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

by 남킹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는 스터디 멤버들과 점심을 하러 식당으로 갔다. 별일 없으면 우리는 거의 항상 중국집으로 간다. 동행하는 이들도 대부분 변함이 없다. 여자 세 명에 남자 넷이다. 주부, 유학 준비생, 직장인이 각각 두 명이고, 실업자가 한 명이다.


물론 실업자는 나다. 우리는 영어 닉네임으로 서로를 호칭한다.


40대 중반의 주부는 <카타리나>. 세례명이라고 했다. 남편이 모 대기업의 영국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아 다음 달 출국 예정이란다. 출국이 임박해서인지 무척 열심히 한다. 20대 후반 여자는 <샤론>. 미국 섹시 여배우 <샤론 스톤>에서 딴 거 같은데 전혀 육감적이지 않다.


나와 같은 해에 졸업하고 비슷한 시기에 학원에 들어와 비슷한 레벨로 수업을 받고 있다. 결혼 3년 차. 미국을 무척 동경하고 뉴요커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다분히 엉터리지만 끊임없이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 났다.


세 번째 여자는 <칼리>. 인도의 숱한 신 중 한 명의 이름이란다. 인도의 풍경에서 많이 보아 온 코끼리 형상의 신이나, 팔이 한 10개쯤 달린 신의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죽음의 신이란다. 왜 그런 신을 택했는지는 말하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인도를 동경하고, 인도 여행을 꿈꾸는 30대 초반의 프리랜서 웹디자이너.


40대 초반의 아저씨 이름은 <스티븐>. <스티븐 킹> 소설 마니아. 중소 규모 회사의 부장. 영어와 담을 쌓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미국기업에 팔리면서 잘리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영어 공부를 한다.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로 무척 힘들어한다. 하지만 영어 실력은 고통받는 만큼 가파르게 향상되고 있다.


20대 후반 휴학생은 <네로>. 물론 로마 폭군 네로 황제에서 따왔다. 군 미필. 유학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다분히 군에 가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어 보였다. 또 한 명의 20대 후반인 대학원생의 이름은 <아놀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머리에 떠오른 이름이라고 하였다. 전공은 화학. 미국 대학원에 이미 입학 허가를 받았고, 가을쯤 출국 예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의 영어 이름은 뵐.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을 좋아해서 처음엔 하인리히로 했다가 너무 긴 것 같아서 그냥 뵐로 바꾸었다.


오늘은 초대 손님도 있다. 고급 클래스 <뉴욕> 반을 맡은 원어민 할머니 선생이다. 우리는 식탁에 자리를 잡자마자 영어를 한마디라도 더 거들기 위하여 다들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별의별 질문들을 다 쏟아 내고 있었다.

회색 머리를 동네 아줌마처럼 볶은 선생은, 세상에 이 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듯한 밝은 표정으로,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고 또 잘못된 표현을 고쳐 주었다. 장소만 바뀌었지 수업의 연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영어 선생을 가끔 초청하여 음식과 술을 대접하였고, 그들은 그 대가로 부지런히 말을 들려주었다. 초기의 대화들은 대부분 서로의 개인사나 관심, 취미 등에 대한 거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바닥을 드러내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공통의 주제를 잡기 위하여 타임스지나 리더스 다이제스트 혹은 영어신문에서 보았던 기사들을 안간힘을 다해 짜내기도 한다.


나는 주로 듣는 편이다. 짤막한 대화나 간단한 답변 외에는 잘 말하지 않는다. 말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듣기 능력은 상당한 자신을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 중 가장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종 선생 질문을 못 알아듣고 엉뚱한 답변을 하는 학생들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한번은 언어학을 전공한 한 선생이 뉴스 방송에서 아주 드물게 등장하는 어려운 용어에 대한 질문들을 재미 삼아 퀴즈로 낸 적이 있는데, 더듬거리면서 내가 모든 질문에 정답을 말하자 좌중은 경탄으로 술렁거리기도 하였다. 사실 그들 대부분은 질문 자체도 이해 못 했다고 하였다.


또 한번은 시청각실에서 종일 틀어 놓는 미국 방송에서 <제퍼디>라는 퀴즈 프로그램의 답을 중얼거리는 나를 본 한 선생이 그 이야기를 수업 중에 하는 바람에 몇몇 호기심 어린 학생들이 퀴즈 방영 시간에 나를 구경하러 온 적도 있었다.


아무튼, 이러한 일이 있고 난 후, 나에 대해, 영어에 도가 튼 사람이라는 헛소문이 번지게 되었는데, 이 얘기를 접한 영어깨나 한다는 녀석들이 한 수 가르침을 받고자 일부러 접근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서 들은 소리라 곤 “아이이…에엠…쏘소리…”뿐인 것이다.


미자는 일주일에 두 번 학원에 왔다. 그녀는 아주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였다. 그녀의 영어 지식은 짧았지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황이 되면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무척 노력하였다.


그녀의 문장구조는 형편없기 짝이 없었지만 제 뜻만은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하였다. 그녀는 상대방의 뜻을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하였지만, 온몸의 촉각을 동원하여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썼으며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묘하게도 나에게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세상의 허망함에 일찍 눈 뜬 조울증 환자처럼 무채색으로 숨 쉬던 나에게, 그녀는 내일이 사형 집행일임에도 여전히 삶을 꿈꾸는 사형수처럼 보였다.


신의 땅 물의 꽃 (2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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