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5

by 남킹

8의 형제 라후라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전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 예수(요한복음서 12:24-25)


정보는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가치 있는 거였다.

유목민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오아시스의 위치 정보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최고의 천으로 여겨지는 비단이 한낱 미물의 벌레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중국이 세상에 감추어야 할 최고의 정보였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양한 형상의 음식이 식탁을 채웠다.

<풍요의 시대> 때, 요리 앱에서나 봄 직한 화려한 색상의 음식들. 이런 것을 <종말의 시대> 때 마주하리라고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아난다는 눈이 휘둥그러진 채 그들을 쳐다봤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여기서 항상 이렇게 먹을 거라는 착오는 하지 말기 바라네.

평소에는 통조림 반 통이 고작이라네.

그것조차 일 년 이내에는 다 소진되겠지만 말이야.” 변호사는 예지수의 어깨를 톡톡 치며 눈짓으로 음식 들기를 권유하였다.


아난다는 순간적으로 무엇부터 맛보아야 할지 모를 정도의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들면서 그냥 듣게나.” 보스는 포크로 고기 조각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비정한 깡패 집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정보의 중요성을 깨우쳤기 때문이었지.

누가 나의 적이고 동지이며, 누가 유익하고 해로운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서, 누구의 세력이 더 크고 위험하며, 어느 집단이 더 유익하고 오래 갈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나는 무척 많은 시간과 인맥을 투자하였다네.”


아난다는 우선 가까이에 차려진 음식부터 조금씩 맛보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서둘지 않게 되었다.

천천히 보고 음미하고 느끼며 감탄하게 되었다.

어느새 그는 불어나는 몸무게를 고민하던 가벼운 시절로 떠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정보의 탐닉은, 내가 세상에 무척 알려진 인물로 등장하면서부터 그 영역이 한없이 넓어졌다네.

나는 내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뿐만 아니라, 단지 호기심만으로도 비싼 대가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네.

그중에는 허황한 것도 많았지.


9.11 테러 음모나 가짜 달 착륙부터 51구역 UFO, 셰익스피어 미스터리, 파충류의 세계 지배설까지, 혹은 심지어 흑인을 통제하기 위하여 에이즈가 만들어졌다는 설까지 온갖 종류의 음모설을 정보의 범주에 예외 없이 포함하곤 하였지.


모르겠어. 내가 왜 그렇게 하였는지는.

나의 직업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만을 가치로 받아들이게끔 숙련시킨단 말이지···.”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자신의 포도주잔을 가져와 단숨에 마셔버렸다.


순간적이지만 그의 입이 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잔에 와인을 다시 채우고 예지수를 돌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나는 닥치는 대로 정보를 끌어모았지.

물론 그중에, 전혀 상식적이지 않거나 뜬구름 잡는 듯한 허황한 이야기는 분류하여 저장한 채, 그냥 흘려버렸겠지.

고비사막의 데쓰웜도 그중의 하나지.

그냥 전설이잖아. 그렇지?”

아난다는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려 그에게 동조를 표시했다.


“그래. 그랬지.

중국과 러시아 정부가 공동으로 비밀리에 데쓰웜을 조사하다 탄로 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렸을 때도 그냥 웃고 넘겼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까 말이야.” 그는 한쪽 손을 아난다의 어깨에 지긋이 대고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답변을 기다린다는 듯.

아난다는 천천히 입안의 음식을 모두 삼킨 뒤, 와인을 비우고 보스에게 눈길을 돌렸다.


“데쓰웜은 대량파괴 무기의 저장소였습니다. 적어도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그는 흔들리는 프라이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힘없이 내뱉었다.

“그리고 적어도···.” 아난다가 다시 말을 꺼내자마자, 다시 그의 조급함이 묻어났다.

“그래, 적어도 뭔가?”

“적어도 16개의 데쓰웜이 더 있었습니다. 각 대륙의 오지에….”


“그럼 뭔가? 자네가 보기에는 각 국가가 단합해서 세상을 파괴하기로 작당을 했다는 건가?” 보스의 음성이 올라갔다.

떨림도 느껴졌다.

믿기지 않는 현실.

아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뽑은 정부가 자국민을 몰살하였다?

그것도 한 정부가 아닌 여러 정부가 단합해서?

그래, 적어도 우리의 상식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인간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뜻은?” 프라이스는 이제 고기 씹기를 잊고 아난다에게 몰입한 듯 보였다.

“인간을 창조주로···”

“AI?”

“저희가 밝혀야 할 숙제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들은 이미 저희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아마겟돈이 시작되기 며칠 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저희 형제 모두가 구속되었습니다. 거의 동시에 말이죠.”

“13명 모두?”

“네 13명.”


“자네는 구성원 모두를 본 적이 있는가? 아니 알고 있는가?”

“아뇨. 아무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사람만 알고 있습니다. 제게 연락을 하는 이는 오직 한 사람이죠.” 변호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비로소 뭔가를 조금 이해하는 듯한 몸짓.


“어느 날, 나의 핸드폰에 이상한 메시지가 뜨더군.

알다시피 우리는 광고의 홍수 속에 살잖아.

하루에도 수십 통의 원하지 않는 메시지를 받곤 하지. 아니지···.” 그는 이 대목에서 씁쓸한 듯, 그의 좁은 미간에 주름을 세우며 슬픈 표정으로 아난다를 쳐다봤다.


“광고의 홍수 속에 살았었지. 그게 불과 일 년 전인데···.” 그래.

불과 1년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남극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오염되고 파괴되었다.

그 남극 또한 머지않아 오염될 것이다.

설령 오염의 강도가 작더라도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여름이 오기 전, 거주자 대부분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메시지는 싱겁기 짝이 없는 거였어.

어마어마하게 큰 유령선이 남극 바다를 떠돌고 있다는 것과 그 속에는 온갖 종류의 통조림이 가득하다는 것이지.

웃기지 않는가! 유령선과 통조림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

미스터리 축에도 들지 않는 황당한 거였지.

그래서 그냥 지워버렸지.

그런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오더군.

수신 거부도 소용없더군.

내가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거부하였지만, 언제나 그 메시지는 내 핸드폰에 자리하고 있는 거야.

호기심이 들더군.

나는 전문가를 불러 수신자를 추적했지.

그리고 내가 알아낸 정보는 단 한 개였어.”

그는 말을 멈춘 채 아난다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예지수는 그의 진지한 속삭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의 손과 입, 뇌는 끊임없는 탐식의 판타지에서 허우적대고만 있었다.


“8의 형제. 라후라.” 아난다가 속으로 이름을 외치는 순간, 프라이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결과적으로는 <8의 형제>가 나를 살렸지.

굶주림에서 말이야.

그리고 극소수의 운 좋게 살아남은 피난민들 속에 가장 큰 세력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도록 만들었지.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서 나보다 더 많은 음식을 소유한 이는 없으니까 말이야.”

아난다는 코펠 잔에 담긴 와인을 홀짝거렸다.


시큼한 향기 속에 담긴 알코올이 지친 식도를 타고 뜨겁게 내려갔다.

그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다시 고기 조각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무슨 고기인지는 물어보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네. 라후라가 제게 유일한 연락책입니다.” 그는 와인을 비우고 빈 잔을 식탁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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