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룡은 우리처럼 두 발로 걷고 뇌의 용적도 우리와 비슷하여 아주 영리했다.
수천만 년 전부터 죽지 않고 지금까지 진화했다면, 적어도 그들은 태양계의 모든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할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가여운 우리 영장류들은 동물원과 실험실 혹은 가축으로 그들의 식탁에 올랐을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중>
키에르 일행이 대륙간 반중력 초고속 열차, JAn(얀)에 탑승한 것은 다음날 오후였다.
이미 수 많은 환영 인파가 플랫폼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아틀란타의 지도자 키에르가 아버지를 30년 만에 만났다는 소식은 SNS를 통하여 이미 전세계에 파다하게 퍼졌다.
마치 쌍둥이 형제처럼, 비슷한 외모와 젊음을 간직한 포프 부자의 모습에 사람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며, 그들을 담은 짧은 영상을 네트워크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어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한거였습니다. 아버지.”
키에르는 열차 좌석에 앉자 말자 맞은편에 앉은 아케론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케론
의 옆에는 라후라가 앉았다.
“어머니의 이름이 안나라고 하였나?” 라후라가 물었다.
“네. 안나 포프. 여기서는 아틀란타 재건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아들은 흐뭇한 미소를 띄며 창밖의 수 많은 인파에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누군가가 구호를 연호하였다. 그리고 곧 모든 이들이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마더 포프, 마더 포프, 마더 포프,...”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외침은 점점 더 커져갔다.
마침내 모든 인파의 모습이 사라지자 정적이 찾아 왔다.
창밖은 암흑이었다.
사실, 열차가 가고 있는지 조차 느낄 수 없었다.
동굴의 외벽에 설치된 파란 등이 규칙적으로 지나가는 것 외에는 움직임이나 소음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때, 라후라는 아케론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그는 라후라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늘 아내 생각뿐입니다. 지금도, 어제도 그리고 내일도···”
“얀이 지하도시를 잇기 시작한 것은 20년전입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이곳 지하 도시들은 그들 각자의 영역속에 폐쇄된 채로 발전해 왔습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있었죠.”
키에르는 숙연한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듯, 쾌활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므로 이 고속열차가 사람으로 치면 동맥인 셈이죠...그리고 10년동안의 대 공사 끝에 9개의 지하도시가 모두 연결되었습니다.
마침내 아틀란타 민주 공화국이 완성된 거죠.
좀 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자면, 아틀란타 공산 민주국이라고 칭하는게 타당할 것입니다.”
“그럼, 칼 맑스의 공산주의 개념을 도입한 건가?” 라후라가 물었다.
“네, 위대한 역사학자 릴리안 나리의 표현을 빌자면, 최초의 공산 민주국입니다.
그리고 맑스의 이론에 가장 근접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사실, 아포칼립스 이전에 공산주의를 표명한 국가들 대부분이 전제군주제에 다름 아니었으니까요.
어찌보면, 어머니 릴리안이 피난민들 속에 섞여 이곳으로 내려온 자체가 저희에게는 축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럼 릴리안 나리가 이곳에서?” 아케론이 물었다.
“네, 재건의 어머니들이라고 부릅니다.
저희 어머니 안나 포프, 역사학자 릴리안 나리,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의 씨앗을 제공한 제냐.
이렇게 세분이 이곳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만드신 분입니다.”
키에르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금방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세 분 모두 일만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피난 오실 때 이미, 방사능에 많이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키에르, 아케론 그리고 라후라 모두 회한에 젖은 듯한 표정으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 때, 다과가 마련되었다.
연분홍 빛의 맑은 색의 차와 화려한 케익 조각이 놓여졌다.
아마겟돈 이전의 음식과 흡사하였다.
“저는 대멸종 이후의 세대인지라, 사실 그 때의 음식을 비교하기가 힘듭니다만...품질면에서 무척 근접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사실...사리님께 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리님이라면, 사피엔티아의 1의 형제님?” 아케론이 물었다.
“네 그분께서 국제 핵융합 연구소의 사르트르 박사 팀을 이곳 지하세계로 인도하셨습니다.
덕택에 우리는 인공 태양을 갖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게 지상과 동일한 환경이 된 것입니다.
즉, 예전처럼 작물을 키울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인공 태양을 이용한 청정 에너지를 이용하다 보니 지하의 가장 골치거리인 공해 및 환기 문제도 해결하였습니다.
이 고속열차 또한 태양 에너지를 이용합니다.”
“사리님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라후라님.” 아케론이 라후라를 따스한 눈길로 쳐다보며 물었다.
“네, 딱 한 번 봤습니다.
저에게도 생명의 은인이시죠.
게다가 저를 형제단에 추천해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의 모든 메시지는 사리님에게서 옵니다.
저는 사피엔티아의 처음과 끝 형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1의 형제 사리님과 13의 형제 아난다님입니다.”
“두 분은 모두 깨어 나셨나요?”
“아직 동면중입니다.
하지만 곧 깨어나실 겁니다.
어제 말씀드린대로, <종말의 일주일>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세력들이 태양계의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다시 지구를 바라볼 것입니다.
더 강력한 군사력으로 말입니다.
우리에겐 그들에 관한 정보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보 해킹에 관한한 아마 사리님과 아난다님을 능가하는 이는 없을겁니다.”
“그럼?”
“네, 앞으로 저희들이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지상의 모든 고귀한 생명체를 보존해야 하니까요.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너무 많은 종이 사라졌습니다.
그 대부분이 인간으로 말미암아···” 라후라는 마치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양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무거워진 분위기를 반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오늘은 부자 재회의 기쁨과 새로운 인간 세상에 대한 여행의 설레임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라후라는 환한 미소를 띄우며 차 안의 승객들을 돌아가며 쳐다봤다.
“한가지, 아이러니컬 한 이야기를 하자면···.도시는 강을 끼고 발달하기 마련이죠.
당연하게도 물이 생명의 기원이니까요.
이곳 지하 세계에도 5개의 큰 물줄기가 있습니다.
9개의 도시도 역시 이 물줄기를 따라 발전했죠.
우리는 이 5개의 물줄기를 각각, 아케론, 코퀴토스, 플레게톤, 레테, 스틱스라고 부릅니다.” 키에르가 미소로 화답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저승에 흐르는 다섯 개의 강 이름이군요.” 라후라가 지적했다.
“네, 맞습니다. 이곳 지하는 이미 천년전에 형성된 세계입니다.
초기 개척자들은 대부분 박해받는 이들이었죠.
종교, 전쟁, 민족, 관습, 법률 등등...그들은 삶을 찾아 지옥으로 내려온 셈이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제 지상은 지옥이 되었고 지하는 삶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저는 비통의 강, 아케론의 아들로 태어났죠.
그리고 지금 아케론 강의 최대 도시 아케로니아의 최고위원이 되었습니다. 하하하.”
키에르는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 때, 열차의 조명이 서서히 줄어 들기 시작했다.
탑승객들의 웅성거림이 잠시 멈춘 듯 하더니 다시 이어졌다.
“아, 이제 쇼타임이 시작되겠군요.” 키에르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쇼타임?” 아케론이 물었다.
“네, 이 초고속열차는 최고 시속 800km에 달하는 최첨단 과학의 결정체입니다.
땅속을 그야말로 비행기에 맞먹는 속도로 달리죠.
게다가 무소음에 무진동, 무사고를 자랑합니다.
엄청난 작품이죠.
하지만 단점이 없을 수는 없죠.
뭐, 이것도 단점이라면 단점 이겠지만 말입니다.”
“단점?” 아케론과 라후라의 입에서 동시에 그 말이 터져나왔다.
“네, 지루함입니다. 너무 심심하죠.
게다가 땅 속이라 바깥 풍경은 모두 암흑이죠.” 키에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두운 창들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열차가 지나가는 동굴 벽을 따라 비슷한 형태의 멋진 그림을 표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차가 일정한 속도가 되면 그 그림들은 서로를 연결합니다.
마치 우리의 운명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듯이...”
이윽고 창을 비추는 그림들이 서서히 움직이며 애니메이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지금까지 800개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기장님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초기 작품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아마겟돈 이후, 지하 세계를 맨몸으로 건설한 피난민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가 가장 궁금해하는 제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열차의 창에 수 많은 피난민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 지상에서 처럼 서로가 죽고 죽이는 악행의 순환을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모든 살아 숨쉬는 것은 지옥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불안속에 숨어 있는 안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피난길에 알게 된 제냐와 릴리안이 있었다.
제냐는 인도 여인 특유의 검고 깊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릴리안은 작고 깡마른 아시아 여인이었다.
그들은 피난민들의 행렬과는 동떨어진 길로 가고 있었는데 이건 어느모로 보나 무척 위험한 행동이었다.
굶주림은 인간을 좀비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은 모든 움직이는 것을 잡아 죽였다.
안나와 키에르, 릴리안은 제냐의 도움으로 아사(餓死)를 피할 수 있었다.
제냐는 콩알 만한 알약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건 고칼로리의 영양제였다.
그녀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대멸종 이전에 이 약들을 사모았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끝끝내 그 누군가의 신원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냥 내 가슴속의 사람이라고만 하였다.
이 부분에서 문득 아케론은 라후라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감지했다.
하지만 감히 그에게 물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세 여인은 마침내 동굴 끝, 막다른 지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곳에 새겨진 문양을 릴리안이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대언어인 산스크리트어, 이집트어, 아카드어, 수메르어에 능통하였다.
마침내 암호가 풀리고 오랫동안 닫혀있던 동굴 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지하 세계에서 필요한, 각종 씨앗, 수경 재배법, 그리고 공기를 정화하는 방법등이 기록된 다양한 책과 미디어가 있었다.
그리고 수십만의 사람이 몇년동안 살 수 있는 기초 식량이 보관되어 있었다.
세 여인은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안나는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깊은 한 숨을 쉬고는 또록또록 말했다.
“이 곳을 지키기 위한 힘이 필요합니다.
모든 이들이 골고루 평등하게 혜택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선량한 이들을 한데 모아야 합니다.”
그러자 릴리안이 동조하였다. “네, 맞습니다.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역사에 남기지 말기를...”
제냐는 조용히 두 여인의 거친 손을 굳게 잡았다.
아케론은 이 순간 라후라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줄곧 품어왔던 의문을 그에게 속삭였다.
“당신이 이 곳에 온 또 다른 이유가 있었군요?”
라후라는 살포시 잡은 손을 포개어 얹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