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에 퇴근한 나는 변함없이 학원으로 향했다. 버스로 두 정거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야근만 없다면 항상 걸어서 갔다. 가끔 부장이 태워다 주기도 하는데,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라서 될 수 있는 한 안 타려고 한다. 하지만 굳이 마다하지는 않는다.
과장이 외근을 나가게 되고 사무실에 부장과 나, 이렇게 단둘이 남게 되면 부장은 어떤 여자에게 전화를 걸곤 하는데, 확실한 거는 부인은 아니라는 거다. 부장의 입에선, 마치 내가 꼭 들어야 한다는 듯, 가래 섞인 목소리로 싸구려 음담패설을 수십 분 동안이나 전화기에 대고 쏟아붓곤 하였다.
전임자의 사직 이유 중 한 부분이기도 하고, 또 그녀로부터 사전에 주의사항을 이미 숙지한 터라, 나는 부장에게 일체의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업무에 몰두하는 척하곤 하였다.
어떤 이상한 말을 듣더라도 절대 아무 반응을 하지 말 것. 이게 그녀가 준 지침서였다. 만약 조금이라도 대응을 하게 되면, 놈은 집요하게 널 물고 늘어지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끝에 남자 친구가 있다고 하거나, 있었다고 했다면 놈은 질리도록 다양한 질문을 너에게 지속해서 그러나 천천히 물어 오리라는 것이다.
전임자는 그의 전임자에게서 그의 전임자는 또 그의 전임자에게서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각색되고 부풀려진 것도 있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많은 여직원이 몇 달을 못 채우고 나가거나 다른 부서로 갔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입사 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야근을 명 받는 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혹은 퇴근 후 차를 함께 탄다는 게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몸소 체험하게 된 후, 비로소 주의사항을 간과한 자신을 책망하곤 하였다. 그야말로 부장은 쳐낼 수도 물리칠 수도 없는 액운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환경이, 오히려 내가 입사를 하게 되는 시발점과 동기로도 작용한 것인데, 2년짜리 전문대를, 그것도 늦은 나이에 졸업한 나를 선뜻 받아 줄 때는, 이미 이 정도의 결함은 각오하면서 들어 오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저급한 인간들 세상 속에서 닳고 닳으면서 자라온 나에게, 부장의 음흉한 접근은 오히려 가소롭기만 하였다.
나는 그가 데려다준다면 마다하지 않고 차를 타고 학원이나 집으로 갔다. 유쾌하지는 않으나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주의사항을 잘 숙지하고 있으나 어떤 상황이 닥쳐도 피하지 않을 것이며, 꼼꼼하게 그의 행동과 말을 관찰하며, 참을 수 없는 본능의 가벼움을 조롱할 생각이었다.
막 소나기가 그친 직후라 거리는 후덥지근하였다. 바람이 민소매 속 겨드랑이를 살살거리며 지나가고, 햇빛은 빵빵거리는 차들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학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한 무더기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현수도 그들 속에 보였다.
남자는 나를 알아채고는 그들을 먼저 보내고 나에게 온다. 당구 하러 간다고 한다. 내 수업이 끝나기 전에는 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씽긋 웃고는 다시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 남자는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를 찾으러 가기 전에는 온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