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7월 초, 파리 오스망 대로 102번지
(편지지는 이전과 같으나, 잉크는 보랏빛이 거의 사라진 묽은 회색에 가깝다. 글씨는 눈에 띄게 위태롭고, 몇몇 단어들은 거의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흘려져 있으며, 문장의 끝은 종종 힘없이 아래로 처져 있다. 편지 전체에서 극심한 피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어떤 지적인 의지가 동시에 느껴진다. 종이의 한쪽 구석에는 약물이 번진 듯한 희미한 갈색 얼룩이 있다.)
친애하는 싸움꾼 양반에게,
당신이 보낸 그 한 잔의 poitín은 제 방에 도착하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시는 데—아니, 그 증류된 혼돈의 증기를 들이마시는 데—또다시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제 주치의인 베르 박사는 당신의 편지를 보자마자, 마치 전염병 환자의 오염된 옷가지를 다루듯, 집게로 집어 불쏘시개 통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는 당신의 글씨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격렬한 에너지가 제 미세혈관을 파열시킬 수 있으며, 당신의 문장 속에 담긴 불경한 활력이 제 심장의 고요한 리듬을 교란시킬 것이라 진단했습니다.
저는 그의 충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당신의 편지를 읽는 동안, 저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제가 유년 시절, 천식 발작이 처음 저를 덮쳤을 때의 느낌과 흡사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공기가 갑자기 제 폐를 거부하고, 제 몸 안의 모든 혈관이 반란을 일으켜 저를 질식시키려 하던 그 공포. 당신의 단어들은 제 정신 속으로 들어와 바로 그와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것들은 제 사유의 질서정연한 호흡을 빼앗고, 제 기억의 연약한 조직을 공격했습니다. 당신의 ‘삶’이라는 이름의 그 지저분한 난투극은, 저의 코르크 방이 필사적으로 막아내려 했던 바로 그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며칠 동안 열에 들떠, 당신이 묘사한 레오폴드 블룸의 콩팥과, 당신 딸의 슬픈 눈동자와, 당신 아내의 강인한 “그래(Yes)”가 뒤섞여 떠도는 악몽을 꾸었습니다.
베르 박사가 옳았습니다. 당신의 예술은 제게 독(毒)입니다.
그러나 조이스 씨, 당신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연금술사는 납을 금으로 바꾸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독을 가져다가, 그것을 약으로 바꾸는 자입니다. 파라켈수스가 말했듯이, 모든 것은 독이며, 오직 ‘양(dose)’만이 독과 약을 구분할 뿐입니다. 당신의 편지는 제게 치사량에 가까운 진실을 주입했고, 그로 인해 저는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극점에서, 저는 당신의 양조장과 저의 연금술 작업실을 가로지르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비밀스러운 지하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당신은 제가 ‘특권’ 속에서 예술을 한다고, 삶의 지저분한 싸움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사실입니다. 저는 월세를 걱정하지 않고, 제 책을 팔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절박함도 없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제 투쟁은 한낱 유령과의 싸움, 즉 죽음이나 망각 같은 고상하고 추상적인 적과의 결투처럼 보였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모릅니다. 이 코르크 방이 외부 세계의 소음뿐만 아니라, 제 내부에서 들끓는 어떤 더 끔찍한 소음으로부터 저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감옥이라는 사실을. 당신이 싸우는 적들은 당신의 ‘외부’에 있습니다—가난, 질병, 사회. 그러나 제가 싸우는 가장 무서운 적은 제 ‘내부’에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게워내어 예술로 만들지만, 저는 제 예술이 저의 삶을 게워내지 않으면, 그 삶에 의해 잡아먹히고 말 것입니다.
당신은 저의 예술이 순수함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결과일 뿐 과정이 아닙니다. 저의 연금술이 다루는 원재료, 즉 저의 납덩이는 당신의 그 어떤 지저분한 경험보다도 더 추하고, 더 어둡고, 더 독성이 강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주인공이 오줌 냄새 나는 콩팥을 맛보는 것을 찬미하셨지요. 그것은 대담한 정직함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삶의 어떤 부분들을 당신처럼 정직하게 바라볼 용기가 없습니다. 그것을 날것 그대로 직시한다면, 저는 미쳐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 역시 당신의 요구에 따라, 가장 완전한 정직함으로 답하겠습니다. 제 책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그 거대한 질투의 감정, 즉 스완이 오데트에게, 그리고 화자(‘나’)가 알베르틴에게 느끼는 그 끝없는 의심과 고통의 실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읽으며, 한 병약한 지식인의 섬세하지만 과장된 감정 분석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고상한 감정이 만들어낸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그림자라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그것은 분석이 아니라 증상이었고, 아름다운 그림자가 아니라 제 영혼을 갉아먹는 암세포였습니다. 알베르틴이라는 인물 뒤에 숨어 있는 그 실제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제가 느꼈던 질투는, 책에 묘사된 것보다 천 배는 더 비천하고, 더 추잡하고, 더 광기 어린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의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제가 결코 가질 수 없는 다른 세계, 즉 여성들의 세계에서 쾌락을 얻고 있을 것이라는, 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끔찍한 공포였습니다.
그 질투에 사로잡혔을 때, 저는 더 이상 고상한 사상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묘사한 뒷골목의 잡배보다도 더 비열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돈으로 사람을 사서 그녀를 미행하게 했고, 그녀의 편지를 훔쳐 읽었으며,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을 분해하여 그 안에 숨겨진 거짓의 증거를 찾아 헤매는 편집증 환자였습니다. 그녀의 잠든 얼굴을 보며 사랑을 느끼는 동시에, 그녀의 꿈속으로 들어가 그 비밀을 찢어 발기고 싶은 파괴적인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제 몸은 실제로 병들었습니다.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었고, 위장은 경련했으며, 밤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습니다.
이것이 저의 ‘삶의 난투극’이었습니다, 조이스 씨. 그것은 당신처럼 외부의 적과 벌이는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의 사랑이, 제 자신의 욕망이, 제 자신의 심장이 저를 죽이려 드는, 끔찍한 내전(內戰)이었습니다. 당신은 생존을 위해 글을 쓴다고 하셨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살아남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그 독을 제 몸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그것이 저를 완전히 삼켜버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처럼 그것을 그대로 ‘게워낼’ 수 없었습니다. 그 혼돈을, 그 광기를 날것 그대로 종이 위에 쏟아내는 것은, 그저 미친 자의 헛소리를 기록하는 것과 같았을 겁니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자살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연금술사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 질투라는 이름의, 치명적인 독을 가져다가, 조심스럽게 제 연금술 용광로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시간과 망각의 불을 지폈습니다. 수년에 걸쳐, 그 경험의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부분들이 타서 사라졌습니다. 그녀의 실제 이름, 우리가 다투었던 사소한 이유들, 저의 비열했던 행동들. 이 모든 구체적인 ‘납’들이 망각의 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의 의식이, 당신이 비판했던 바로 그 지성과 분석이, 메스를 들고 그 재를 헤집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랑에 미친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심장을 해부하는 외과의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질투’라는 감정을 마치 미지의 곤충처럼 핀으로 고정시키고,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사랑, 소유욕, 허영심, 타인에 대한 무지, 시간에 대한 공포—을 하나씩 분해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고통을 객관화하고, 그것을 보편적인 법칙의 사례로 만들려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연금술의 비밀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경험을 정제하여 순수한 본질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고통’이라는 가장 주관적이고 혼란스러운 독을 가져다가, ‘보편적인 진실’이라는 차갑고 질서정연한 약으로 ‘변성’시키는 과정입니다. 제가 스완과 ‘나’의 질투에 대해 그토록 길고 복잡하게 쓰는 이유는, 그것이 제게는 생존의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저는 비로소 그것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당신처럼 납의 납다움을 찬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납은 저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금으로 바꾸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납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이제 당신의 poitín과 저의 연금술적 약의 관계가 보이십니까? 당신은 삶의 모든 불순물을 모아 강력한 독을 만듭니다. 그 독은 사람들을 취하게 하고, 춤추게 하고,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삶의 격렬한 에너지를 느끼게 합니다. 그것은 강력하고, 필요하며, 진실합니다.
그러나 그 술이 깬 다음 날 아침, 끔찍한 숙취와 함께 찾아오는 공허함과 절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삶의 혼돈을 찬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혼돈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합니다.
저는 당신이 만든 그 독을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맛보고, 그 성분을 분석하고, 그 안에 담긴 치명적인 힘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정제하고, 희석하고, 다른 물질들과 결합하여, 단 한 방울만으로도 기억을 영원히 보존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비추는 약을 만듭니다. 당신의 술이 순간의 ‘체험’을 준다면, 저의 약은 영원한 ‘이해’를 줍니다.
당신은 당신의 새로운 바벨탑이 땅속으로, 잠의 영역으로 파고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 잠의 영역을 탐험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길을 잃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야말로 모든 기억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위대한 도서관이라 믿습니다. 잠은 혼돈이 아니라, 지성이 잠든 사이에만 접근할 수 있는 더 깊은 질서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낮 동안 잃어버렸던 모든 시간의 조각들이 그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저의 예술은 바로 그 잠의 도서관에서, 잃어버린 책 한 권을 찾아내어, 그것을 낮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는 동료 싸움꾼입니다, 조이스 씨. 하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전선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당신은 삶의 최전선에서, 그 혼돈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보병입니다. 당신의 무기는 날것 그대로의 언어와, 부서지지 않는 정신입니다. 저는 후방의 야전 병원에서, 그 전투가 남긴 끔찍한 상처들을 치료하는 군의관입니다. 저의 무기는 분석이라는 메스와, 기억이라는 약초와, 망각이라는 마취제입니다. 보병 없이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지만, 군의관 없이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poitín 한 잔에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제게 제가 잊고 있던 삶의 맛, 즉 고통의 맛을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이제 답례로, 저의 약 한 방울을 당신께 보냅니다. 그것은 아마 아무 맛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아주 고요한 밤에, 당신의 눈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그 약을 당신의 혀 밑에 떨어뜨린다면, 당신은 아마 당신이 떠나온 도시의, 당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느 하루의, 가장 완벽하고 순수한 향기를 맡게 될지도 모릅니다.
상처 속에서, 당신의 동료 군의관,
마르셀 프루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