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뜻대로 3

by 남킹

6.




“여보 합격이래…!”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전달되었다. 나는 휴대폰을 든 채, 원탁에 앉아 있는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와 계단을 통하여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우리 아이가 10 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는 것, 최상급의 점수를 받았다는 것, 자세와 힘이 아주 좋다는 것 그리고 특히 또래의 아이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표정 연기가 탁월했다는 것 등등을 두서없이 흥분된 톤으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뒤이어 발레 선생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차갑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상당히 다정다감했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수수하고 단아한 복장과 표정에서 겸손함이 묻어났고, 아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엿볼 수 있어서 크게 감동하였다는 등등의 말을 두서없이 이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수화기 너머에서 복받쳐 흐르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좋아서 터져 나온 감격의 눈물로 생각하고 잠시 핸드폰을 든 채 기다렸다. 그런데 그 흐느낌에서 까닭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 미안해 여보……. 그냥……. 갑자기……. 친정아버지가 너무 미워져서…….” 나는 그제야 내 여자가 겪고 있을 작금의 혼란한 심리상태가 살짝 이해되기 시작했다. 발레 선생과의 면담 자리에서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꿈꿔왔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미래를 얘기하면서,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꿈과 희망에 굴곡을 준 아픈 과거를, 자기도 모르게 되새김질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지만, 가족의 관심과 지원은 남동생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무용을 천박한 짓거리로 치부하는, 집안 어른들의 몰이해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서러움의 싹이, 마치 가뭄 끝의 단비 속에, 쑥쑥 올라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휴대폰을 가까이 대고 천천히 속삭였다.

“덕분에 나처럼 머어어었찐 신랑 만났잖아……. 금쪽같은 우리 딸도 생겼고 말이야…….”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코 푸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7.




안나가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칠 때쯤, 우리 집 거실에 있는 나무 선반에는, 반짝이는 입상 트로피와 메달들이 적지 않게 장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방 벽면에는, 많은 상장이 사각 액자 속에 담겨, 달려 있었다. 그녀의 옷장 속에는, 화려한 망사 스커트가 부착된 아름다운 색상의 발레복 - 옅은 하늘색과 감색의 클래식 튀튀 그리고 백색의 로맨틱 튀튀 - 들이 곱게 개어져 있었으며, 분홍빛 천으로 장식된 상자에는 발레 슈즈와 타이츠가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또한, 그녀의 책상에는, 짙은 화장을 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는 그녀의 사진과 무대의 화려한 조명 아래, 날아가는 백조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장면의 스틸 사진도 액자에 담아 놓여 있었다.


그녀는 청소년 발레 단원이 된 이후, 거의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콩쿠르에 참가하였으며, 연말에는 발표회도 했다. 저학년일 때는 주로 단체 위주로 경연하였으나, 5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안나는 본격적으로 솔로 대회도 병행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참가하는 대회마다, 비록 순위는 달랐지만, 빠지지 않고 입상을 하는 빼어난 실력을 선보였으며, 어느새 발레단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회자하기에 이르렀다. 그즈음 청소년 회관 복도에 안나가 포함된 사진들도 덩달아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그만큼의 시기와 질투, 경쟁은 심화하고 있었다.


대회나 공연 일정이 잡히면, 또래의 아이들은 더 좋고 중요한 배역을 따내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알게 모르게 서로 간에 펼치곤 하였다. 하지만 안나는 다소 무덤덤한 편이었다. 주변의 따가운 질투는 느꼈지만 애써 담아 두려고 하지 않았고, 나날이 치열해지는 경쟁자들을 의식은 하였지만 아등바등하며 이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좋은 배역을 받았고 또한, 좋은 결과로 답례를 하곤 하였다. 어쩌면 그녀는 너무도 쉽게 세상의 중심이 자신에게 쏠려 있고, 너무도 편안하게 세상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그것에 대해 두려움을 본능적으로 자각은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가끔은 이 모든 게 바람처럼 휙 하고 사라질까 봐 걱정되기도 해…….” 그리고 나는, 점점 내 아버지를 닮아가는 딸의 모습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8.




안나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마주한 아내와 딸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번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꽤 비중 있는 전국 대회였고, 준비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나는, 사람이 가끔은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도 있는 거고 또, 실수도 할 수 있는 거라며, 애써 모녀에게 위안을 주었지만, 분위기는 더 무거워져만 갔다.


아내는 우선, 그다지 전문적이지 못한 심사위원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알고 봤더니 세 명의 심사위원 중, 두 명이 국내파 대학원생이었다는 것이며, 자기네 지역 출신 참가자들에게 편파적으로 후한 점수를 줬다는 것이었다. 특히, 솔로에서 대상을 받은 학생은, 작년에는 순위에 한 번도 이름을 올린 적이 없는 아이로, 말라깽이 몸매에 다리만 비정상적으로 길었지, 기술이나 표현력에서는, 우리 안나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면서, 마른 오징어무침을 질겅질겅 씹어댔다. 그러면서 아내는, 틀림없이 그 학생과 심사위원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딱히 근거 없는, 그러나 다분히 감정 섞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발레 선생도 결과 발표 후, 아내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조만간에 대회 책임자를 만나보겠다고 했다면서, 아내는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한 비장함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며칠 후, 아내가 발레 선생을 면담하고 온 그날 밤, 아내는 김빠진 맥주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내게 하였다.

“당신 집안에서 왜 당신만 돌연변이야?”

“그게 뭔 소리지?”

“당신만 키가 작고 말랐잖아. 봐봐…당신 아버지, 작은아버지, 삼촌들 다 키 크고 뚱뚱하시지, 당신 사촌들도 다 크고 펑퍼짐하잖아….”

“나야 외탁했으니까 그렇지 뭐…”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친지 모임에서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이 ‘외탁’ 이었다. 아마 우리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일 것이다.


사실 나의 체구가 그다지 작지는 않다. 오히려 평균에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 집안사람들 대부분이 워낙 컸다. 대부분 100kg에 육박했다. 그래서 제사 지낼 때마다, 거구의 사촌들 틈에 끼여, 마치 고목에 붙은 매미 같은 느낌으로 절을 하고는 했다.

“근데 왜 느닷없이 그 얘기가 나와?”

“안나 허벅지를 보면서 뭐 느끼는 게 없수? 당신…”

“우리 안나 허벅지가 왜? 통통하고 이쁘기만 한데….” 그러자 아내는 원망 섞인 한숨을 크게 쉬더니, 치마를 걷어 올리고선, 자신의 다리를 위로 한번 쭉 뻗으며 내게 말하였다.

“우리 안나가 나를 닮았으면 요런 다리가 나왔어야 한다는 거여…” 아내의 다리는 처녀 시절에서 달라진 게 거의 없이 미끈하였다. 즉, 아내가 말한 요지는, 안나가 외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전에 안나가 너 닮았다고 그러지 않았나?”

“나도 그땐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뭐 다리가 좀 통통하면 발레 못한데?”

“좀 통통한 게 아니니까 문제지…” 그러면서 아내는, 발레 선생에게 들은, 심사위원의 견해를 알려주었다.


5학년까지는 다분히 취미 활동에 가깝지만, 이제 6학년이 되면 현재의 실력만큼이나 미래 지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성인이 되어 전문 발레리나로서의 체형을 갖추었는지를, 이제는 평가항목에 포함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남자 파트너와의 호흡도 중요한데, 그러려면 작고 가벼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여기에 덧붙여, 안나가 요즘 들어 부쩍 식탐이 늘었다고 하였다. 문제는 살이 위로 가지 않고 옆으로만 간다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봐도 최근에 안나가 좀 통통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외탁이라서 고통받았고, 내 딸은 외탁이 아니라서 고통받는 묘한 현실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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