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올리거 흘라디는 어둠 속에 눈을 떴다. 그리고 헐떡이며 숨을 삼켰다. 심장은 여전히 요동쳤다. 땀으로 몸이 흠뻑 젖었다. 그는 깨어났지만, 꿈의 그림자는 아직도 현실에 머물러 있다. 그 속에선 어둠의 속삭임이 울려 퍼져 빗방울처럼 그를 적시고, 그 모습은 아무리 피하려 해도 눈에 비치기 시작했다. 신문 기자의 갈기갈기 찢긴 형체. 산산이 부서진 존재들이 모든 존재의 무게를 지닌 듯 험악한 영혼을 품고, 그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 갈라놓고, 죽음의 그림자를 비추었다. 매일 고통이 쌓여갔다.
젠장, 그냥 죽이라고 했지, 그렇게 죽이라고 했나.
그는 가까스로 상체를 세웠다. 초조함이 가득 찼다. 흐릿한 달빛이 그의 방을 채웠다. 바람이 창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는 작은 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였다. 한 숨결마저 녀석의 그림자처럼 느꼈다.
그는 틀림없이 죽었어. 우리 모두 봤잖아. 그런데 왜 그가 여기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올리거의 시선이 벽 모서리에 머물렀다. 침묵을 감싼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명료해졌다. 인간의 형체. 그 그림자는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입 안이 바싹 말랐다. 그는 신중하게 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때, 그것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올리거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것이 정지하였다. 그는 오직 그림자와 마주하는 순간만을 의식했다.
누구요? 당신은 누구요?
악몽을 심하게 꾸더군요.
굵게 갈라진 목소리였다.
누구요? 나를 죽이러 온 거요?
당신을 죽이러 왔다면 내가 왜 당신이 깨기를 기다렸겠소?
그럼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올리거는 벽을 더듬으며 형광등 스위치를 찾았다.
잠깐! 불은 켜지 마시오! 내 얼굴을 보게 되면 당신에게 이로울 게 하나도 없소. 그냥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하시오.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 먼 길을 왔소. 그러니 안심하시오. 내 뜻만 전달하면 곧바로 사라지겠소.
그는 침대 옆으로 의자를 천천히 끌고 와 앉았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일렁이는 불빛 속에 잠시나마 그가 그려졌다. 베레모를 쓴 그의 얼굴 전체는 진한 회색 수염이 덮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길게 자라 어깨까지 내려와 뒤엉켜있었고 입술은 얄팍했다. 그의 복장은 전형적인 야전 군복이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수선 자국이 보였다. 그의 손목과 팔에는 튼튼한 보호구가 착용되었다. 그의 모습은 낡고 흐렸다. 다만 그의 눈빛만큼은 빛났다. 그는 담배를 두 모금 피우고는 이윽고 시선을 올리거에게 돌렸다.
나는 민족해방전선 사령관 아르템입니다. 올리거 씨.
그럼?
네, 흔히 언론에서 떠들어 재끼는 반군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왜 저에게?
조금 전에 말씀드렸지 않았소? 부탁이 있다고.
그건 그렇습니다만, 제가 누구 부탁을 들어 줄 만큼의 인물이….
시시포스에서 가장 부유한 형제라고 들었소.
그럼 돈이 필요한 거군요?
그렇소. 요즈음 전쟁은 돈의 싸움이요. 누가 더 좋은 장비를 갖추었는가가 결국 승패를 결정한단 말이오. 그러니 늘 돈이 부족하오.
그렇다면 형수를 찾아갔어야 했습니다. 제게는 돈을 빌려드릴 권한이 없습니다. 게다가 저희 형제의 돈은 회사 회계 담당 부서의 승인이 필요하고요.
물론 나도 처음에는 당신 형수를 생각했소. 하지만 그녀가 누구요? 러시아 마피아 그미로바 가문의 딸이잖소. 대의명분이 서지 않소.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려고 이 투쟁을 하고 있는데 러시아에서 흘러나온 돈을 쓸 수는 없소. 게다가 마피아는 우리가 피땀 흘려 만들려는 민주 국가의 암적인 존재가 아니겠소. 그들은 우리가 꼭 제거해야 할 적이오.
그렇게 따지면 저희 형제의 돈도 결국은….
나는 당신 형제의 돈을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오. 내 물건을 팔아 돈을 만들어 달라는 것뿐이오.
당신의 물건?
그렇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간직하시오. 다만 절대로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되오. 이것이 만약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당신 형제의 목숨뿐만 아니라 시시포스 시 전체가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오. 알겠소?
시시포스 전체가?
그렇소. 이 이야기는 또한 내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요.
아르템은 꽁초만 남은 담배를 비벼 끄고는 새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가 다시 두 모금의 담배를 피우는 동안, 올리거는 그가 심한 허풍쟁이거나 노련한 거짓말쟁이일 거로 생각했다.
젠장, 이것도 뭔가 불길해. 나는 왜 이렇게 뜻하지 않게 자꾸 사건에 연루가 되는 거지.
내 아버지는 아이올로스 출신이오.
그렇다면….
그렇소. 나도 당신 형제나 마찬가지요. 시시포스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 아니오? 게다가 지금은 시시포스 시에 광역 편입까지 되었으니 그냥 시시포스 출신이라고 해도 무방할게요. 하지만 나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어요. 구소련 시절 아버지는 공산당 간부였소. 한마디로 촉망받는 인물이었소. 그러니 모스크바에서 살았겠죠.
아르템은 담배를 한 번 길게 빤 뒤, 잠시 멈추었다가 훅 내뱉었다.
연기는 그의 입 주변에서 흩어져 무게를 잃어갔다. 마치 공허한 옛날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제 약간의 미소를 띠며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그 날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시시포스로 돌아온 것은 15살 때였소. 아버지는 이곳에 오자마자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었소. 지금 시 청사가 바로 그것이오. 그리고 사방으로 뻗은 넓은 길을 닦았소. 나는 아버지의 직업을 정확히 알지 못했소. 그냥, 아들 얼굴을 거의 못 볼 정도로 바쁘다는 것과 늘 공사 현장에서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인 채 뭔가를 지시하는 모습뿐이었소. 그냥 뭔가를 건설하는 중요한 인물 정도로만 생각했소. 아주 오랜 후에,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참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가 시시포스에서 무엇을 하였는지를 깨닫게 되었소.
시시포스 시를 만들었군요?
표면적으로는 그렇소. 하지만 내면은 달랐소. 나는 그 사실을 아버지의 유품을 우연히 정리하다 발견했소. 아버지는 소련 서기장 직속 비밀 단체의 수장이었소. 그가 관장하는 것은 대량 파괴 무기였소. 그는 소련 핵무기 개발의 핵심 인물이오. 그리고 시시포스는 그의 꿈이 담긴 초대형 프로젝트였소. 아시겠어요? 이 땅 지하에는 무기 저장소가 있소. 그곳에는 지금까지 인간이 개발한 모든 유형의 대량 파괴 무기가 숨겨져 있소.
그럴 리가?
올리거는 후들거리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소. 시시포스 시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고….
하지만 왜 그런 엄청난 사실을 저한테 털어놓는 건가요? 보잘것없는 일개 사업가한테?
아르템은 말없이 그의 배낭에서 서류를 꺼내 올리거에게 건넸다.
이제 불을 켜도 좋소. 그리고 그 서류를 한번 보시오.
올리거는 침대 옆 플로어 램프를 밝히고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축소된 설계도였다. 중앙을 중심으로 마치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선들이 뻗어 있고 마디마디에 깨알 같은 글씨와 표시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표시에는 모두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다. 올리거는 마지막 번호를 확인했다. 44.
모두 44개의 저장고가 이 땅 지하에 만들어졌소. 당신은 아마 내가 어떻게 당신 침실에 몰래 침투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리라 생각하오. 당신의 집 안팎으로 수십 명의 보안 요원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데 말이오.
그럼 당신은 지하로?
그렇소. 당신도 알다시피 시시포스 시에는 시청사를 중심으로 4개의 저택이 동서남북으로 정확히 같은 거리에 세워졌소. 그리고 그 저택의 주인은 최근에 모두 바뀌었소. 2개는 그미로바의 막내아들 이고르로, 나머지는 당신의 형수 안나와 당신. 바로 이 집. 이 저택은 그냥 집이 아니오. 지하 저장고로 연결된 출입구란 말이오.
하지만 단지 내가 이 집 주인이라고 해서 나를 끌어들인단 말이오?
천만에. 당연히 그렇지는 않소. 처음 내가 주목한 이는 당신의 동생 빅토르요. 당연하지 않겠소. 수학과 물리학의 천재. 게다가 나의 대학 후배이자 지금 무기 개발 연구소에 있잖소.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소. 그러니 내게 꼭 필요한 인재란 말이오.
내 동생이 꼭 필요하다고요?
그렇소. 내 물건. 이 핵무기를 적의 심장으로 보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단 말이오. ICBM. 대륙간 탄도 미사일 말이오.
이런! 미쳤소? 당신! 당신은 우리 모두를 죽이려고 하고 있소! 미사일이라니!
오히려 반대요. 우리를 지키기 위함이오. 적들이 모든 준비를 마쳤어요. 알겠어요? 조만간 그들이 사소한 빌미로 쳐들어올 거에요. 이 땅은, 시시포스는 초토화할 것입니다. 내 아버지가 만들었던 모든 것을 그들이 되찾기 위해 이곳으로 가장 먼저 쳐들어올 거에요. 우린 지금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협상을, 말하자면 대화로 풀 수도 있잖아요. 비록 우리가 예전에 러시아의 속국이었지만, 이제 국제 사회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잖아요. 우리 지도자들이 해결할 수도 있잖아요?
우리 정치인을 믿으란 말이오? 젠장, 매일 눈으로 보고도 모르겠어요? 그들 대부분은 친러 성향 정치인이오. 그들은 시시포스에 있는 모든 무기를 몽땅 러시아에게 내어 줄 거예요. 원래 그들이 만든 거라는 명분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준 무기가 다시 우리를 향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단 말이오. 당신 집 지하에 있는 이 무기만이 우리를 지켜내고 우리를 살릴 수 있어요. 알겠어요?
올리거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마치 망치로 정수리를 세차게 얻어맞고 끝없는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혼란을 느꼈다.
젠장, 나는 왜 자꾸 이런 일에 말려들어 가는 거야? 도대체 왜 이런 거야?
올리거는 늘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다. 그저 하루가 어제와 다르지 않고 내일도 다르지 않을 그런 평온함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부재는 그런 그의 소박한 희망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전쟁터였다. 형 니콜라이는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받은 만큼의 고통을 동생들에게 엄격한 규율과 매질을 통해 돌려줬다. 올리거는 그런 형을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동생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몫은 온전히 올리거였다. 집안에서 올리거는 어머니가 되었고 니콜라이는 또 다른 아버지가 되었다.
올리거가 니콜라이를 이해하게 된 것은, 아버지가 재활센터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임종을 맞았을 때였다. 니콜라이는 글썽이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올리거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내 동생. 그동안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내 동생은 내가 직접 때리겠다고.
그 이후, 올리거는 니콜라이의 완전한 조력자가 되었다. 니콜라이의 꿈과 야망을 위해 그는 구정물에 손 담그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형의 성공에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손수 제거했다. 형이 양지에서 빛을 내는 동안, 동생은 음지의 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올리거는 점점 자신을 죽여갔다. 그는 형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지금도 그러했다. 형을 손수 감옥으로 보냈지만, 여전히 그는 형의 그림자였다.
하지만 아르템 씨, 저는 지금까지 모든 일을 형과 같이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쏟아 내는 이 엄청난 사실을 저는 혼자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올리거 씨. 뜬금없이 어느 날 누군가가 나타나 대량 파괴 무기가 어떻고, 전쟁이 어떻고라고 떠벌린다면 당연히 의구심이 들게 뻔합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긴박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 형 니콜라이와도 심각하게 엮여 있습니다.
제 형하고도 관련이 있다고요?
네, 미안하지만 이 자리는 협상 테이블입니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이 나라의 정부군에게 러시아 무기가 비밀리에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브로커가 바로 그미로바입니다. 아시겠어요. 당신 형은 우리의 타겟입니다. 제거 대상이라고요.
그럼 저도?
물론입니다. 올리거 씨.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는 당신 형을 살려주는 대가로 당신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물론 당신의 동생 빅토르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어떻게?
제가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돈이 필요합니다. 아주 심각하게 돈이 부족합니다. 지하에 저장된 무기 리스트를 당신에게 제공하겠소. 그러니 무기를 팔아주시오. 단, 러시아나 정부군과 친한 세력은 제외하시오.
그럼, 우리 형제의 안전은 보장하는 것입니까?
맹세하오.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게요. 그리고 당신 형 니콜라이는 감옥에 있는 게 안전합니다. 우리는 조만간 그미로바를 칠 겁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절대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시오. 당신 형제들조차도.
아르템은 말을 끝내자마자 올리거와 악수하고 신속하게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올리거는 방이 텅 빈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그곳으로 고통이 들어찼다. 늘 이런 식이었다. 다들 비밀이라고만 하였다. 막내 세르게이조차 그에게 비밀이라며 속삭였다.
형! 이건 절대 비밀이야. 형이니까 말하는 거야. 이리나의 딸 나타샤의 생부는 빅토르야. 누구에게도 절대로 말하지 마! 알았지! 특히 니콜라이 형에게는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마. 그가 알면 이리나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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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는 답답해서 눈을 떴다. 빛이 가로막힌 암흑 속에 붉은 등 하나만 외로이 공간을 비추었다. 좁은 장갑차 안에 완전무장 한 스무 명의 특수 부대 요원이 앉아 있다. 차 내부는 긴장과 긴박함이 가득하였다.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저녁 일곱 시에 수송기에 탑승하였고 밤 11시에 장갑차로 갈아탔다. 그리고 지금 거의 자정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도로 위에 있다. 그가 확실하게 느끼는 한 가지는 꽤 먼 곳까지 왔다는 것이다.
한줄기 땀이 그의 이마를 타고 눈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눈을 몇 번 껌뻑이며 시야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그때 장갑차의 진동이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통신 소음이 날카롭게 그의 귓가를 스쳤다. 그는 직감적으로 목적지에 거의 다가온 것을 느꼈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말없이 자신들이 착용한 무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때 소대장이 일어나 세르게이 앞에 섰다. 그는 부대원들을 한번 쭉 훑어보더니 작전 명령을 하달했다.
작전번호 1375. 세부 명령 하달.
그는 시계를 흠칫 한번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시간 공공일칠. 작전명은 민족해방전선 사령관 아르템 생포. 유력한 정보에 의하면 그가 교전 지역을 벗어나 변장 후 홀로 장거리 여행 중, 타겟 목적지에 잠입했다는 근거에 따른 체포 작전이다. 생포가 목적이나 작전의 특수성과 비상성, 긴급성에 따라 사살도 가능하다. 다시 한번 반복한다. 사살도 무방하다. 이상.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갑차가 멈추었다. 갑자기 세상이 귀머거리처럼 조용해졌다. 하지만 3초 뒤, 장갑차 뒷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때부터 모든 소음이 한꺼번에 시작하였다. 동료들의 발소리, 속삭임, 장비 부딪히는 소리, 기계음, 전자음, 호흡소리까지 쏟아졌다.
세르게이가 밖을 나와 사방을 둘러보니 옥수수밭이 시작하는 곳이었다.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밭을 휘감으며 길게 자란 옥수수 그림자를 끄덕거리며 움직였다. 그에게 이런 풍경은 익숙하였다.
젠장, 고향 생각이 절로 나네.
한 줄기 달빛이 실루엣을 만든 밤의 풍경이 그의 체온과 숨결로 스며들었다. 그는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동료들의 동태를 살폈다. 오랜 시간 여행의 여파인지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곧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두 줄로 나누어 그들은 옥수수밭으로 들어갔다. 목표는 밭이 끝나는 지점에 외로이 서 있는 저택이었다. 어둠 속으로 긴장의 장막이 흘렀다. 그들의 강렬한 눈빛이 그 속에 가렸다. 특수 요원들은 걸음마다 사주 경계를 하며 저택으로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세르게이는 호흡을 천천히 하려고 노력했다. 시공간이 정지된 듯한 순간마다, 그는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살리며 긴장을 억눌렀다.
바람이 타겟에 가까울수록 점점 강해졌다. 마침내 저택이 흐린 달빛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세르게이가 생각한 것보다 집은 훨씬 컸다. 그리고 담장도 마치 성벽처럼 매우 높았다. 작전의 위험과 불확실성이 더 크다는 뜻이다.
젠장, 저런 집에서 사는 놈들은 도대체 뭐로 돈을 번 거지?
그들은 풀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소대장을 중심으로 둥글게 섰다. 세르게이는 나이트 비전 장비를 착용했다. 그리고 소대장이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장비를 착용하는 것을 도왔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어 방탄조끼를 습관적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총구에 소음기와 레이저 조준기를 달았다.
대원들은 낮은 포복으로 간격을 벌렸다. 그리고 저택 주변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을 각자의 총구 망원경으로 조준했다. 발사 신호가 곧 떨어졌다. 세르게이는 숨을 죽이고 방아쇠를 당겼다. 몇 번의 픽하는 소리와 함께 경호원들이 모두 쓰러졌다. 곧이어 폭파 요원이 대문으로 잽싸게 달려가 폭발물을 부착하고 돌아왔다.
세르게이는 몸속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것을 감지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곧이어 저택의 대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연기와 불꽃이 마치 축제 현장처럼 흩어졌다. 대원들이 일제히 문으로 달려갔다. 총소리와 섬광이 사방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특수 요원들은 그림자처럼 빠르게 이동하였고 경호원들은 저택의 각 코너에서 저항하고 있었다. 폭발과 난사 소리가 난무했다.
각각의 총알은 저택의 벽과 창에 무수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총에 맞은 경호원들의 비명이 밤의 어둠에 날카롭게 매달렸다. 쓰러진 이의 몸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더디지만 한 발 한 발 전진하였다. 그리고 총격과 폭발이 극에 달하던 순간, 경호원들의 저항이 뚝 끊어진 것을 확인한 소대장이 발포 중지를 명령했다. 흩어진 파편이 가득했다.
총격전의 연기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저택은 죽음의 침묵으로 잠겼다. 다친 특수 요원들은 힘겨운 숨을 들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르게이는 그 순간을 포착해 냉철하게 집안으로 돌진했다. 그가 전진할수록 발걸음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는 반군 지도자를 찾기 위해 몸을 숨길만 한 곳을 샅샅이 뒤지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안방 문을 살며시 연 세르게이는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어둠 속에서 바닥에 엎드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자를 발견했다.
그는 총구를 그의 머리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단호한 소리로 외쳤다.
너의 이름이 뭐냐?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총구를 그의 머리에 붙이고 물었다.
너의 이름이 도대체 뭐냐?
올리거입니다.
올리거?
네, 올리거 흘라디입니다. 살려주십시오.
세르게이는 그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사방을 급하게 훑었다. 아무리 봐도 낯선 집이었다.
여 여기가 어디냐? 여기가 어디냐고?
네? 아 네, 시시포스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올리거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세르게이를 애처롭게 쳐다봤다.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