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춤을 춘다. 4

by 남킹

늦은 저녁을 한 후, 우리는 다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예전 소주 공장 자리였던 이곳은 이제 20층짜리 현대식 빌딩으로 변모하였는데,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각종 위락시설 및 상가, 병원들이 들어차 있고 나머지는 오피스텔로 되었다. 그리고 옆에는 좁지만 더러운 강이 흐른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 본 강 중 가장 더러울 거다.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진 이곳은 여름에는 심한 악취도 올라왔다. 사실 강이 흐른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곳은 어머니가 결혼 전까지 반평생을 보낸 마을이고, 또 내가 지금 사는 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다. 심지어 내가 다닌 고등학교도 이 마을에 있다. 어머니의 믿기지 않는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여기서 빨래도 하고 멱도 감았다고 하였다.


언제부터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강이 되었을까? 이곳을 버스를 타고 지나칠 때마다 한 번씩 물어보곤 하던 질문이었다. 어릴 적 들은 소문에는 이런 것도 있다. 버스가 강으로 굴렀다고 한다. 큰 사고는 아니었는데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다쳐서 죽은 게 아니라 이 강물을 마시고.


오피스텔과 마을을 이어주는 큰 다리가 최근에, 좀 더 바다와 가까운 곳에 놓였다. 사실 이곳은 강의 끄트머리 즉, 바다와 이어진 곳이다. 예전 다리는 난간도 없고 아주 좁았다. 고등학생 때, 이곳을 건너야만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무척 떨었던 기억이 났다.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는 온갖 종류의 배들이 떠 있고, 내가 사는 동네까지 길게 현대식 접안시설이 갖추어진 부두가 이어져 있다. 부두 옆에는 좁은 기찻길이 있고 그 옆에는 2차선 도로가 있다. 이 도로에는 쉴새 없이,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들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오고 간다. 가끔 기차가 다닐 때도 있는데,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릴 때 나는 형과 이 기차에 매달려 놀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간직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이 기찻길을 따라 형과 함께, 어머니가 근무하는 봉제 공장을 찾아갔다는 거다. 좁고 낡았던 그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갔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생생하게 기억하는 부분은, 솜털 같은 게 무수하게 떠 있는 공간 위로 실뭉치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고, 그 뭉치에서 뻗어 나온 실들이 털털거리며 재봉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였다. 어머니는 처녀 시절부터 이 일을 했고, 결혼 후 한동안 그만두었다가 아버지가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들어가는 바람에 다시 하게 되었다. 이후 어머니는 독립하여 조그마한 옷 수선 가게를 하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사양길에 접에 들자, 이모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채소 가게를 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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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빌딩 지하에 있는 노래방으로 갔다. 방음이 된 두터운 문을 슬그머니 열자, 돼지 멱따는 고성이 뭉치로 여기저기서 몰려다녔다.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아줌마가 우리를 알아채고는, 친숙한 웃음으로 방 번호를 알려주었다. 7번 방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린 듯하더니 삽시간에 흩어져 버렸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는 옆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탁자에는 맥주 맛 음료 캔들이 찌그러진 채 흩뿌려져 있고, 어묵 국그릇엔 대파 쪼가리만 둥둥 떠다녔다. 울긋불긋 천천히 돌아가는 싸이키 조명 빛 사이로 부유 먼지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 속으로 생기발랄한 젊은이들이 폴짝거리며 헤매고 다녔다. 즐거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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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을 나오자 비가 바람과 함께 내려왔다. 굵은 빗방울은 머리에 떨어지지 않고 얼굴을 때렸다. 미자는 찡그린 얼굴로, 뭐라고 새롱거리며, 핸드백을 황급히 열더니 양산을 꺼내 내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별 소용은 없지만, 그런대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데에는 앞가림은 틔워주고 있었다. 밤의 상크름한 공기가 가슴 속을 훑어 내렸다. 걷다가 문득 바라본 하늘 속으로, 저 멀리 검은색을 띤 구릉 지대가 흐릿하게 보였다. 맑은 날에는 굽이치는 능선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하얗게 색칠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선명하게 보이겠지만, 지금은 온통 숲처럼 음산하게만 보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작별 인사를 하자, 비를 맞은 여자의 얼굴에 까닭 모를 슬픔과 애잔함이 느껴졌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방울이 쭈르륵하고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다 볼에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보았다. 그 물이 수정처럼 반짝거렸다. 그 빛을 여자가 손으로 훔쳐냈다. 그러자 갑자기 강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여자와 우산을 남겨 둔 채, 곁눈질하며 다리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비는 계속해서 얼굴을 강하게 때렸다. 나는 비를 맞으며 바람에 비틀거리며, 유년 시절부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그 다리로 갔다.


나의 플란넬 바지가 비에 흠뻑 젖어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었다. 다리 입구에 도착하여 내려다본 검은 강물은 춤을 추고 있었다. 언제나 죽음처럼 미동도 하지 않던 그 썩은 물이 오늘은 덩실덩실 춤사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호기 있게 난간도 없는 좁은 그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바람은 내 몸을 심하게 흔들고, 비는 내 뺨을 거칠게 갈겼다. 발아래 강물은 검은 아귀처럼 입을 쩍쩍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두려워했던 이 다리가 생각보다 넓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바람에 비틀거리지만 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리를 건넌 후 뒤돌아봤을 때, 어느새 뒤따라와 건너편 다리 입구에 선 미자를 보았다. 여자가 다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냥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마치 레테의 강을 건넌 것처럼.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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