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by 남킹

늘 긴장과 설렘은 같이 한다. 푸른 하늘과 투명한 햇살. 멍멍하게 들려오는 쇳소리가 멈추고 사람들은 머리 위 선반에서 각자의 짐을 끄집어낸다. 약간의 웅성거림. 분주한 손놀림. 서로에게 마주치는 눈빛에는 안착의 편안함과 좁고 불편한 좌석에서 벗어난 해방감으로 들떠있다.


트랩을 내려오자 강한 햇볕이 달려든다. 찌푸린 눈살 속에 비교적 아담한 규모의 건물이 보였다. 파도 모양을 한 부드러운 곡선의 지붕. 브로츠와프 코페르니쿠스 공항. 지동설로 유명한 폴란드 과학자의 이름을 딴 곳. 나는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이곳으로 왔다. 하루를 꼬박 걸려 마침내 도착했다.


공항 출구를 벗어나자마자 나는 까까머리 청년의 어색한 미소를 마주하였다. 그는 A4 용지에 수기로 적은 내 이름을 들고 있었다.

“남?”

“예스.”

“팔로우 미.”


그는 나의 캐리어를 덥석 쥐고는 제법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간다. 나는 잰걸음으로 그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공항을 벗어나자 듬성듬성 차들의 무리가 보였다. 그는 도로를 가로질러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낯선 도로에 향긋한 바람이 속삭인다.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처음은 늘 그렇듯, 과도한 긴장이 나를 지배한다. 첫사랑, 첫 관계, 첫 직장, 첫 외국….


나는 50년 만에 외국으로 왔다. 그냥 죽기 전에 한번 보고 싶었다. 나와 다른 사람, 다른 도시, 다른 음식, 다른 문화….


일 년 전에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언제부터인가 현실적인 활동에는 적합하지 않은 자신을 느꼈다. 실생활이 서투르고 남들처럼 기민하지도 못하였다. 그리고 지루했다. 아내와도 헤어졌다. 권태로웠다. 배부르고 언제든지 섹스를 할 수 있는 나는 권태를 벗어나기 위한 욕망에 집착했다. 축구에 빠지거나 낚시에 빠지거나 춤에 빠지기도 했다. 독서에 몰입하거나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술에 빠지거나 매춘에 사로잡힌 적도 있다. 하지만 쾌락이 끝나면 늘 숨었다. 고독은 내게 숙명 같은 형벌이었다. 내가 누리는 심미적 기쁨은 외로움으로 상쇄한다.


나는 늘 혼자였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그때, 정의했다.


나는 전혀 관심도 없는 요리학원에 다녔다. 6개월 뒤, 나는 한식, 일식, 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차례로 취득하였다. 그리고 외국에 있는 모든 한인 식당에 이력서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폴란드에서 연락이 왔다. 전화상으로 간단한 인터뷰를 하였다. 나는 끝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스네이크 아일랜드 (7).jpg
천일의 여황제 (7).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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