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명의 소설가
밝은 방 안, 창문 너머 햇살이
조용히 내 원고지 위에 내려앉는다.
나는 오늘도 거기에 세계를 새긴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지고
종이 대신 스크린이, 이야기 대신 속도가
모든 것을 삼킨다.
날이 갈수록, 이 길은 더욱 험하다.
아내는 슈퍼마켓에서 하루 종일 서 있다.
무거운 상자를 옮기고
가득 찬 바구니를 계산하며
허리와 어깨가 늘 아프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내 고집스런 꿈이 그녀의 고단함을
더 길게 늘어뜨린 건 아닐까.
그녀가 지친 숨결을 내게 들키지 않으려
웃어주는 순간, 마음이 저민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쓴다.
서투르고 가난한 내 문장들이
언젠가는 그녀의 손을 잡고
푸른 언덕 위로 우리를 이끌어 주길 바라며.
그러니
내 사랑이여
조금만 더 기다려 주오.
이 무명의 날들을 지나
우리 둘만의 이야기가 꽃피울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