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상상 혹은 죄와 벌 #01

프롤로그

by 남킹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만큼 들려오는 벨 소리에 눈을 뜬 건 새벽이었다. 대문을 벌컥 열자 두 사람이 낯선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싱그러운 어둠은 짙은 침묵에 누웠고, 나는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작은 성의를 보였다.

혹시 형사님?

그게 통한 것 같다. 그들은 수그러진 태세와 정다운 말씨를 전달했다.

네, 짐작하신 대로입니다.

올 것이 온 것이다. 그래, 이런 날이 결국은 오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날이 오늘일 뿐이다. 죽음처럼.

한 가닥 쓸려오는 한기에 나는 몸을 한번 부르르 흔들며 괜히 과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의 응답은 간단했다.

서로 가시죠

나는 수갑을 차고 구멍 난 양말을 급하게 신고 신에 발을 담근 채 그들이 이끄는 나락으로 침착하게 동조했다. 밤은 어둑한 계단을 수식했고 낮의 따스함을 품었다. 딱딱한 형사의 뒷모습은 내가 보낸 지난날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힘들 수도 있었다는 자책감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쉐보레 차에 올라탄 뒤, 누군가는 운전석에 누군가는 뒷자리에 나를 쳐다보며 불쑥 들어왔다. 그는 남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야릇한 향을 내 콧구멍 바닥에 침울하게 깔기 시작했다. 창은 약간 열려있고 히터는 꺼졌다. 차는 도로를 달리고 별은 차를 따라왔다. 형사는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겼다. 그는 이런 일이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않으며 그다지 내키지도 않는 자신의 숙명을 되새김질하는, 평범하지만 그다지 세속적이지도 않은 내면에 집중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둔한 갈색의 구름이 펼쳐진 빌딩 숲 사이 네온사인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

도시는 꽤 넓으나 경찰서는 가까이에 있었다. 문제는 미어터진 주차장이다. 징글징글하게 차들이 얽혀있다. 형사 입이 더러워졌다.

어떤 놈 새끼가 경찰서 지정 주차장에 파킹하는거야!

결국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하차했다. 좁은 골목이 두 갈래로 벌어지고 아물고 다물어진 곳에 능수버들이 흐느적거리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형사는 내게 물었다.

배는 안 고프죠?

나는 고프다고 했다. 늘 형사가 시켜주는 국밥은 맛있다고 생각했다.

좁은 지하 복도를 지났다. 붉은 커피 자판기가 나왔다. 방은 작고 초라했다. 천장은 하얗다. 내가 앉은 의자는 소복한 에메랄드빛을 발했다. 그들이 번갈아 가며 나를 훑었다. 그리고 흩어졌다. 조금 뒤 한 사람이 들어왔다. TV에서 보는 형사와 비슷했다.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낄만한 게 없는 상황이라 상상의 메아리를 주워 담고 있었다. 그는 침울한 눈과 황망하게 어둡고 무서운 아우라를 풍기려고 하였다. 나는 직업병이라고 단정했다. 나는 그를 보며 그의 뒷 면에 붙은, 전체를 아우르는 유리 너머 인간의 표정과 모습이 궁금하였다. 그들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며 내 진술의 참과 거짓을 밝혀내는 그들만의 독특한 의식을 시작함에 흥분을 느낄 것이다. 나를 심문하는 형사는 눈을 한번, 두 번, 세 번 마주치고 나서야 말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이름과 나이?

그는 나보다 젊었다. 확실하다. 그리고 첫 마디가 반말인지 아닌지 모를 애매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이런 태도가 지니는 속성, 무의미함과 저속함을 지적하고 싶었다.

뭐라고?

그래 이건 나의 대답이다. 하고 보니 참말로 좋은 답변이었다. 나는 당신의 오만함과 치기 어린 담대함으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으므로, 더 이상 협조할 수 없다고 속으로 크게 외쳤다. 의자가 당겨지고 조명이 변함없이 멈춘 공기에 닿아 선명했다. 늘 그렇듯, 이러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나는 형세를 내게 유리한 쪽으로 미화하기 시작했다.

이름과 나이가 뭔가요?

아! 이 얼마나 정다운 올림말이냐? 그래! 너는 내가 바란 그대로의 모습과 형태로 바뀐 자세로 나를 대할 것이다.

송의저, 39살.

나는 협조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저급한 형사가 아니다. 강압적이지도 않고 숨죽일 만큼 긴장을 유발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숨 돌리며 과거 유년 시절의 심문 현장과 비교하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

횡횡한 바람이 불던, 그때 내가 보듬은 나이는 열세 살. 나는 대지의 바람이 해풍으로 쏟아지는 중소도시의 해안가에 있는 나지막한 움막과 같은 소년원에 거주했다. 무엇이든 반항이 늘 순간적으로 튀어나와 나는 뜻하지 않은 낭패와 패배감을 온통 뒤집어쓴 상태로 살았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소실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늘 가슴이 크게 뛰었는데, 후에 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나에 대한 미련이 그다지 남아 있지는 않았다.

나는 소년원에서 사 년을 견뎠다. 출소 후 내가 보낸 시간이 나는 대견하다고 느꼈다. 가끔 성당 같은 곳에서 감사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내면의 침착함과 도도함이 우러나는 미소와 매력적인 태도와 친절한 가슴을 나타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원초적 욕망, 즉 여자에 대한 탐닉을 만족으로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누군가를 구타하고, 학교 옥상 난간에 그를 매단 채 담뱃불로 지지고, 두 번 다시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다리뼈를 다섯 조각으로 부숴버린 나의 이상한 취향을 덮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여기에 끌려올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2018년에 당신은 어디 있었죠?

유럽입니다.

유럽 어디인가요?

독일입니다.

왜 갔나요?

직장 때문입니다. 구매대행 회사입니다.

혼자 갔나요?

네, 저는 늘 혼자입니다.

그래서 여자를 만났군요?

네.

그럼, 거기서부터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네, 형사님.

내가 막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할 참에 국밥이 나왔다. 나는 향긋한 냄새에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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