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2

by 남킹

남자와 헤어진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잿빛 하늘이지만 아직 햇볕은 따스하였다. 그리고 차창에 비친 거리는 단조롭고 한산하였다. 모두 숨바꼭질하듯 숨어 버린 듯하다. 집이 가까울수록, 성마른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일요일 저녁은 이 도시에 사는 대부분 직장인처럼, 한 주만큼의 우울을 달고 보내게 된다. 다가올 일주일은 막막하고 지나간 주말은 아쉽기만 하다.


사실 나의 업무는 딱히 어려운 것도 없다. 책상에 앉아 타자하고 전화를 받고 서류를 전달하다가 시간이 되면 그냥 퇴근하면 된다. 관광학과를 졸업하고 수출입과 관련된 제법 큰 회사에 다니지만, 대부분의 말단 여직원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품질관리라는 고정된 틀에 따라 움직이는 부서이므로, 야근도 없고, 또 그만큼 중요한 곳이 아니므로 긴장감도 거의 느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은 졸업 후 정식 입사한 나의 첫 직장이다. 이전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파트타임 일을 하였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리고 이제 7개월이 어느덧 흘러가 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낯설고 불안하기만 하다.


마치 공황발작을 경험한 강박증 환자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마음 붙일 만한 동료도 아직 얻지 못하였다.


어쩌면 시간이 갈수록, 내 안의 불안은 충적토처럼 차곡차곡 쌓여 가기만 한다는 느낌을, 나는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나를 더욱더 휘게 만들고,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결국에는 나를 몰아갈 것만 같다.


익숙한 동네에 버스가 멈췄다. 낮은 구릉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맞은 편 육교를 지나 좁고 고불고불한 길을 20여 분간 가파르게 오르면, 내가 사는 집이 나온다.


그는 아직 내 집이 어딘지 모른다. 딱 한 번, 새벽까지 여관에서 뒹굴다, 안전을 핑계 삼아, 배웅하러 육교 앞까지 따라온 적이 있다. 내가 부득불 우기지 않았다면 집 앞까지도 따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보여주고 싶지 않다. 또 앞으로도 보여 줄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가난의 상흔으로 온통 범벅된 이 동네와 내 집은, 내가 부정하고 싶은 내 가족만큼이나 남자에게서 감추어야 할 나의 치부와도 같은 존재이다.


육교에 올라서자, 발밑으로 지나치게 빠른 속도의 차들이 조급하게 왔다가 흩어졌다. 빛은 선으로 이어지고 잠시 동요하는 듯 뒤엉키더니 이내 사라졌다. 차들이 내는 소음에 어안이 벙벙하다. 넓지만 경사가 있는 도로에 육교는 위태롭게 길게 뻗어 있고 무너질 듯 왜소하다.


육교를 건너자, 변함없이 요란하게, 침대 널빤지를 세워놓은 듯한 간판을 내건, 보신탕과 보양식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새벽이 되면 세상의 눈을 피해, 개를 실은 트럭이 도착하고, 철창 속에 갇힌 개들이 인간들에게 질질 끌려 나온다.


죽음의 향기를 직감한 개들은 공포의 낮은 신음을 내며, 눈에 띄게 불거지는 저항의 자세로, 눈알을 부라리며, 다리를 넓게 짚고 서서 힘껏 버텨보지만, 건장한 인간들의 발길질과 몽둥이세례에 고통만 더 하며 끌려갈 뿐이다.


그 신음은 유년부터 내 몸 구석구석에 고통으로 각인됐다. 그러다 불쑥, 모처럼 만에 맞이하는 기쁨이나 즐거움, 행복감으로 세상을 평온의 눈으로 바라볼 때면,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아니 정확히, 내 몸에서 뿜어져 나와, 맞지 않는 사치한 감정들을 뽑아 버리고 나를 쥐어짜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아랫입술을 피가 맺힐 정도로 힘껏 깨물며 저항해본다. 하지만 나는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초라하고 불안하고 절망적이어야 만 하였다.


나는 휘저어놓은 감정들의 포착할 수 없는 소용돌이로 뛰어든다. 나는 미친 듯이 섹스를 하려고 달려든다. 남자가 있든 없든, 나는 내 몸 세포 하나하나에 박혀있는 모든 소리를 다 빼낼 때까지, 있는 힘껏 힘줄을 불리고, 마구마구 소리치며 내 몸뚱이를 학대하는 것이다.


남킹 사랑 소설집 - 2024-01-09T144155.862.jpg
버스 민폐녀 (1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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