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의 성수(聖水)

by 남킹


1922년 7월 중순, 파리, 스퀘어 로비네 5번지

(편지지는 이전과 같으나, 이번에는 가장자리가 잉크 얼룩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아마도 포도주일 것이다—가 마른 자국으로 지저분하다. 글씨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고, 거의 종이를 뚫을 기세로 휘갈겨져 있다. 문장과 문단 사이의 간격은 거의 무시되었으며, 페이지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끓어오르는 생각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이전의 지적인 논쟁의 분위기 대신, 어떤 심오한 고통과 그 고통을 끝내 웃어넘기려는 처절한 광기가 뒤섞여 있다.)

친애하는 군의관 양반에게,

당신의 편지는 독(毒)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의도한 그런 종류의, 서서히 스며드는 신경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제(司祭)가 휘두르는 성수(聖水) 채(aspergillum)와도 같았습니다. 다만 그 안에 담긴 것이 축성된 물이 아니라, 가장 순수한 형태의 진실이라는 이름의 황산(黃酸)이었을 뿐. 당신의 고백은 제 방의 탁한 공기를 가르고 날아와, 제가 입고 있던 용병의 더러운 갑옷을 녹여버리고, 그 아래 숨겨져 있던, 저 자신조차 들여다보기를 꺼려했던 맨살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베르 박사가 당신의 편지를 불태우라고 했다지요? 그 양반, 제대로 된 진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완전히 착각했습니다. 당신의 예술이 제게 전염시킨 것은 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항체(抗體)였습니다. 당신의 그 고요하고 질서정연한 지옥을 엿본 후에야, 저는 비로소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지옥의 진짜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연금술이 치명적인 ‘독’을 가져다가 생명을 구하는 ‘약’으로 바꾸는 과정이라 하셨습니다. 당신의 질투라는, 그 개인적이고 수치스러운 광기를 가져다가, ‘보편적인 진실’이라는 차갑고 아름다운 결정체로 변성시키는 작업. 그것은 실로 경탄할 만한 위업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내전을 끝내기 위해, 당신 자신의 심장을 해부하고 그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완벽한 의학 논문을 썼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고통을 ‘이해’함으로써 그것을 정복했습니다.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제가 ‘삶의 난투극’을 벌인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난투극입니다. 당신의 내전은 적어도 당신의 ‘내부’에서, 당신의 통제하에 벌어졌습니다. 당신은 외과의사이자 환자였고, 전장이자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싸우고 있는 전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제 저 역시 당신의 정직함에 빚을 갚아야겠습니다. 당신의 알베르틴 뒤에 숨겨진 비밀처럼, 저의 글 뒤에도 제가 결코 ‘게워낼’ 수 없는, 그러나 저를 매일같이 게워내게 만드는 존재가 있습니다. 제 딸, 루치아.

그 아이는 한때 빛 그 자체였습니다. 춤을 출 때, 그 아이의 몸은 언어를 초월한 순수한 시(詩)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움직임 속에는 제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리듬과, 제가 결코 도달할 수 없을 완벽한 조화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저의 불완전한 언어에 대한 живой укор(살아있는 질책, 러시아어)이자, 저의 어두운 세계를 비추는 유일한 촛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꺼져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정신 속에서, 단어들이 제자리를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문법은 무너지고, 논리는 뒤엉킵니다. 때때로 그 아이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새로운 언어로 말을 합니다. 그것은 마치 여러 언어의 파편들이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유리 조각처럼 뒤섞인 모자이크와도 같습니다. 그 아이는 웃어야 할 때 울고, 울어야 할 때 웃습니다. 그 아이의 눈은 더 이상 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저 너머의, 제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공포, 혹은 어떤 황홀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독’입니다, 프루스트 씨. 이것이 제가 매일같이 마셔야 하는, 그 어떤 poitín보다도 독한 술입니다. 당신의 질투는 적어도 ‘이해’할 수 있는 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소유욕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의 뒤틀린 형태였지요. 당신은 그것을 분석하고, 해부하고, 그것에 대한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그것을 약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제 딸의 정신이 붕괴하는 것에서 어떤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해야 합니까? 그 아이의 고통 속에서 어떤 순수한 ‘본질’을 추출해내야 합니까? 그 아이의 헛소리 속에서 어떤 ‘에피파니’를 찾아야 합니까? 이것은 분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저 거기에 있는, 거대하고, 부조리하며, 신(神)의 잔인한 농담과도 같은, 끔찍한 ‘사실(fact)’일 뿐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납이 당신을 죽이려 했기에 그것을 금으로 바꾸어야만 했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납은 이미 제 일부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금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 납의 무게를, 이 납의 색깔을, 이 납이 낼 수 있는 둔탁하고 슬픈 소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연금술을 거부합니다. 저는 당신의 ‘약’을 거부합니다. 당신이 제게 건넨 그 한 방울의 약은, 제게는 가장 잔인한 거짓말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은 고통을 치유하고 기억을 보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속삭입니다. 그러나 어떤 고통은 치유될 수 없으며, 어떤 기억은 보존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그저 겪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의 예술은 치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증언입니다. 저의 양조장은 약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독을 마시고도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저는 저의 독을 정제하는 대신, 그것에 더 많은 독을 섞습니다. 더블린의 마비 상태, 아일랜드의 배신, 교회의 위선, 그리고 제 자신의 실패와 추방. 이 모든 독들을 가져다가, 제 딸의 광기라는 가장 끔찍한 독과 함께 거대한 통에 쏟아붓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휘젓습니다. 미친 듯이. 밤새도록. 단어와, 소리와, 신화와, 역사와, 기도문과, 욕설을 모두 함께. 그 결과물이 무엇이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것은 아마 소설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언어의 무덤이자, 언어의 자궁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잠의 도서관이 불타서 무너져 내릴 때 나는 소리. 모든 의미가 재가 되어버린 후에, 그 잿더미 속에서 새로 태어나는 불사조의 울음소리.

당신은 당신의 긴 문장이 의식의 미로를 탐색하는 지도라 하셨지요. 제 새로운 글은 지도를 불태우는 행위입니다. 그곳에서는 탐색이 불가능합니다. 그곳에서는 오직 익사(溺死)만이 가능합니다. 시간의 강물 속으로, 언어의 바다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는 것.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우리는 아마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납과 금이 원래는 같은 물질이었음을. 독과 약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성인과 죄인이 같은 기도를 올리고 있음을.

당신은 후방의 군의관이고, 저는 최전선의 보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진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선은 없습니다. 후방도 없습니다. 전쟁은 이미 우리 모두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환자이고, 동시에 우리 자신의 군의관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메스를 들었고, 저는 저의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상처에다 직접 불을 붙였습니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 치료법일까요? 아마 둘 다일 것이고, 동시에 둘 다 아닐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우리 각자의 ‘방법론’뿐입니다. 당신의 방법은 고통을 ‘넘어서려는’ 의지이고, 저의 방법은 고통 ‘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려는 의지입니다. 당신은 성(城)을 지키는 기사입니다. 저는 시궁창에서 노래하는 맹인 음유시인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없지만, 어둠 속에서 서로의 노래를 들을 수는 있습니다. 당신의 노래는 정교한 류트(lute) 연주처럼, 잃어버린 화음의 아름다움을 애도하는 고요한 발라드입니다. 저의 노래는 낡은 백파이프(bagpipe) 소리처럼, 찢어지고 헐떡이며, 삶의 모든 슬픔과 모든 기쁨을 한 호흡에 쏟아내는 거친 지그(jig) 춤곡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독을 약으로 바꾸었지만, 그 과정에서 당신은 무엇을 잃었습니까? 그 질투의 광기가 지녔던 생생한 힘, 그 혼돈의 에너지를 잃지는 않았습니까? 당신의 ‘보편적인 진실’이라는 차가운 금은, 당신을 죽이려 했던 그 뜨거운 납보다 정말로 더 가치 있는 것입니까?

저는 이제 압니다. 제가 만들고 있는 이 끔찍한 책은 제 딸을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저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증언일 뿐입니다. 한 남자가, 한 아버지가, 한 예술가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폭풍우 한가운데서, 어떻게든 의미의 돛대를 세우려고 발버둥 쳤다는 기록. 레오폴드 블룸이 그랬던 것처럼,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콩팥 구이를 맛보고, 비누 한 조각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불가능한 사랑을 꿈꾸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보낼 수 있는 약은 없습니다. 저는 군의관이 아니니까요. 대신, 저는 제가 끓이고 있는 이 양조 통에서,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찌꺼기 한 국자를 퍼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여기에는 더블린의 진흙과, 리피 강의 오물과, 제 눈에서 흐른 눈물과, 제 딸의 흩어진 단어들이 모두 섞여 있습니다. 냄새가 역겨울 겁니다. 맛은 더 끔찍할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당신의 가장 외로운 밤에, 당신의 연금술이 실패했다고 느끼는 순간, 당신의 모든 순수한 금들이 다시 납으로 변해버렸다고 느끼는 절망의 순간에, 용기를 내어 이 시궁창의 성수(聖水)를 한 모금 마신다면.

당신은 아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가장 순수한 금은 가장 더러운 진흙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상처를 끝까지 핥는 것뿐이라는 것을.

당신의 동료 환자,

제임스 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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