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쓰웜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요,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이다. -스탈린
“적당히 들게나. 메인 요리가 아직 있으니···.”
프라이스는 느긋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담은 채, 아난다를 바라봤다.
그의 말은 일종의 신호처럼 들렸다.
부산하던 식탁 위의 손동작들이 일제히 멈췄다.
아난다는 샐러드에 포크를 찌른 채, 보스의 표정을 살피며, 입속에 담긴 음식을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의 죽 그릇은 이미 깔끔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변호사의 두툼한 입술이 살짝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난다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만찬을 끝내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추가 정보를 이제 내놓아야 할 때인 것을.
“그래, 말해보게. 자네도 느낄 수 있을 테지만, 놀라운 소식은 무척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법이지.
그리고 궁금한 것을 담아 두기란 여간 힘들지 않은 법이고.
만찬은 길지만, 나의 조급함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네.
우선, 어떻게 이런 정보를 입수했나?”
방안의 시선이 일제히 예지수에게로 모였다.
긴장이 다시 몰려왔다.
모든 게 얼어붙은 듯 차가운 정적이 일 순 이어졌다.
그런데도 모처럼 만에 유기물을 받아들인 그의 육체는, 영양분을 짜내기 위해 부산을 떤다.
그는 정신을 잡아당기며 평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마겟돈 이전에 저는 중국 공안 당국에 체포되어 알 수 없는 곳에 억류되어 있었습니다.”
“죄목이 뭔가?” 보스는 의자를 살짝 끌어당겨 자세를 고치며 아난다에게 물었다.
그의 얼굴에서, 법정에 선 변호인의 자긍심이 언뜻 느껴졌다.
“죄목은 없습니다. 단지 제가 소속된 모임이···.”
“무슨 모임인가?” 그의 모습에 익숙함이 묻어났다.
무척 낯익은 그 모습.
<프라이스 다즈의 법정>.
소셜 네트워크 영상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 구독 뷰어 10억.
그는 구부정한 모습으로 그의 명성을 더해 줄 사건을 선별하고, 법정과 사건 현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명석한 두뇌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영특한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고 누명을 풀어주고 선한 이를 돕고 악한 이를 벌주곤 하였다.
특히, 7회 영상은 그를 당대 최고의 변호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집행을 불과 닷새 남겨둔 사형수의 무죄를 입증한 것이다.
13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말이다.
그는 15년 전 발생한 2건의 강간 살인 사건의 현장을 기록과 진술에 따라 재구성하며, 당시 수사관들이 놓쳤거나 의도적으로 숨겼던 증거들을 찾아내어, 좀 더 진보한 과학 기술에 접목하였다.
특히, 그는 피의자, 피해자 혹은 증인들의 인터뷰를 능숙하게 진행하였으며, 그가 질문을 던질 때쯤이면, 언제나 카메라 앵글을 그의 눈에 집중하게 하였다.
반짝이는 눈.
마치 진실을 이미 모두 알고 있으니, 인제 그만 사실대로 실토하라는 듯한 눈빛.
그 강렬함에 시청자들은 노예처럼 매료되었다.
그 눈빛을 지금 예지수는 보고 있다.
영상이 아닌 현실에서.
“사피엔티아(지혜).” 그러자 프라이스는 잽싸게 그의 말을 반복했다.
“사피엔티아? 그럼 그 <사피엔티아>란 말인가? 네가?” 그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어수룩한 모습 속에 감추어진 명석한 두뇌가 강렬하게 움직이는 듯, 그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아난다는 천천히 그를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째인가?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의 눈빛은 이제 심각함으로 물들었다.
“마지막입니다.”
“그럼. 13의 형제인가?”
“... 네.”
“그럼, 자네가 아난다?”
“네.”
“중국에는 왜 갔는가?” 그는 이제, 마치 심문하는 형사가 되었다. 진실을 꼭 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뭉친.
“끌려갔습니다. 제주도에서.”
“그럼 제주도에서 납치되었단 말인가? 무엇을 해킹했길래?”
“고비사막에 있는···.” 다시 그는 예지수의 말을 가로챘다.
“데쓰웜?”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네, 데쓰웜.”
“그 데쓰웜 말인가?”
“네.” 아난다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보스는 의자를 밀어내고 식탁을 젖히며 그의 옆에 자리했다. 그의 눈은 이제 열정으로 이글거렸다.
“말해보게. 그곳에서 캐낸 정보가 이것만은 아니겠지?”
“네, 극히 일부분입니다. 아주 길고 큰 프로젝트의….”
“우리의 만찬이 무척 길어지겠군.” 그는 입구에 대기 중인 부하를 불렀다.
“메인을 가져오게. 아주 근사하게 말이야. 아끼지 말고. 귀빈이 오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