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by 남킹

월요일 아침 지하철은 항상 어느 날보다 더 붐빈다. 시내 쪽으로 다가갈수록 수많은 사람이 내리고, 그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올라탄다. 사람들은 콩 시루 마냥 이미 빼곡히 찬 틈새를 용케 비집고 잘도 들어온다.


전철 문이 열다 닫기를 반복하다 불안하게 닫힌다. 지하철은 그의 육중한 몸이 힘겨운 듯 저음의 신음을 내뱉으며, 서서히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문가 쪽에 파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파들거리던 나는 어렵게 핸드백을 고쳐 들고, 버틸 수 있는 자세를 잡은 채,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무표정한 남자와 여자가 저마다의 생각 속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러다 그들은 전철이 요동칠 때마다, 쇳소리에 맞추어, 마치 한 몸처럼 순간적으로 흔들어 재낀다.


덩달아 그들의 얼굴은, 몽환의 저편에서 막 숨 가쁘게 달려온 듯, 씰룩거리거나 이죽거리며, 다양한 표정으로 일그러진다. 마치 고비사막의 짧은 우기에, 삽시간에 저마다의 모습으로 피어나는 수많은 야생화처럼.


인고의 세월을 땅속에서 숨죽여 지내다가, 살아가는 모든 생물의 유일한 목적인 자손 번창을 위하여, 재빨리 물을 빨아들이고 몸을 부풀려서 척박한 땅을 뚫고 햇빛을 향하여 이파리를 내고, 곤충을 유혹할 꽃을 조상이 물려준 각자의 표정으로 분출한 그들은, 씨앗을 흩날리기 무섭게, 이내 또 갈라진 흙 속에 파묻혀, 다음 우기를 기약하며 꿈속으로 사라진다.


현수에게서 야생화 향기를 맡을 때가 있다. 그는 일정하고 무표정하며 관습적이고 사교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그는 빈둥거리면서도 품의가 느껴지고, 태평하면서도 어느 순간 용의주도함을 풍겼다.


나는 그가 왜 좋은지를 모르겠고, 그도 나를 왜 좋아하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물론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니 좋아하는지 안 하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우리는 지겹도록 같은 요일에 같은 모텔의 같은 호실에서 같이 있다가 그냥 헤어지고, 다시 또 만나 같은 곳을 또 간다. 다음을 위한 약속은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토요일 오후에 퇴근하면 그는 항상 육교 건너편 길가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불안하다. 마치 사막의 죽은 씨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그에게서 나는 불길한 자태의 꽃내음을 순간순간 맡을 때가 있다. 그는 나와 같이 있지만 있지 않고, 나와 섹스하지만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는 학원 동료들과 당구장, 술집, 나이트클럽 등등을 빠짐없이 훑으며 쏘다니지만, 마치 딴 세상 사람처럼 이질적일 때가 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흘러가는 소문으로 주워듣고, 그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게 될 때 남자의 모습은,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도서관에서 영어 소설을 읽거나 혹은 시청각실에서 방송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모습은, 나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바뀐 게 거의 없다. 단지 누군가 그를 이끌면 그는 따라갈 뿐이다. 그곳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고.


그는 나를 정말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그냥 만나고 섹스하고 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그냥 뻐꾸기 둥지 위에 우연히 툭 떨어진 것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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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내리는 빗물 - 2023-12-21T163827.19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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