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퍼 아이 (Helper Eye)

by 남킹
우연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필연성이 감추어져 있는 형식이다. -엥겔스-


2014년 4월 16일. 박인숙 여사는 실명했다.

그녀의 나이 63세였다.

40대 때 발병한 다발성 경화증이 발전하여, 시신경에 염증이 생기는 시신경염으로, 두 눈을 모두 잃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 소식은 그녀의 유일한 자식인, 김관홍에게 7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알려졌다.

그녀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아들은 삶의 전부다.

그녀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자 목적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의 장녀인 그녀는, 18살 때 서울로 상경하여 청계천에 있는 한 의류공장에서 미싱 보조를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그녀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였다.

남자는 공장장이었다.

말이 공장장이지 직원 스무 명도 안 되는 가내 수공업이었다.

거기서 그는 신처럼 군림했고, 여직원은 모두 성희롱 대상자였다.

그는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말은 곧 법이었고, 그의 손은 강제 집행이었다.

그녀는 무서웠다.

그리고 숨겼다.


결국, 임신 6개월이 되어서야 남자에게 발각이 됐다.

남자는 낙태를 강요했고 병원은 낙태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녀는 죽음을 결심했다.

그녀는 재봉틀에 사용하는 피마자기름이 아주까리 열매를 짜서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열매는 독성이 매우 강해, 몇 알만 먹어도 죽는다는 사실을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그래서 그녀는 피마자기름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1970년 11월 13일.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녀가 깬 곳은 병원이었다.

남자가 옆에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절망했다.

좁고 썰렁하고 더러운 병원 침실에서 그녀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삶의 참담한 무게를 감당하기엔 그녀는 너무 어리고 여렸다.

남자가 다가와 같이 살기를 강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죽기를 결심했다.


그렇게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한 남자가 실려 왔다.

그는 온몸이 검게 탔다.

그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측은한 마음에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그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그녀는 검게 그은 그의 손을 잡았다. 마치 돌처럼 차갑고 딱딱했다.

이윽고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무심한 의사를 붙잡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어린 여자는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내 어머니도 저렇게 고통스러워하겠지? 내 죽은 몸뚱어리를 보면 말이야···.’

그녀는 자신의 결심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 남자가 다가와 그녀를 강하게 끌었다.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맑고 초롱초롱한 아들의 눈빛에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남편의 폭력은 나날이 늘었다.

아들이 다섯 살이 되자, 남편의 주먹은 자식에게도 향했다.

그녀는 아들만은 살려야겠다고 작심했다.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1975년 4월 30일.

그녀는 아들과 함께 탈출했다.

자유를 찾아 끝없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집요하고 포악한 남편이 절대 알아챌 수 없는 곳으로, 버스와 기차, 배를 번갈아 타며 남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이윽고 도착한 곳은 제주도의 한적한 어촌이었다.

그녀는 이름도 바꿨다.

아들 이름도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웠다.

언젠가 불쑥 그가 나타나,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아들을 데려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주위에 칼을 두었다.

잘 때도 머리맡에 숨겨 두었다.

하지만 결국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다.


2014년 12월 5일.

김관홍은 급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뉴욕에서 개최한 의학 심포지엄에 참석한 그는, 심포지엄 마지막 날, 어머니의 실명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우연히, 어머니 담당 의사를 그곳에서 만난 것이다.

아들은 너무도 창피하였다.

이 사실을 7개월이 넘도록 까마득히 몰랐다는 게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다.

그는 볼티모어에 사는 아내 서지현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하게 상황을 전달하고 곧바로 케네디 공항으로 향했다.


당시 김관홍은 미국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원 수석 연구원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30년 가까이 줄곧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 연구원으로 보냈다.

그는 인간의 신경계, 특히 두뇌 신경세포에 관한 세계적인 학자였다.

특히, 그가 2010년에 발표한 <인위적 전기 신호 패턴에 따른 대뇌 수용체의 반응에 관한 연구 고찰> 논문은 의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학자들 사이에 찬반논란이 격하게 일었다.


마치 복제 양 <둘리>의 출현과 흡사한 논리였다.

바야흐로 인위적 유전자조작 시대가 도래하였다.

신을 믿는 이들에게는, 신의 영역을 감히 침범한 인간의 도전에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그동안 난치병으로 취급되었던 각종 유전병, 난제로 여겨졌던 여러 불치병 극복의 길을 제시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일부 비윤리적인 학자들에 의하여, 유전자 괴물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인간은 뇌의 지배를 받는다.

뇌는 약 100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신경세포는 다른 세포와 달리 전기적인 방법으로 신호를 전달한다.

김관홍 연구팀은, 이 전기 신호를 캡쳐하여, 분석을 통하여 패턴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다른 전기 신호를 주어 뇌가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면, 사과를 보고 있는 사람이 포도를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가상 세계가 아니라, 조작된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또 다른 신의 영역을 건드린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언론과 결탁하여 격하게 김관홍을 비난하였다.

머잖아 <인간 지배 머쉰>이 개발되어, 전쟁터에서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될 것이라는, 다소 황당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닌 주장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지지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오감,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상실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획기적인 치료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감 중 가장 중요한 시각을 예로 들어보자.

렌즈를 통하여 받아들인 피사체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시력 상실자들의 뇌에 전달하게 되면 그들은 물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헬프아이(Helper Eye)>가 된다.

또한, 환청, 환각 증세로 시달리는 정신병자의 전기 신호를 정상 상태로 바꾸어주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공항에 도착한 김관홍은 서둘러 매표창구로 뛰어가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 자 한국행 비행기는 매진이었다.

당황한 그는 어쩔 수 없이 약간의 거짓말을 지어냈다.

자신은 존스 홉킨스 의대 연구원이며 한국에 생명을 다투는 시급한 환자가 있어서 오늘 중으로 꼭 가야 한다고 하면서 의사 면허증을 내보였다.

면허증을 받아 본 창구 직원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는 이코노미석을 찾고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일등석은 여유가 있습니다. 그걸로 하시겠습니까?“

”아 네 물론이죠. 오늘 중으로 갈 수만 있다면···.“

”네 그럼 고객님, 대한항공 086편 일등석으로 발권해드리겠습니다.

출발 시각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날 무슨 이유에선지, 일등석은 소란하기 짝이 없었다.

덕분에 46분이나 늦게 출발하였다.


꼭 10년 만이다.

한국으로 가는 내내 그는 어머니만 생각했다.

그동안 그는,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시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딱 2주일, 아들 집에 머물고는 고국으로 돌아갔다.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그녀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가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떠난 이듬해부터, 어머니는 산부인과나 여성 쉼터를 돌며, 오갈 데 없는 미혼모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처럼 학대받는 여성을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지리 않고 도움을 주었다.

피신처 제공이나 경제적 도움뿐만 아니라, 경찰이나 변호사, 언론인, 고위 공무원을 찾아가기도 하고, 항의 집회를 여는가 하면, 심지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게 편지도 보냈다.

어머니는 더는 여린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가슴에 칼을 품고 다녔다.


2016년 12월 9일. 주식회사 <아이테크(Eye Tech, Inc.)>는 국내외 의학 전문 기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시제품 발표회를 했다.

아이테크는 가우타와 김관홍 박사의 첫 합작 회사였다.

대표이사인 김관홍 박사는, 발표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자신이 찍은 동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박사의 어머니가 등장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2014년 4월 16일부터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줄곧 어둠 속에서 고통받아 왔다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렌즈가 전면에 달린 동그란 모자를 쓰고 있다.

박사가 그녀에게 다가가, 가볍게 어깨를 감싸 안은 뒤, 모자 옆면에 달린 녹색 스위치를 손으로 눌렀다.

그러자 렌즈 옆 붉은 램프가 깜빡깜빡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침묵이 흐른 뒤, 카메라는 어머니의 얼굴을 천천히 클로즈업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들이 천천히 어머니 앞에 선다.

그리고 묻는다.

“어머니 제가 보이시나요?”

그러자 노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들 사이에 탄성이 쏟아졌다.

모자는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이제 카메라는 옆에 배치된 스크린 화면을 비췄다.

그 속에 흐릿하지만 분명한 영상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 화면이 어머니가 저를 인식하는 모습입니다.” 좌중에서 박수가 다시 터져 나왔다.


박사는 좁쌀만 한 금속 물체를 핀셋으로 찍어 기자들에게 보이며 말을 했다.

“어머니의 뇌에 이 수용체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아주 작아서 삽입하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더구나 매우 가벼워서 뇌 속에서 이동하지도 않습니다.

렌즈가 받은 영상은, 뇌가 인식할 수 있는 전기 신호로 바뀌어 암호화된 무선으로 수용체에 전달됩니다.

그러면 수용체는 시신경에 자극을 전달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아직은 영상이 많이 흐립니다.

마치 초음파로 찍은 태아 사진 정도입니다.”


김 박사는 이제 봉투에서 서류 뭉치를 끄집어 기자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는 지난주에 세계 최고의 영상 전문업체인 <ESM 연구소>, 최고의 시각 효과 업체인 <루카스 필름> 그리고 최고의 광학렌즈 업체인 <JTB Vision>과 공동 개발 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놀라운 기술력을 접목하여 인간의 눈과 흡사한 영상을 조만간 만들 것입니다.” 군중 속에서 또 한 번 탄성이 터졌다.


“하지만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서류입니다.” 그는 또 다른 서류 뭉치를 들어 내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과 맺은 계약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재단은, 썩은 재벌과 공모하여 사익추구나 조세 회피 수단으로 만든 재단이 결코 아닙니다.

바로 국제적 보건 의료 확대와 빈곤 퇴치를 목적으로 한 그야말로 순수한 재단입니다.

우리는 이 재단으로부터, 우리의 완제품이 전 세계의 모든 시각 장애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받기로 합의를 하였습니다.”


뜨거운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박사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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