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라는 무심한 조각가가 빚어낸 폐허, 나의 요람이자 무덤이 될 이 종착지로. 아흔아홉 해의 세월이 육신의 연대기 위에 새겨 넣은 것은 지혜의 훈장이 아니라, 패잔병의 상흔과도 같은 퇴락의 흔적이었다. 공기 중에는 먼지인지, 잊힌 기억의 포자인지 모를 미세한 입자들이 마지막 햇살의 사선(斜線) 속에서 부유하며 느리게 춤을 추었고, 그 현상학적(現象學的) 풍경은 내 망막 위에서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허물었다. 길고 황량했던 여정의 끝, 그러나 안식처라기보다는 시간의 풍화작용 속에 스러져가는 거대한 기념비, 그 잔해에 가까웠다. 늙고 병든 육신은 매 순간 존재론적(存在的)인 반란을 일으켰고, 관절 마디마디는 녹슨 경첩처럼 비명을 질렀으며, 영혼은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간이역이 보인다. 아흔아홉 해. 돌이켜보면 섬광과도 같은 찰나였으나, 그 안에는 영겁의 고통과 환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엉켜 있었다.
뚜렷하게 행복했다고 말할 수도, 그렇다고 처절하게 불행했다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도 없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으로 그린 렘브란트의 자화상처럼 희미한 빛과 짙은 그림자가 뒤섞인 모호한 풍경. 나는 그 헤겔적 변증법(辨證法)의 아포리아(aporia) 속에서 위안을 찾으려 애썼다. 그래, 정(正)과 반(反)이 격렬히 투쟁한 끝에 마침내 합(合)에 이른, 대체로 만족스러운 삶이었다고, 나는 삭아가는 내면을 향해 위태로운 주문을 외웠다. 내가 살아온 시대는 평화와 전쟁, 파멸과 희망, 종말과 재건, 살육과 용서가 격렬하게 뒤엉켜 춤추던, 그야말로 역사의 용광로였다. 니체의 영원회귀(永遠回歸) 사상처럼, 인류는 같은 과오를 지겹도록 반복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폐허 위에서 매번 새로운 짜라투스트라를 기다렸다. 대모님의 충고는 내 삶의 등대,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는 아르고호의 뱃머리를 비추는 유일한 별빛이었다. "선한 자들을 벗으로 삼아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 상처 입은 땅을 지켜라." 그 말씀을 따라, 파괴와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 대지를 보호하고자 나의 모든 것을, 마지막 한 방울의 피와 숨결까지도 쏟아부었다. 그리고 나는, 기적처럼, 혹은 저주처럼, 아직 살아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때로는 가장 잔인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내 몸뚱이보다 더 소중했던 나의 연인, 나의 벗들이 모두 레테의 강 저편으로 떠나버린 지금, 남겨진 자의 슬픔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시베리아의 한기(寒氣)와 같았다. 텅 빈 방 안, 의자들은 주인을 잃고 침묵 속에 앉아 있고, 벽난로는 온기를 잃은 채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홀로 맞이하는 새벽의 적막함 속에서, 그들의 부재(不在)는 단순한 빈자리가 아니라 실체를 가진 고통이 되어 내 늑골을 압박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올 때면, 나는 차라리 미쳐버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 있다는 것, 기억의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는 여전히 생생하고, 비록 느리지만 마른 빵 조각을 넘기고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며, 떨리는 손으로나마 펜을 쥘 힘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나에게는 완수해야 할 마지막 의무, 나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마지막 과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숨이 다하기 전에, 나의 시대를 스쳐 지나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태워 빛을 발했던 의인들의 이야기를 후세에 남겨야 한다. 이것은 어쩌면 미래를 살아갈 이들에게 주는 위태로운 시대의 증언이자 카산드라의 교훈일 수도 있고, 앞서간 이들이 자행했던 과오에 대한 처절한 반성문, 한 세기의 고백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종말과 파멸의 시대를 온몸으로 버텨내고 마침내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살랐던, 저 고귀한 영혼들에 대한 진혼곡(鎭魂曲)이자, 그들의 삶을 향한 나의 마지막 경배라는 점이다.
그 영혼들의 연대기는 나의 사랑, 나의 아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인이었던, <나탈리아>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그녀는 단순한 기록자를 넘어선,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역사가였고, 시대의 모순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저술가였으며, 필요할 때는 잔 다르크처럼 불굴의 의지로 불의에 맞서 싸운 전사였다. 예언가이셨던 장인어른, 니콜라스의 불가해하고 때로는 광기 서린 듯한 델포이의 신탁 같은 읊조림을, 마치 신의 말씀을 받아 적는 아메누엔시스(amanuensis)처럼 한 자도 놓치지 않고 기록한 <나탈리아의 일기>와, 전쟁의 참혹한 민낯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성의 파편들을 생생하게 증언한 <나탈리아의 편지>는, 이제 내가 풀어낼 이야기의 굳건한 반석이자 흔들리지 않는 등대가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아내의 기록이라는 거대한 바다, 그 심연을 표류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가장 큰 수혜자일 뿐이다. 그녀는 글자를 깨우친 순간부터, 마치 그것이 코기토(Cogito)의 증명인 듯, 연필과 종이만 주어진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신의 설계도부터 인간의 가장 추악한 욕망까지 담아내려는 듯, 끊임없이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잉크가 마를 날이 없었고, 그 잉크는 역사의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나탈리아는 아버지 니콜라스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몽롱한 상태에서 토해내는 모든 말을, 한 자 한 자 소중히 일기장에 새겼다. 그것이 단순한 환영이나 잠꼬대가 아닌, 미래를 꿰뚫는 예언임이 판명되자, 그녀는 자신의 삶 전체를 그 예언의 정확한 해석과 검증, 그리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거나 혹은 다가올 재앙을 막아내기 위한 실천에 헌신했다. 나는 그녀의 세밀하고 꼼꼼하게 기록된 일기장 페이지들을 넘기며 경탄과 존경심을 금할 수 없었고, 낡은 종이 위에서 희미하게 풍겨오는 그녀의 체취와 잉크 냄새 속에서 우리의 사랑은 더욱 깊고 단단해졌다. 그녀의 모든 기록은 이제, 동쪽 끝, 세상의 아침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땅,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이곳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신의 땅>에 천년의 세월을 굳건히 버티며 우뚝 솟은 <가르니에> 수도원 도서관, 그 깊숙한 서고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먼지 쌓인 양피지 두루마리와 희귀 고서들 사이에서, 그녀의 기록은 미래 세대에게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될 것이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바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아내의 방대한 저술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더듬어 오르는, 미약한 등반가의 기록과 같을 것이다. 그녀의 글을 요약하고, 거기에 나의 희미한 경험과 기억의 조각들을 살짝 덧대는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될 책의 분량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그녀가 남긴 기록의 양이 실로 바다처럼 깊고 넓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새로운 글을 창조하기보다는, 기존의 내용을 선별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간추리는 큐레이터의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나는 뼈저리게, 매 순간 느낀다. 죽음이 나의 떨리는 펜을 멈추게 할 때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이 오늘 저녁 노을과 함께 찾아올지, 아니면 내일 새벽의 여명과 함께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서둘러야 한다. 내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만남들,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과 가장 어두웠던 기억의 심연들을, 한 권의 책 속에 봉인해야 한다. 나의 첫 작품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기록이 완성된 후에도, 운 좋게 내게 여전히 숨 쉴 기력이 남아 있다면, 나는 신께 깊이 감사하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녀가 미처 다 기록하지 못한, 혹은 내가 직접 겪어야 했던 또 다른 이야기들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마지막 숨결이 잉크가 되어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