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시포스

시시포스 3

by 남킹


3부

니콜라이 흘라디는 꿈에서 돌아왔다. 누군가 그를 흔들었다.

두목. 움직일 시간입니다.

그를 깨운 이는 감방 동료 알렉산드로였다. 니콜라이는 아쉬운 듯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꿈은 지극히 평범했다. 시시포스 시내의 한가로운 오후 풍경이었다. 그의 앞에, 완곡한 곡선의 산책로를 따라, 미모사 가로수가 줄지어 늘어섰다. 부드러운 바람에 촘촘하게 잎이 박힌 나뭇가지들은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황금빛 꽃들은 햇빛을 받아 빛나며 나른한 공간을 화사하게 만들었다. 그 속으로 니콜라이는 천천히 걸었다. 아내 안나가 어느새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쉴 새 없이 자신의 불만을 떠벌렸다.

당신은 늘 앞만 보고 홀로 걷기만 하는군요. 이렇게 한 번씩 제 손을 잡으면 어디가 덧나는가요? 가끔 뒤도 한 번 둘러보세요. 저기 저 우리 아들 안드레이가 멋진 젊은이가 되어 뛰어오고 있잖아요. 우리 딸, 마리아는 어떻고요?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되었잖아요. 저기 저 보이나요?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당신 딸 말이에요.

니콜라이는 어느새 호숫가에 이르렀다. 호수의 절반은 연꽃이 점령했다. 사람들이 주변을 한가로이 맴돌았다.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그림 같은 풍경에 빠져들었고, 어떤 이는 애인과 함께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미소를 보냈다. 작은 아이들은 호숫가에서 놀며 순수한 미소를 보냈다. 그 오후는 마치 시적인 향연이 펼쳐지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니콜라이는 알렉산드로가 건넨 거친 붕대를 몸에 칭칭 감았다. 그리고 그 위에 죄수복을 걸쳤다. 그는 침대 밑에 숨겨 두었던 플라스틱 송곳과 손전등을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 송곳은 칫솔 막대를 갈아 만든 거였다.

몇 시지?

오 분 전 4시입니다.

알렉산드로가 숨겨 둔 휴대폰을 조심스레 꺼내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니콜라이는 길게 한숨을 쉬고 문으로 다가갔다. 적막한 새벽의 숨 막히는 안개가 물체들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니콜라이는 그 어둠 속에 깊이 파고들어, 얼어붙은 심장의 박동 소리를 몸으로 느꼈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창살 밖 복도를 살폈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이 그의 눈동자에 가득 담겼다.

젠장, 나는 그저 평범한 오후에 머무르고 싶었단 말이야. 더럽게 꼬여버린 내 인생.

잠시 후 발소리가 들렸다. 또박또박 선명하면서도 규칙적인 소리. 이윽고 그 소리는 니콜라이 방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딸깍거리는 자물쇠 소리.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속삭임이 들려왔다.

나오시오.

니콜라이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교도관의 뒤를 따라갔다. 희미한 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들을 흐릿하게 비췄다. 협소한 통로가 이어지고 무거운 철문들이 여러 번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니콜라이의 걸음은 점점 무거워져 갔지만, 그의 의지는 결연해졌다.

이윽고 그들은 독방이 길게 늘어선 통로에 도착했다. 그는 주머니에 있는 송곳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의 마음은 비틀림과 분노로 가득 찼다. 얼음 같은 눈빛은 그의 복수심을 그림자처럼 품고 있었다. 교도관이 열쇠로 철창을 따라 손을 뻗어 독방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니콜라이는 어둠 속에 널브러진 검은 그림자를 보았다. 니콜라이는 손전등을 켜고 천천히 다가가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올렉시아. 그의 심복이 확실했다.

그 순간, 철문이 조용히 닫혔다. 그리고 철창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 지키시오. 10분이요.

올렉시아가 어둠 속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니콜라이를 올려 다 봤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그는 이곳으로 끌려 올 때부터 예견하였을 것이다. 결코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니콜라이는 그런 그를 보는 순간, 분노와 의문으로 가슴이 저렸다. 그가 신뢰하던 사람. 그가 믿었던 몇 안 되는 유일한 친구. 모든 것을 공유하던 관계. 결코 이런 침묵과 혼돈의 냉기 속에 마주칠 인물이 아니었다.

왜 그랬어?

니콜라이는 송곳을 꺼내 손에 꽉 쥐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누가 그랬어? 누가 나를 이곳으로 보낸 거야?

보스입니다.

그럴 리가? 레오가 왜 나를?

시시포스.

시시포스?

네. 보스는 시시포스에 마약을….

그건 이미 끝난 이야기야! 너도 알잖아! 펜타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비 도시를 만들고 싶은 거야? 응? 너도 똑똑히 두 눈으로 봤잖아! 이웃 도시들이 다 어떻게 변했는지. 스티그마, 아케론, 코클린, 프레기스, 루테 이 아름다운 흑해 도시들이 부랑아가 넘쳐 나고 약탈과 살인이 난무하는 지옥이 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니콜라이. 불쌍한 니콜라이. 당신도 느끼고 있잖아요. 이미 골든 타임은 지났다는 것을. 다른 마피아들이 벌써 시시포스에 대량으로 펜타닐을 팔아 재끼고 있어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에요. 우리만 고고한 척할 수는 없어요. 시간문제라고요. 당신이 고집을 피우는 한, 시시포스는 곧 적들의 손아귀에 들어갈 거에요.

이러지 마! 올렉시아. 시시포스는 작은 도시야. 내 형제들만 뭉쳐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 그 쓰레기들을 모두 청소할 수 있다고!

이미 끝난 일이에요. 니콜라이. 5대 마피아 간에 협정이 맺어졌어요.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누가 당신을 이곳으로 보냈는지 당신은 감도 잡지 못하는군요.

그래! 누구야? 누가 나를 이곳으로 보낸 거야?

올리거.

올리거? 내 동생 올리거? 이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니콜라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올렉시아의 멱살을 움켜쥐고 송곳을 그의 목에 들이댔다. 한 줄기 피가 그의 껄떡이는 목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 내렸다.

다시 한번 말해봐! 누가 그랬다고?

당신을 배신하지 않으면 당신 형제 모두가 타겟이 된다고요. 알겠어요? 제발 현실을 직시하세요. 니콜라이. 올리거는 당신을 살리고 동생들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 당신을 제거한 거라고요.

니콜라이는 그 순간 힘이 쭉 빠져, 쥐고 있던 송곳을 놓치고 말았다. 그를 괴롭혔던 모든 혼란이 삽시간에 분명하게 다가왔다. 그는 뒤로 물러나 벽을 등지고 털썩 주저앉았다. 빈 곳. 텅 빈 곳으로 고통이 채워졌다.

나는 그저 평범한 오후에 머물고 싶었어.

그때 철문이 조용히 열렸다. 교도관이 낮은 소리로 니콜라이를 불렀다.

시간 되었어요. 갑시다.

니콜라이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모든 의지가 다 빠져나간 너덜너덜한 육신으로 어기적어기적 교도관을 따라갔다.

희미한 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다시 그들을 흐릿하게 비췄다. 더욱 협소한 통로가 이어지고 더 무거운 철문들이 여러 번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니콜라이의 걸음은 이제 한 발짝 내딛는 것조차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그는 앞서가는 교도관을 불러 세웠다.

교도소장과 면담을 하고 싶소.

*************

교도소장 미하일로가 니콜라이를 반갑게 맞았다.

그래, 요즘 생활은 어떻습니까? 지낼 만합니까?

신경 써 준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하일로에게 니콜라이는 최고의 고객이었다. 니콜라이가 수감 된 이후, 그의 차 트렁크에는 철마다 맛있는 시시포스 산 과일 상자가 실리곤 하였다. 물론 그 상자의 바닥은 현금으로 채워져 있었다.

얼굴이 좀 수척해 보입니다. 뭐 불편한 거라도 있으신가요? 말만 하세요. 성심성의껏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교도소장은 마치 물건 사러 온 고객을 대하는 장사치처럼 말을 했다.

불편한 거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예전에 장기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용병 모집을 들었습니다. 아직도 유효한가요?

용병에 지원하시려고요?

네.

그건 안될 말입니다. 저 미꾸라지 같은 정치인들이 야합해서 만든 졸속 행정입니다. 그래, 우리나라가 유럽에서 가장 못 사는 거는 인정합니다. 교도소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소자들은 우리 국민이 아닙니까? 장기수들이 여기서 밥을 먹으면 얼마를 먹는다고 그 돈 아끼려고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습니까? 지금까지 용병으로 끌려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거긴 한 마디로 지옥입니다.

그래서 가겠다는 겁니다.

네?

교도소장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니콜라이를 쳐다봤다.

어차피 저는 버려진 카드입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운명. 그냥 전쟁터에서 죽겠습니다.

하지만….

교도소장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흐렸다. 그의 MVP 고객이 단순 변심으로 떠나겠다고 하는 상황이 못내 못마땅하기만 했다.

*************

삐 하는 경고음과 함께 니콜라이는 눈을 떴다. 붉은 점멸등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긴장을 다그치는 공기가 그를 에워쌌다. 거친 비행 소리가 수송기의 내부를 꽉 채웠다. 그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얼굴에는 두려움이 새겨졌다. 니콜라이는 맞은 편 동료를 쳐다봤다. 그의 얼굴에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와 떨어진 공간은 야전에서 흘릴 피의 풍경을 반추하듯 붉디붉었다.

비행기는 어둠 속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곧 낙하 신호가 떨어졌다. 낙하 대원들은 안전띠를 풀고 조심스레 문 쪽으로 걸어가 일렬로 줄을 섰다. 문 주변에 배치된 장비들이 작동했다. 그 소리는 니콜라이의 귀에 미묘한 고음과 진동을 전달했다. 니콜라이는 손에 있는 장갑을 끼고, 문의 조작 장치에 손을 올려 문을 여는 순간을 기다렸다. 간헐적인 소리와 함께 비행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세찬 바람이 비행기 내부로 들이닥치며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는 버티기 위해 지지대를 있는 힘껏 꽉 잡았다. 그리고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그는 문으로 내려다보이는 검은 세상과 마주했다. 그 속으로 그는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

어두운 공기가 그를 격하게 포옹하였다. 그는 자유낙하의 경이로움 속에 숨을 규칙적으로 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낙하산을 펼쳤다. 별빛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의 심장은 들뜸으로 뛰어올랐다. 하늘을 나는 동안, 니콜라이는 뒤죽박죽 뒤섞인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

어머니가 떠나자 아버지 자이밀의 폭력은 니콜라이에게 향했다. 그는 묵묵히 참았다. 왜냐하면 그가 반항하거나 거부한다면 아버지의 구타는 동생에게로 틀림없이 향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집안에 빈 술병이 쌓일수록 자이밀의 폭력은 커져만 갔다. 아버지의 요구는 단 하나, 술이었다. 니콜라이와 올리거는 거리로 내몰렸다. 그들은 매일 아버지의 술값을 벌어야만 했다. 니콜라이가 학업을 포기하고 동네 외곽에 있는 양조장에 말단 사원이 된 것은 그런 연유였다.

그 양조장은 시시포스에서 생산하는 옥수수와 보리를 발효하여 전통적인 방식으로 위스키를 제조하였다. 니콜라이는 나이가 어렸으므로, 제조 과정의 특정 부분을 맡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한 곳에 투입되어 작업을 거들었다. 덕분에 그는 발효, 증류, 숙성, 운반까지, 위스키 제조 과정의 모든 부분을 두루두루 배울 수 있었다.

양조장의 일과는 대부분 오후 2, 3시경쯤 되면 끝이 났다. 왜냐하면 그다지 술 주문이 많지 않았다. 별로 나쁘지 않은 품질의 위스키였지만 상표 명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시시포스 주민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러므로 이 위스키는 시의 일부 음식점과 술집에만 싼값으로 제공되었다. 양조장 창고에는 재고 술이 항상 넘쳤다.

관리도 엉망이었다. 직원들은 일이 끝나면 다들 배낭에 위스키 한두 병쯤 넣어서 퇴근하였다. 엄연한 불법이지만 일종의 관행이 되어 버렸다. 술을 좋아하는 이들은 집에서 마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동네 가게에서 식료품으로 바꾸거나 팔기도 하였다. 니콜라이도 열심히 술을 챙겼다. 당연하게도 그가 가져간 술은 모두 아버지의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갔다.

양조장 사장은 그미로바로 알려진, 마피아 보스의 막내아들 이고르이다. 이 조직은 주로 러시아의 노보로시스크와 노벨리스크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마약 밀매, 불법 도박, 협박, 강도 등 다양한 범죄 활동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후 그들은 호텔, 카지노, 주류 산업 등에 진출하면서 비교적 합법적인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고르는 형들과 달리 사업에 그다지 재능이 없었다. 대부분 사업을 말아 먹고 이제 이 양조장 하나만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것도 부실 경영으로 곧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원들이 빼돌린 술이 세무서 감사에 적발되었다. 즉, 주류세 횡령 혐의가 씌워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취재하던 지역 신문 기자는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직원들이 퇴근 때 한두 병 정도 훔친 게 아니라, 일부 선임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팔레트 단위로 수만 병을 훔친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고 대부분의 양조장 직원이 사건에 연루되어 끌려갔다. 이제 회사에 남은 이는 일부 신입사원뿐이었다. 그중에 모든 양조 기술을 알고 있는 이는 니콜라이가 유일했다.

하루아침에 그는 양조 회사 매니저가 되었다.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영리하고 대범하였다. 그는 야망이 있고 그 행운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는 곧바로 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매니저 수락 조건을 요청했다.

먼저, 제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 재활센터로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 머물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술 판매에 관한 모든 마케팅 권한을 제게 주십시오.

물론이지.

그리고 회사 수익의 10%를 제게 주십시오.

그것도 그렇게 하지.

제 동생 올리거를 이곳에서 함께 일하게 해 주십시오.

좋아.

이상입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나의 조건도 들어 주겠나?

네. 말씀하십시오.

양조장의 술이 단 한 병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주게.

약속드립니다. 철저하게 재고 관리하겠습니다.

그날 이후, 니콜라이는 이고르에게 매일 재고 현황, 생산 현황, 판매 현황을 보고 하였다.

니콜라이는 저장고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안 팔린 술이 오크 통에서 수십 년째 방치되고 있었다. 그는 제조 연도 별로 재고 술을 정리했다. 그는 술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숙성 기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엉망으로 재고 관리를 한 덕분에 30년 이상의 숙성 제품이 제법 남아 있었다. 그는 전문 디자이너에게 청탁하여 술병 모양과 라벨 디자인을 고급스럽게 바꾸었다. 동네 술집과 식당에 싼값으로 납품하던 것도 모두 끊어 버렸다. 그리고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희귀 술 컬렉터가 타겟이었다. 커뮤니티를 조성했다.

극소수의 일부 억만장자들에게만 비밀리에 유통하던 최고급 위스키 30년, 40년, 50년산 제품.

컬렉터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정품인정서를 만들고, 이고르의 형들이 운영하는 고급 호텔과 카지노에 판매했다는 서류를 조작했다. 그리고 컬렉터들이 직접 방문해서 실물을 확인하고 구매 의사를 밝히면 특별 할인 한정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렸다. 양조장은 최대한 낡은 상태로 그냥 두었다. 누가 봐도 옛날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다는 것을 각인 시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 술꾼 친구 중 나이가 많고 입담이 좋은 사람을 채용했다. 그들은 주류 감별사로 둔갑하여, 찾아온 컬렉터들에게 천상의 맛과 향을 지닌 위스키에 대한 끝없는 찬양을 늘어놓았다.

그의 마케팅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컬렉터들이 성지 순례하듯 양조장을 찾았다. 병당 10달러도 하지 않던 술이 경매에서 최고 10만 달러까지 뛰었다. 위스키 전문 매거진인 <몰트위스키 이어북>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역 방송국과 신문사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연일 인터뷰가 쇄도했다. 그는 하루아침에 시시포스 시에서 가장 유명한 전문 경영인이 되었다. 그의 나이 불과 25살 때였다.

그의 유명세는 곧바로 마피아 보스 그미로바의 시선을 끌었다. 거의 왕따로 취급받던 그의 막내아들을 구원한 청년. 마침 이고르의 장녀 안나는 이제 갓 스물이 된 아름다운 처녀였다. 그들은 니콜라이를 그들만의 궁전으로 끌어들였다. 한창 혈기 왕성한 니콜라이는 안나를 보자마자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 일사천리로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모두 참석했다. 그때가 니콜라이 생에 최고의 한 해였다.

하지만 니콜라이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그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레오를 만났다. 그미로바의 장남. 실질적인 마피아 보스였다. 잔인하기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로 악명을 떨쳤던 그는, 일련의 합법적인 사업 성공에 고무되어, 자신의 이미지 세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그 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흑해 일대의 주류 시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기 위한 청사진을 레오에게 제시했다.

니콜라이에게 엄청난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변의 양조장을 몽땅 사들였다. 판매를 거부하거나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부르는 양조장은 이고르가 직접 나섰다. 마피아의 사주를 받은 세무서 직원이 느닷없이 회사에 들이닥쳐 회계 장부를 압수하거나 위생계 조사 요원이 공장에 부지불식간에 나타나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그런데도 버티는 양조장은 마피아의 공포로 그들을 쫓아냈다.

이즈음 작은 사건 하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예전에 술을 빼돌려 감옥에 갔던 전 직원들이 하나둘씩 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자기 밑에서 일하던 새파랗게 젊은 니콜라이가 어느새 주류 업계의 아이콘이 된 것을 목격하고는 시기와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싸구려 술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최고의 위스키가 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눈치 빠른 이는 이 추악한 진실이 곧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은 신문 기자를 끌어들여 니콜라이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막음용 돈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간과하였다. 니콜라이가 마피아 가문의 사위라는 사실을. 게다가 니콜라이의 성장 환경이 어떠하였는지를 그들은 전혀 몰랐다. 니콜라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보고 배운 것은 폭력뿐이었다. 그는 폭력이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한두 푼의 돈으로 밀고자들의 입을 영원히 닫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인지했다.

동네에서 그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졌다. 누구도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경찰의 탐문수사는 형식적이었다. 그저 동네 몇 바퀴 둘러보고는 수사가 마무리되었다. 실종자 유족들은 니콜라이를 의심했지만 아무도 입을 열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니콜라이는 이제 촉망받는 기업인에서 공포를 선사하는 조폭 두목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화려한 공포를 결정 짓는 사건은 바로 그를 협박하던 신문 기자가 양조장 건너 옥수수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거였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난도질당한 그의 몸은 밭 곳곳에서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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