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부터 뒤척였다. 밤새 잠은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의식을 날카롭게 찔러댔다. 기대와 우려가 교묘하게 뒤섞인 이물감, 설렘과 긴장이 불안하게 공명하는 아침. 오늘은 내 인생의 또 다른 분수령이 될지도 모를, 맞선이 있는 날이었다.
<이루리> 결혼정보회사. 그곳에서의 열세 번째 공식적인 만남. VIP 고객이라는, 이제는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딱지를 붙인 내게 회사는 또 한 명의 ‘걸맞은’ 남자를 제시했다. 모니터 위로 그의 신상이 무심하게, 그러나 중압감 있게 펼쳐졌다. 이름 석 자 아래 나열된 스펙들. 마흔하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 미국 유학파. 키 177센티미터, 몸무게 77킬로그램. 수도권 아파트 자가 소유. 교육자 집안이라는 배경. 취미는 독서와 등산이라는, 건전하고 예측 가능한 항목들. 사진 속 그는 호감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방점 – 연봉 일억 이상. 숫자들이 희미한 안개처럼 피어올라 내 미래를 담보하는 듯 아른거렸다.
아침 식사는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마치 의식을 치르듯, 나는 밥알 몇 개를 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나의 오랜 단골 미용실, <버르장머리>. 익숙한 소독약 냄새와 달콤한 헤어 제품 향이 뒤섞인 공간에서 나는 정성스럽게 매만져졌다. 디자이너의 능숙한 손길이 지나갈 때마다 거울 속의 나는 조금씩 더 완벽한 허상으로 거듭났다. 마침내 완성된 모습. 우아함. 세련됨.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이십 대 중반이라 해도 능히 속아 넘어갈 법한 팽팽한 젊음의 아우라. 물론, 그 아우라는 자연의 선물이 아니었다. 복코였던 코는 날렵하게 솟아올랐고, 눈매는 시원하게 트였다. 시술은 중독처럼 번져, 가슴과 허벅지에도 미세한, 그러나 결정적인 손길이 스쳤다.
이 모든 인공적인 아름다움의 배후에는 나의 전담 커플 매니저, 나직방 씨의 집요한 권유가 있었다. 그녀는 나의 ‘상품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며 압구정역 7번 출구 <오똑한코 성형외과>의 문턱을 넘게 했다. 거액의 투자는, 인정하건대, 눈부신 결과로 돌아왔다.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잘 뽑았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그 찬사의 이면에는, 처참하게 쪼그라든 나의 은행 잔고가 신음하고 있었다. 겨우 일백만 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숫자는 생존의 마지노선이자, ‘인생 밑바닥’이라는 냉혹한 현실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직한 한숨이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절로 새어 나왔다. 어쩌다 내 인생이 이 지경까지 흘러왔을까.
모든 비극의 씨앗은, 돌이켜보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그 흔하디 흔한 탁상용 캘린더였다. 사장 친척이 운영한다는, 촌스러운 로고의 <바나나 저축은행> 이름이 곳곳에 요란하게 박힌 작은 달력. 매달 뒷면에는 어김없이 유럽의 어느 도시 풍경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 고즈넉한 카페 테라스, 하늘을 찌르는 첨탑의 교회. 뭔가 고상하면서도 멜랑콜릭하고, 동시에 낯설면서도 친근한 그 풍경들을, 나는 그저 무심히, 아무런 감흥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적어도, 운명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나는 한때 열렬한 비혼주의자였다. 하지만 나의 비혼 선언은, 세상의 다른 비혼주의자 여성들과는 그 결이 사뭇 달랐다. ‘혼자 사는 삶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라거나, ‘타인에게 나를 맞추고 싶지 않아서’, 혹은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같은, 납득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이유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 정반대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유연애’. 나는 구속받지 않고 여러 남자들과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내게 불필요한 족쇄일 뿐이었다. 나는 입버릇처럼 떠들고 다녔다.
“인생 뭐 별거 있어? 찰나 같은 순간인데.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즐기면서 사는 거지.”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삶을 뒷받침할 만한,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다. 남초 집단이었던 컴퓨터 공학과에서 나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몇 안 되는 여학생 중에서도 ‘엘프녀’로 불리며 수많은 남학생들의 선망과 추종을 한 몸에 받았다. 그들은 마치 해바라기가 태양을 좇듯, 나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단순히 예쁘기만 한 꽃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지성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학내 최고의 자바(Java) 전문가.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내로라하는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의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었다. 덕분에 국내 굴지의 IT 기업 스카우터들이 귀찮을 정도로 나를 찾아왔다.
입사 후에도 나의 명성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뻥튀기처럼 부풀어 올랐다. 회사에서 나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독사>. 한번 컴퓨터 앞에 앉으면 기본 열다섯 시간은 꼼짝 않고 코드와 씨름했다. 내 손끝에서 탄생하는 소프트웨어는 버그 하나 없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사용자의 숨겨진 요구(Needs)까지 간파하여 최적의 인터페이스를 구현했고, 속도, 보안, 데이터베이스 효율성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완벽성을 위해 기꺼이 회사에서 숙식하며 청춘을 갈아 넣었다. 그렇다고 일에만 매몰된 샌님은 아니었다. 때때로 마음에 드는 젊은 사원을 골라 값비싼 호텔의 물침대에서 은밀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눈부신 명품 매장에 들러 충동적으로 고가의 가방이나 구두를 사들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고, 사장이나 임원들을 적당히 구슬려 값비싼 오마카세 식당이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호사를 누렸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보란 듯이 인스타그램에 전시하며 나의 화려한 삶을 과시했다.
승진은 거침없었다. 나는 곧 팀장이 되었고, 우리 개발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회계 프로그램 <척척이>는 그 해 <베스트 어워드 소프트웨어> 최우수상, <글로벌 SW> 대통령상, <신 SW 상품> 대상 등 주요 상을 휩쓸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개발 총괄팀장으로서 나는 회사 역사상 최연소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내 주변의 모든 남자가 나를 떠받들었다. 동료들은 경외심을, 상사들은 기대를, 부하 직원들은 두려움 섞인 존경심을 보냈다. 나는 회사라는 왕국에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여왕벌이었다. 내 인생의 정점, 황금기였다. 적어도, 그놈의 탁상 달력 속 풍경에 내 마음이 송두리째 사로잡히기 전까지는….
자, 이제 달력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그래, 그날은 11월 1일이었다. 무심코 10월 달력을 찢어 넘겼다. 그리고 마주한 뒷면의 사진. 프랑스 파리의 어느 뒷골목 광장이었다. 저 멀리 에펠탑의 실루엣이 보였고, 하늘은 붉은 저녁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노천카페의 작은 테이블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이 서로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멋진 사진이군’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에는 ‘꽤 끌리는 사진인데’라고 느꼈다. 그리고 다다음 날, 사진 속 카페의 연인이 문득 부러워졌다. 그들의 여유와 낭만이 내 현실과는 너무도 달라 보였다. 그리고 다다다음 날, 나는 강렬하게 그곳에 가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못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동안 쌓인 나의 연차만 해도 25일. 앞뒤로 주말과 월차까지 끼워 넣으면 족히 한 달. 소위 ‘파리지앵으로 한 달 살기’가 완벽하게 가능했다. 게다가 두둑하게 쌓인 나의 통장 잔고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장기 휴가 결정에 회사 사람들은 의외로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마치 유명 CF의 카피처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개발 담당 이사님은 인천 국제공항까지 나를 배웅하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건지 아니면 잠시나마 독사에게서 해방된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모를 눈물까지 글썽였다.
태어나 처음 밟아본 유럽 땅. 모든 것이 낯설고 조금은 불편했지만, 그 생경함마저 즐거웠다. 입가에는 종일 이유 없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나는 현대인답게 각종 여행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에서 얻은 정보들을 총동원하여 첫 일주일은 그야말로 신들린 듯 파리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루브르의 방대한 예술품 앞에서 감탄하고, 센 강변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이름난 레스토랑에서 미식을 탐닉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예정된 ‘볼 것’과 ‘먹을 것’의 리스트가 하나둘 지워져 나가자, 슬그머니 지겨움과 함께 뼛속 깊은 외로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래서 하루는 작정하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만 사 들고 와 종일 에어비앤비 숙소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런데 해 질 녘, 누군가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맞은편 방에 사는 여자였다. 짧은 영어와 손짓 발짓을 섞어 그녀는 나를 파티에 초청했다. 그녀는 곧 이곳을 떠나 헝가리로 간다고 했다. 작은 송별회였다. 근처 가게에서 저렴한 부르고뉴 와인 한 병을 사 들고 그녀의 방으로 가보니, 놀랍게도 남자 세 명에 여자 한 명(초대한 그녀),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 총 다섯 명이 전부였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같은 층에 세 들어 사는 이웃들이었다. 네 개의 방에 여자 한 명, 남자 세 명이 각각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단출하지만왁자지껄했던 파티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나는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마신 와인에 취해 그녀의 방 한쪽 구석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홀가분하게 헝가리로 떠났고, 나는 얼떨결에 그녀가 비운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한 달, 아니 그 이후의 7년 8개월은… 내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동시에 가장 퇴락했던 시간들의 기록이다. 파리의 그 작은 방에서 시작된 나의 여정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향락, 퇴폐, 탐욕, 쾌락. 나는 매 순간 감각적인 만족을 추구했다. 이름 모를 도시의 클럽에서 밤새 춤을 추고, 낯선 남자들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고, 카지노에서 돈을 탕진하기도 했다. 책임감도, 미래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오직 순간의 강렬한 자극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한 달 예정이었던 여행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년으로 늘어났고, 나는 쾌락이라는 달콤한 독에 서서히 중독되어 가는 도파민의 노예가 되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축제에도 끝은 있었다. 한때 두둑했던 나의 통장이 종잇장처럼 가벼워졌을 때,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초라한 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어 미루고 미루던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돌아온 한국에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끔찍할 정도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중력은 바닥났고, 복잡한 코드를 들여다보는 것은 고문과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중소 IT 업체에 취직했지만, 일은 여전히 끔찍하게 싫었다. 나는 능숙한 거짓말쟁이가 되어갔다. 보름이면 끝낼 수 있는 개발 업무를 한 달이 걸린다고 부풀렸고, 한 달짜리 프로젝트는 석 달쯤 걸릴 것이라고 둘러댔다. 당연히 그런 속임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무능과 태만은 금세 탄로 났고, 그때부터 지긋지긋한 ‘직장 옮겨 다니기’가 시작되었다. 짧게는 몇 달, 길어야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짐을 싸고 푸는 일을 반복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나이는 어느새 서른아홉. 세상을 호령할 듯했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증발했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보통신 업계에서 나는 그저 그런, 퇴물 프로그래머로 전락해 있었다. 빛나던 과거는 희미한 잔상으로만 남았다.
절망의 늪에서 나는 나를 구원해 줄 동아줄을 찾아 헤맸다. 그것은 바로 ‘결혼’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제적으로 안정된 남자를 만나 그의 능력에 기대어 사는 삶. 한때 젊은 남자들이 나이 든 여자의 경제력에 기대는 것을 비웃으며 ‘퐁퐁남’이니 ‘설거지론’이니 떠들었던 바로 그 이론이, 이제는 내가 필사적으로 추구해야 할 현실이 되어버렸다. 나는 과거의 화려했던 이력을 최대한 미화하고, 현재의 초라함은 감쪽같이 숨겨 결혼정보회사에 내밀었다.
“고객님, 우선 인스타그램에 올리신 해외여행, 명품, 오마카세, 고급 호텔 사진부터 전부 삭제하셔야 합니다.”
나의 커플 매니저, 나직방 씨는 단호하게 요구했다. 내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설명을 덧붙였다.
“예전에는 외제차 끌고 다니는 남자 보면 다들 능력 있다고 인정했죠. 하지만 요즘은 안 그래요. 젊은 애들이 그러면 열에 아홉은 카푸어(Car Poor)라고 의심부터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이런 노골적인 허영과 사치는 더 이상 통하는 시대가 아니에요. 진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가 자제가 아닌 이상, 삼십 대 후반 여성이 이런 고급 호텔이나 명품 사진으로 인스타를 도배하면, 정신 똑바로 박힌 남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알겠죠? 제 말뜻을? 대신 책 읽는 사진, 도서관 다녀온 인증샷 같은 걸 많이 올려주세요. 차분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겁니다. 아, 그리고 애완동물 사진은 호불호가 갈리니까 일단 피해주시고요.”
나는 그녀의 냉철한 조언에 따라 옷장 깊숙이 처박혀 있던 수수한 디자인의 정장 세트를 꺼내 입고, 로고가 거의 보이지 않는 평범한 핸드백을 겨드랑이에 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희망, 나의 ‘퐁퐁남’ 후보가 근무하는 도시, 대전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스마트폰 뱅킹 앱을 열어 잔고를 확인했다. 18만 원. 이 돈으로 다음 월급날까지, 꼬박 한 달을 버텨야 했다. 심연에서부터 끌어올려진 듯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후회막급. 쾌락만을 좇았던 삶의 끝자락은 이토록 비루하고 처참했다. 이제 나는 순수하고 성실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기생하여 이 비루한 삶을 연명하려 하고 있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얼마나 경멸할까.
“인생 뭐 별거 있어? 한순간인데. 그냥 적당히 속고 속이면서 사는 거지 뭐.”
스스로에게 내뱉는 냉소적인 위안이 공허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사실,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한 후 아주 잠깐이지만, 과거의 ‘독사’로 돌아가 정신을 차렸던 순간이 있었다. 어느 스타트업 컴퍼니의 면접 자리였다. 젊고 패기 넘치는 사장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담긴 앱 개발 제안서를 내밀었다.
“이거, 3개월 안에 구현 가능하시겠습니까? 우리 회사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입니다.”
그의 눈빛에서 절실함과 함께 나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읽혔다. 그 순간, 내 안의 잠자고 있던 개발자의 혼이 꿈틀거렸다.
“네. 가능합니다.”
나는 미친 듯이 개발에 몰두했다. 밤낮을 잊고 코드에 파묻혔다. 정말이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몰입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만끽했다. 손끝에서 구현되는 완벽한 로직, 사용자 편의성을 극대화한 인터페이스. 그것은 창조의 희열이었다.
결과물은 성공적이었다. 사장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만족했고, 내가 보기에도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은 앱이 탄생했다. 그는 내게 정식 입사와 함께 회사 지분의 3%를 파격적으로 제안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하지만 나는 눈앞의 급한 불을 꺼야 했다. 당장 성형수술 비용이 필요했고, 결혼정보회사 가입비와 활동비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목돈을 요구했다. 찰나의 조급함과 욕심이,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를 재기의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차 버린 셈이었다.
내가 개발한 그 앱은 출시되자마자 시장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해 <최고의 독창적 스마트앱 어워드>를 수상했고, 론칭 6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1억 건, 월간 액티브 유저 3,00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루 평균 업로드되는 콘텐츠 수가 1억 건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각종 IT 전문 신문과 잡지 표지를 장식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사장의 얼굴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바라보며, 속에서 차오르는 씁쓸함을 삼켜야만 했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성공을 남의 것으로 지켜봐야 하는 아이러니.
버스는 대전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는 긴장으로 뻣뻣해진 몸을 이끌고 택시에 올라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강변을 따라 우뚝 솟은 <신세상 타워>의 스카이라운지, <오마노 라운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창가 좋은 자리에 앉아 있던 나직방 씨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옆에는, 잔뜩 호기심 어린 표정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나았다. 연구원이라는 직업에서 연상되는 호리호리하고 어딘가 궁상스러운 이미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꾸준히 운동으로 다져진 듯 건장하고 다부진 체격에, 깔끔하게 넘긴 헤어스타일과 잘 맞는 세미 정장 차림이 세련된 인상을 주었다.
나직방 씨는 간략하게 서로를 소개한 뒤,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는 상투적인 말을 남기고 쏜살같이 자리를 떴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남자는 먼저 입을 열어 내게 메뉴판을 공손히 내밀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첫 만남에서 캐비어나 송로버섯 같은, 턱도 없이 값비싼 요리는 절대 주문하지 마세요. 남자가 부담스러워합니다.”
커플 매니저의 신신당부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신중하게 메뉴판을 훑어보며 너무 비싸지도, 너무 저렴하지도 않은 적당한 가격대의 봉골레 파스타를 골랐다. 남자는 등심 스테이크와 함께 곁들일 하우스 와인 두 잔을 주문했다. 그의 표정과 말투로 보아, 그는 내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는 내가 굳이 대전까지 내려온 것에 대해 거듭 감사를 표하며, 다음 만남은 반드시 서울에서 갖자고 제안했다. 나는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식전 빵과 신선한 샐러드가 먼저 나왔다. 남자는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마치 준비된 면접 질문처럼, 조심스럽지만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성의껏, 그리고 나직방 씨가 코칭해 준 ‘모범 답안’에 가깝게 대답했다. 사실 그의 질문들은 대답하기 어려운 것들이 아니었다. 대부분 가족 관계, 학창 시절, 현재 하는 일, 과거 연애 경험, 인생관, 결혼관 등 지극히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범주의 물음들이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고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와인을 한 잔씩 나누고 메인 요리가 나왔다. 파스타 면을 포크에 감아 올리고,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써는 동안 잠시 대화가 끊겼다. 나는 그 짧은 침묵의 시간 동안, 눈앞의 남자를 통해 펼쳐질지도 모를 나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돈이 보장하는 안락함. 더 이상 잔고 걱정 없이 즐기는 쇼핑, 우아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고급 피트니스 클럽 회원권, 원할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해외여행…. 착하고 능력 있는 남편이 제공하는 느긋하고 풍족한 물질적 기반 위에서, 나는 다시금 예전의 여왕벌처럼, 혹은 그 이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터였다. 감미로운 상상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나는 달콤한 꿈에서 막 깨어난 공주처럼, 최대한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음… 수학과 출신이기도 하고, 또 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초면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좀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자는 스테이크의 마지막 한 조각을 신중하게 씹어 삼킨 뒤, 냅킨으로 입가를 정갈하게 닦아내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빛이 조금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나는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나긋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심장이 이유 없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평등주의자입니다. 특히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오히려 반가움이 앞섰다. ‘평등’.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우리 사회에서 남녀평등만큼 여성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기분 좋게 들리는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 네. 저도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평등, 정말 중요하죠.” 나는 진심으로 안심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이 남자, 생각보다 훨씬 깨어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어떻게 서울행 고속버스 표를 끊었는지, 그 과정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분노와 치욕감에 정신이 팔려, <오마노 라운지>에서 대전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어떻게 왔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오직 방금 겪은 일에 대한 엄청난 분노와 모멸감으로 들끓고 있었다. 나는 터미널 대합실의 차가운 플라스틱 벤치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분을 삭이지 못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귓가에는 아직도 그 남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리는 듯했다.
“우리 사회의 남녀 불평등 문제가 하루빨리 해소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남자는 나를 마치 성녀라도 되는 듯, 사랑스럽고 존경심마저 담긴 듯한 눈길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네, 맞습니다. 직장 내 성차별도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나 차별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나는 기분 좋게 와인 잔을 비우며, 그의 ‘깨어있는’ 생각에 한없이 너그러운 표정으로 동조했다.
”그래서 저는 늘 주장합니다. 동일 노동이면 동일 임금을 지급하고, 동일한 기회가 주어지면 동일한 기준으로 진급시키고, 휴가도 공평하게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네, 전적으로 옳으신 말씀이세요. 정말 합리적인 생각이십니다.“
”맞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저와 마음이 통하는 지적인 여성분을 만난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오늘,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 저도… 드디어 인연을 만난 것 같아서… 정말 기쁩니다.“ 나는 수줍음과 기대감을 담아 화답했다.
”모든 것은 공평해야 합니다. 공평함이야말로 모든 관계의 기초입니다. 공평하면 갈등이나 분쟁이 생길 여지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오늘 식사처럼, 자기가 먹은 음식값은 자기가 내면 됩니다. 아주 간단하고 공평하죠.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활비는 수입에 비례해서, 혹은 정확히 절반씩 공평하게 부담하고, 육아도 공평하게 하루하루 번갈아 가면서 책임지고, 집안일도 철저히 분담하고요. 혼수 비용도 당연히 절반씩 공평하게 부담하고, 아파트 구매 자금도 절반씩 공평하게 내서 공동명의로 하고, 각종 세금이나 부대비용 등등 앞으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정확히 절반씩, 공평하게 나누어 내면 됩니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평등한 세상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네…? 자… 자기가 먹은 식대… 라고요?“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네. 그렇죠. 본인이 드신 건 본인이 내셔야죠. 당연히. 그래야 공평하죠. 어떻습니까? 제가 이 근처에 아주 분위기 좋은 수제 맥줏집을 알고 있는데, 괜찮으시면 2차로 자리를 옮기시겠습니까?“ 남자는 마치 대단히 합리적이고 멋진 제안이라도 한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계산대로 향했다.
순간, 와인 기운이 확 달아나며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내가 방금 헛것을 들었나 싶어 아프지 않게 볼을 살짝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고,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온몸을 덮쳐왔다.
‘저… 저놈이 방금 도대체 뭐라고 씨부렁거리면서 간 거야?’
나는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 황급히 화장실로 간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 심호흡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최대한 조용히,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나와 라운지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제발, 그가 이미 계산을 다 마치고 떠났기를 바라며. 심장이 미친 듯이 방망이질 쳤다. 하지만 내가 문의 손잡이를 막 잡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나를 붙잡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고객님, 죄송하지만, 아직 결제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네…?“ 나는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은 채 되물었다.
종업원이 정중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영수증을 내밀었다. 영수증에는 남자가 주문했던 스테이크 값과 와인 가격의 정확히 절반만이 결제된 것으로 찍혀 있었다. 남은 금액은 내가 주문한 파스타 값과 와인 절반 값의 합계였다.
‘이… 이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개새끼…!’ 순간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컴컴한 심연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 만나려고 내가 그동안 피 같은 돈을 끌어모으고, 없는 살림에 수술까지 감행했단 말인가!’
”그럼… 얼마를 내면 되나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네. 고객님께서 결제하실 금액은 총 16만 5천 원입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손이 수치심과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차마 신용카드를 꺼낼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한도 초과로 결제가 거절되기라도 한다면… 이 치욕스러운 상황에 더해 그런 굴욕까지 당할 수는 없었다. 나는 지갑에서 체크카드를 간신히 꺼내 건넸다.
결제가 끝나고 라운지를 뛰쳐나오듯 빠져나왔다. 16만 5천 원. 내 전 재산 18만 원에서 그 금액을 제하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고작 1만 5천 원뿐이었다. 나는 그 돈을 탈탈 털어 서울행 우등 버스표를 겨우 끊었다. 심야 버스는 엄두도 못 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는 맨 뒷좌석 창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등받이 레버를 찾아 있는 힘껏 뒤로 젖혔다. 거의 누운 자세가 되었다.
‘그 치사하고 옹졸한 새끼 만나려고 내가 어젯밤 잠까지 설쳐가며 기대했던가…. 결국 이 꼴을 당하려고… 내가 정말 병신 쪼다 같은 년이지….’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버스 바닥을 있는 힘껏 발로 한 번 쿵 굴렀다. 그리고는 지친 눈을 감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 낡은 버스가 당장 데굴데굴 굴러서 어디 깊은 낭떠러지에 처박혀 산산조각 나버렸으면 싶었다.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듯한 처절한 고독감과 자기혐오가 온몸을 휘감았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나의 존재.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또다시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손님. 죄송하지만 등받이 조금만 올려주시면 안 될까요? 뒷좌석 손님이 많이 불편해하십니다.“
짜증스럽게 눈을 떠보니, 중년의 버스 운전기사가 공손한 표정과 온화한 미소를 띤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잔뜩 날이 서 있는 내 눈에 그는, 방금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 쪼잔하고 계산적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의 남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그저 ‘남자’일 뿐이었다. 세상 모든 남자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싫은데요. 못하겠는데요. 뒷사람 불편한 게 왜 제 탓이죠? 의자가 이렇게 뒤로 넘어가게 만들어진 거잖아요! 의자 탓이지, 왜 제 탓을 하세요!“ 나는 신경질적으로 버럭 쏘아붙이며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소위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내 안의 분노는 이미 통제 불가능한 상태였다.
”손님, 그래도 이 버스는 누워서 가는 리무진 버스가 아닙니다. 일반 고속버스예요. 다른 승객분들도 생각해서 조금만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운전기사는 물러서지 않고 차분하게 다시 한번 설득했다.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이만큼 젖혀지도록 만든 거 아니냐고요! 뭐가 문제냐고요! 공장에서 이렇게 생산돼서 나온 제품인데! 정 불만이면 버스 제조회사에 가서 따지시든가요! 씨팔!“ 나는 참았던 울분과 욕설을 터뜨리듯, 고개를 번쩍 들고 사방을 둘러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 안의 마지막 이성의 끈이 끊어진 듯했다. 그러자 바로 뒷좌석에서 어떤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외쳤다.
”아줌마!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되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개념 좀 챙겨요! 조금만 양보하면 될 걸 가지고 왜 이렇게 진상을 부려요? 자유라는 게 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할 거 아니에요!“
”거절하는 것도 나의 자유야! 이 개자식아! 너나 잘하세요!“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 젊은 녀석이 앉은 쪽으로 달려들 듯 몸을 돌리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숨을 헙 들이켜며 얼어붙고 말았다. 나를 향해 있던 것은 그 젊은 남자의 얼굴만이 아니었다. 내 뒤편, 그리고 주변 좌석에 앉아 있던 거의 모든 승객이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나를 촬영하고 있었다. 수십 개의 차가운 렌즈가 나를 겨누고 있었다.
”그렇게 누워 가고 싶으면 돈 더 내고 리무진 버스 타세요!“ 어디선가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외쳤다.
”입장 바꿔서 한번 생각해봐요! 당신 뒤에 앉았다고 생각해봐!“ 중년 남자의 훈계조 목소리도 들려왔다.
”나이 처먹었으면 좀 곱게 처먹지! 뭔 지랄이야!“ 거친 욕설과 비난이 사방에서 빗발쳤다.
”닥쳐! 너나 잘해! 이 더러운 관종 새끼들아!“ 나는 이성을 잃고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들 듯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찍고 있던 젊은 여자의 스마트폰을 홧김에 확 낚아챘다. 그리고 그 작은 화면을 분노에 찬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화면에 떠 있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인터페이스였다. <곧바로업>(GobaroUp). 내가 밤낮없이 매달려, 내 모든 열정과 재능을 쏟아부어 만들었던 바로 그 앱. 수려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촬영과 동시에 편집, 자막 생성, 그리고 실시간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는 물론, 전 세계 444곳의 주요 커뮤니티 사이트와 66곳의 무료 동영상 플랫폼에 자동으로 영상을 업로드해 주는 편리하기 짝이 없는 다기능. 심지어 주변 음성을 자동으로 캡처하여 자막으로 변환하고, 실시간 자동 번역 기능까지 탑재하여 언어의 장벽 없이 전 세계 누구나 쉽게 ‘이슈’를 공유하고 퍼뜨릴 수 있게 만든,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혁신적인, 내가 낳은 자식과도 같은 바로 그 앱.
나의 가장 빛나는 성취였던, 나의 사랑스러운 자식 같은 바로 그 앱이,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나를 천하의 몹쓸 <버스 민폐녀>로 낙인찍으며 전 세계로 실시간 생중계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잔뜩 일그러진 내 얼굴 위로 ‘실시간 스트리밍 중’이라는 붉은 표시가 선명하게 깜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