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수

by 남킹

방안의 푸른 기운이 사라지면서 사물들의 윤곽이 뚜렷하게 다가온다. 해가 변함없이 떠올랐다. 나는 눈을 뜬 채 누워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얄팍한 꿈결 속을 채우던 것들이 두서없이 생각이 난다. 편집증적으로 온 정신을 쏟아 내던 어느 날 아침. 바닥의 널판들이 시리도록 차가웠던, 골방에서 뿜어져 나오던 하얀 연기. 마루를 채우던 구시렁거리는 소리. 속으로 뇌까리던 절망스러운 그리움. 뾰족한 침엽수림 속의 환희.


그녀는 코듀로이 남방에 짙은 머릿결을 흩날리며 돌아선다. 창백한 살결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눈동자. 가는 다툼으로 이어진 긴 노정은 끊어진다. 부재가 만들어 낸 강한 끌림.


낡은 천장은 군데군데 얼룩이 지고 네 모서리 모두 곰팡이가 허옇게 피어, 천장만 바라본다면 폐허로 착각하기 딱 알맞다. 이 방은, 나의 청소년기 대부분을 보낸 곳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면서 그동안 줄곧 비어있었다. 사실 막냇동생 정수가 있긴 한데, 그는 근처에 사는 이모와 함께 살았다. 이모는 부유하지만, 자식이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되자, 바퀴벌레들의 천국이 재건되었다.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밤에 소등만 되면, 그들은 소리소문없이 나타나, 푸덕거리며 날갯짓을 하며, 온 방을 밤새도록 돌아다닌다.


낡고 오래된 3층 아파트의 2층 끝 집에 있는 우리 집은 시장통 한가운데 세워져, 유난히 바퀴벌레, 쥐, 집 나간 고양이들이 많기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상가 번영 위원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일 년에 몇 번씩 살충제와 쥐약을 집 안팎에 살포하곤 한다.


살충제를 집에 뿌린 다음 날은, 거실, 부엌, 큰방, 작은 방 가릴 것 없이 곳곳에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바퀴벌레들이 죽거나 죽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나 뒹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형제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비질로 쓱쓱 쓸어 담아 휴지통에 버리곤 했다.


어릴 적부터 워낙 많이 봐 온 터라, 화들짝 놀라며 끝까지 추격하여 죽일 만큼 혐오스럽지도 않고,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비위가 뒤틀리지도 않았다. 다만 밥이나 국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대학 때, 가까이 지내던 동기와 후배들이 한때, 여름 휴가로 우리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가난한 대학생들인지라 경비 절감 차원에서 우리 집에 며칠 머물면서 가까이에 있는 몇몇 유명한 해수욕장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그들 모두 하루 뒤에 허둥지둥 떠나 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밤새도록 잠 한숨 자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큰 바퀴벌레를, 심지어 날아다니기까지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쥐약은 우리 집 층 계단, 복도뿐만 아니라, 시장 입구에서 끝나는 곳, 골목이나 하수구 구석구석까지, 쥐가 다닐 만한 곳에 골고루, 맛있는 음식과 함께 뿌려졌다. 쥐약을 뿌린 다음 날은, 마치 개와 고양이가 2차 세계대전이라도 치른 듯이, 시장 골목 곳곳에 혀를 내밀고 죽어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정작 주인공인 쥐들의 사체는 거의 보이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러면 시장 끝에 임시 건물로 세운 상가 번영회 사무실이 왁자지껄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하는데, 바로 죽은 동물들의 주인이 변상을 요구하며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손해배상이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동물 주인들도 대부분 이곳 시장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애완동물을 돈을 주고 사서 키운 게 아니라, 알음알음으로 한 두 마리 얻어다가 가게 마루 밑에 낡은 담요 하나 깔아 주고는, 먹다 남은 음식이나 팔다 남은 생선 대가리로 키운 정성이다 보니, 매일 내 눈앞에 알짱거리다가 사라지니 순간 허전한 감정이 앞서 그런 것일 뿐,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채소 가게를 하던 우리 집 개들도 3마리나 요절을 하고 말았다. 물론 변상은 당연히 없었다. 특히, 마지막으로 죽은 개는 정수가 열 살에 친엄마 품을 떠나, 낯설기만 한 우리 곁에서, 처음 사랑을 쏟았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의 개가 죽은 날은 찌는 듯이 더운 한여름 증조부 제사가 있던 날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전국 팔도 공사판을 한량처럼 떠돌았다. 인물 좋고 허우대 멀쩡하지, 고향에서 유일무이하게 대학원까지 나온 식견 있는 그는, 타고난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는 곳마다 그 동네 과부와 숱한 염문을 뿌리며, 결국 동생까지 뜻하지 않게 낳게 되었지만, 위치가 집안의 종손인지라, 제사 때만은 잊지 않고 꼬박꼬박 집으로 오시곤 하였다.


즉, 어머니와 우리 형제가 아버지를 보는 날은 추석과 설날, 할아버지, 증조부모, 고조부모 제사 때와 공사판이 이 도시 근처에서 이루어질 때뿐이었다. 아버지가 오면 우리 형제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그는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자식들을 불러 모아 가져온 커다란 동전 주머니를 펼쳐 놓고 한 움큼씩 퍼서 우리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


아버지는 특이하게도 잔돈으로 물건을 절대 사지 않았다. 심지어 껌 하나를 살 때도 항상 지폐를 냈다. 그래서 항상 그의 여행용 가방에는 잔돈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돈들은 바로 우리 차지가 되는 것이다.


그뿐 만이 아니다. 서울 및 경기 지역에 흩어져 사는 네 명의 삼촌들과 세 명의 고모들이 오실 때마다, 우리들의 주머니는 점점 더 두둑해졌다. 사촌들까지 같이 오는 날에는, 우리는 볼록한 주머니를 밑천 삼아 구멍가게에서 산 얼음과자를 하나씩 입에 물고 만화방에서 죽치거나, 플라스틱 조립완구를 사서 방구석에서 접착제 향기 맡으며 조립에 열중하기도 했다.


제사의 서막을 알리는 것은 어머니가 가게 귀퉁이 창고에서 자동차 타이어 만한 프라이팬과 접시, 제기 용품들을 꺼내면서부터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삼촌들이 미리 부쳐준 돈을 우체국에서 찾아, 우리 형제들을 앞세우고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수산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면서.


어머니는 그날 올라온 제수용 생선 중 가장 큰 놈들만 사는데, 이건 순전히 아버지 뜻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특이한 또 한가지 버릇이라면, 바로 제사상에 올라오는 생선의 크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마치 작은 생선이면 조상님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듯이, 아버지는 수박만 한 대가리의 문어와 족히 1미터쯤 되어 보이는 민어에, 큰 접시에 꽉 찰 정도로 넓은 도미를 고집하시는 거였다.


우리는 버스를 온통 비린내로 채우다시피 하면서, 낑낑거리며 겨우 생선들을 가져오지만, 부푼 기대와 설렘으로 나의 마음만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두둑한 용돈으로 평소에 사고 싶었던 조립품을 머릿속에 그려 보느라 사실 정신이 없었다.


아무튼, 제삿날은 나에게 축제 기간과 마찬가지였다. 생선 외의 것은 모두 우리 시장에서 해결했다. 채소야 당연히 우리 집 것 그냥 가져오면 되고, 과일은 바로 옆 청과물 가게에서 사 오는데, 그 집 주인은 우리 이모다. 이모는 제사 며칠 전부터 크고 싱싱한 과일들을 따로 빼놓았다가, 거의 염가로 어머니에게 넘겨주곤 했다.


사실 우리 가게도 예전에는 이모 가게였다. 이모는 처녀 시절부터 독립하여 이곳에서 과일가게만 쭉 해온 이곳의 터줏대감과 같은 존재였다. 장사 수완도 남다르고 어머니와 달리 붙임성도 좋아 처음 2평 남짓으로 시작한 가게는 이제 스무 배도 넘게 커졌고, 콩나물 공장과 어묵 공장을 겸하여 운영하는 지금의 이모부를 만나 사실상 우리 시장의 최고 갑부 반열에 올랐다.


반면, 재물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고 놀이 문화에만 집착하던 아버지는 팔도를 떠돌며, 두 집 살림 혹은 세 집 살림을 살다 보니, 물려받은 토지며 집이며 심지어 선산까지, 결국 곶감 빼 먹듯 다 날려 버렸다. 그러자 무뚝뚝하고 자존심 강한 어머니지만, 당장 끼니 걱정에, 별수 없이 동생 가게 귀퉁이를 빌려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착한 이모는 임대료 한 푼 받지 않고 가게 귀퉁이를 선뜻 잘라서 내주고는 필요한 선반이나 각종 물품을 제공하였다. 더욱이 장사에는 젬병에 지나지 않는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 노하우도 제공해 준 덕분에, 어머니는 비교적 수월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간판도 하나 내 걸었는데, 형 이름을 따 <인수네 야채 상회>라고 지었다.


아무튼, 그 날. 더운 여름날. 제사가 있던 날. 어머니는 정수에게 가게를 일찌감치 맡기고 오랜만에 내려온 막내 고모와 제사상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사전에 쥐약 놓는 날이란 걸 알고 있던 정수는 온종일 그의 개를 예의 주시하며 가게를 지키던 중 잠시 한눈판 사이에 개가 사라졌다. 정수는 급하게 뛰쳐나가 개를 찾았고 이내 정말로 10분도 안 되어 그의 개를 찾았다고 했다.


온통 짧고 하얀 털로 덮인 그 개는 정수를 향해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주인을 맞이하고, 이내 가게 평상 밑에 마련된 그의 보금자리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1분쯤 흘렀을까? 기묘하고 섬뜩한 신음이 점점 강도를 더하더니 낮은 평상의 천장을 쿵쾅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격렬하게 이어지는 거였다.


이 소리를 듣고 이모가 달려와, 그 광경을 보지 못하게, 정수의 손을 잡고 어머니에게 끌고 가고, 그사이에 이모부가 죽은 개를 양지바른 곳에 잘 묻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어디인지는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다. 정수가 그렇게 사정사정했는데도 그저 먼 공동묘지라고만 하였다.


그리고 먼 훗날, 어머니와 이모가 대화하는 중에 나는 얼핏 알게 되었다. 이모부가 손수레에 죽은 개를 싣고 가던 중 마침 개장수를 만났다고 했다. 버릴 거면 달라고 해서 줬다고 한다. 그의 포대기에는 이미 죽은 개와 고양이 몇 마리가 담겨 있었고, 그의 아들로 보이는 녀석도 한 포대기 짊어지고 있었다는 거였다. 언제부터인가 쥐약 살포하는 날을 용케 알고 나타난다고 했다.


스네이크 아일랜드 (8).jpg
천일의 여황제 (8).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떠도는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