이 극심하여 집 밖으로의 외출 자체를 극도로 꺼리는 경우도 많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건 이때가 아직 코로나19 팬데믹이 완전히 종결된 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2023년 5월에 정부에서 6월부터는 격리 의무를 해제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9월이면 그로부터 대강 1년쯤 전이다. 고령의 정신질환자를 쉽게 외출시키기 어려운데다 불과 이틀 전에 내원한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사회상규의 관점에서 보면, 대리처방 금지는 법으로도 명문화되어 있을만큼 문제가 크다고 보아야 맞다. 다만 만성/중증 질환자라면 상당 기간 해당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신질환은 알레르기성 비염 등에 비할 수 없는 것이지만, 상시 그랬던 것이 아니라면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고 본다.


이 행위는 사회상규에 ‘부합하는 것’(최대)은 아니지만 ‘위배되는 것’(최소)은 아니고, 법문상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정당행위로서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되고 따라서 무죄라고 봄이 타당하다. 이러한 사정은 (이러한 판단과 배치될만한 사실관계의 또 다른 구체적 경위와 맥락 등이 있지 않은 한) 의사와 환자의 딸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본다.


이 사안에서 의사에 대한 기대가능성은 결국 환자의 상태에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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