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3

by 남킹

영어학원. 모두 다 빠져나간 도서관은 적막하기가 그지없다. 사실 일요일에 학원을 개방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소위 터줏대감으로 일컫는 나를 포함한 몇몇 장기 학원생들이 관리부장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얻어낸 결과이다. 덕분에 나는, 여자와 보낼 때와 과외 학생을 가르치는 시간 외에는 항상 이곳에 있다.


통상적으로, 약속이 없는 날이면, 오전 8시에 이곳에 도착하여 오후 10시 문을 닫을 때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나는 도서관에서 원서를 보거나, 시청각실에서 영어방송을 보기도 하고 동료들과 자유토론을 하기도 한다.


과외가 있는 날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영어 참고서를 펼치고, 그날 가르칠 분량을 예습하고, 일주일에 두 번, 그녀가 수업하러 오는 날에는, 같이 저녁을 먹고 해가 진 철길을 몇 분간 걷다가 키스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철길은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도시 한복판에 아직도 방치되어있다. 나는 인적이 드물고 조명도 어두운 지역을 찾다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였는데, 역광장까지 몇백 미터 정도를 이런 상태로 이어져 있다.


나는 이곳에서 그녀와 첫 키스를 하였고 가슴도 처음 만졌다. 하지만 나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녀와의 첫 관계는 몇 주가 더 지나야만 가능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자는 어리석게도, 처녀가 아니라는 자책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


세상의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혐오스러운 이중잣대는 여전히 유효하고 성가신 존재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여자를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우연히 엎지른 만남이었다. 어쩌면 하얀 분말을 입힌 케이크 세 조각을 미화 아줌마에게서 받은 게, 첫 인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관리팀장의 조촐한 생일 행사 뒤에 얻은 케이크를, 그녀는 눈에 먼저 띈 내게 선심 쓰듯 안기고 가버렸다.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붙박여, 케이크가 담긴 종이 접시를 들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낯선 세 명의 아가씨가 들어 왔다. 나는 그들에게 접시를 내밀었다. “드드드세요.” 아마 그때가 이 학원에서 모르는 여인에게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건 경우였을 것이다.


이주쯤 지나 복도에서 어떤 여인이 내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나는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또 몇 주가 흐른 뒤, 우리는 분식집에서 같이 라면을 먹었다.


그녀는 마젠타 입술을 하였다. 짙은 눈 화장과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정확히 이마에서 절반으로 나뉘어 그녀의 머리를 감싸며 붙어 있었다. 생기 없는 표정. 그녀는 투명한 눈을 깜빡거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밀랍 인형처럼 착각이 들었다.


어떤 녀석들이 그녀를 주시했던 것 같았다. 줄무늬 셔츠를 한 녀석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데퉁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쭙잖은 자세의 녀석이 비실거리며 물러났다.


그녀는 영어에 관해 무척 많은 질문을 했다. 나는 좋은 교재나 학습 방법 등을 알려줬다. 그녀의 말투에서, 특별한 어조나 낯선 억양은 없었지만, 불안과 우수가 느껴졌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좋았다. 선한 마음이 깃든 부드러운 불안이었고, 다정함이 묻어나는 우수였다.


그녀가 돈을 냈다. 송미자라고 하였다.


나는 그녀와 같이 수업한 적도 없고, 같은 스터디 그룹도 아니었다. 우린 레벨이 달랐다. 그녀가 이곳에 초급반을 시작할 때, 이미 일 년 이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수강한 나는, 고급반 주변을 맴돌았다. 아마 그녀는 몇 주 지나지 않아, 나에 대해서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황당하게도 나에 대해 떠도는 소문은 영어에 미친 사람, 영어 박사, 혹은 영어 대가 등등이었다. 하지만 그런 헛소문을 믿고 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이들은 다들 실망만을 안고 돌아섰다.


나는 말더듬이다.


나의 부실한 구강구조는 머릿속에 펼쳐진 수려한 영어 문장을 난해한 고대어로 만들어 버린다. 상대방은 당황하고 그 표정을 읽은 나는 몸 둘 바를 모른다. 대화나 토론이 필요 없는 일방통로의 우리 학교 시스템에서, 사실 그동안 나의 결점은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 나는 줄곧 우등생이었고, 누구나 알아주는 명문대학, 명문 학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직장 인터뷰 혹은 회의에서 뭔가를 발표하는 게 무서웠다. 도대체 사람들 앞에 무슨 말이든 지껄여야 한다는 게, 마치 무시무시한 심연 너머로 한없이 떨어지는 악몽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를 선택했다.

아마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말더듬이가 어떻게 영어를 하느냐고? 차라리 우리나라 말보다 발음하기가 나았다. 그리고 더듬거려도 얼마든지 용서가 되었다. 우리 모두 다 영어는 좀 더듬거리면서 하니까.


남킹 SF 소설집 - 2024-01-05T124506.10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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