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상상 혹은 죄와 벌 #02

제나 (Zena)

by 남킹

모든 것의 시작은, 그녀가 내게 보내는 이상한 사진들에서부터였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귀찮게 하거나, 아프게 하거나 아니면 숙연한 외면으로 이끄는 안내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삶에 대한 고통을 잊을 수 있는 방편과 육체적 쾌락에 대한 소박한 희망을 지닐 수 있는 저력이 생겼다. 나에게는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간악한 생각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녀의 사진은 온통 벗은 모습이었다. 물론 예술적인 취향과 멋진 조도를 애써 살피고, 적절한 배경을 일부러 살핀 흔적이, 그녀의 사진 곳곳을 심미적 성숙으로 수식하였다. 하지만 이 사진들의 본질은 다분히 본능적 충동과 미묘한 성적 회유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누가 이런 작품을 마다하겠는가. 어쩌면 모든 게 이것에서 비롯된 것. 생명체의 목적을 살펴보면, 그러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들이 과연 몇 개나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나는 즐기고, 그녀도 좋아하므로 해서 우리는 은연중에 동의하게 되었다.


하루는, 그녀가 내게 오겠다고 하였다. 그녀의 직업은, 지정된 지역을 돌며, 회원 식당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개선 리포트를 마련하는 거였다. 그녀의 말을 빌자면, 그저 한가롭기 짝이 없는 괜찮은 직업이었다. 물론 아주 예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점이 있긴 있었다. 그녀가 미처 찾지 못한 지적 사항을 당국이 발견하여, 그녀의 평가 점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반영할 때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으며, 설령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해서 해고되거나 감봉당하는 일은 없었다. 이 나라는 소문대로 직장인의 천국이었다. 그녀는 마에스타 과정을 졸업하고 줄곧 이 일을 하였다. 게다가 그녀는 여행을 좋아하고, 기차를 즐기며 자동차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평야를 찬미하였다. 그리고 장시간 운전함으로써 생기는 몸 상태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였다. 그러므로 제나는 오랫동안 이 직업을 간직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매달, 내가 머무는 곳에서 불과 4.6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도시의 식당을 방문하였다.


그녀가 나를 찾은 날에 비가 내렸다. 이곳은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드물어서, 나는 그러려니 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줄곧 응시하며 걸었다. 빗방울이 그저 굵어지지 않기 만을 바라는 심정으로 마중을 나갔다. 제나와 첫 번째 만남. 그녀는 대뜸 서류 가방을 내게 맡겼다. 그리고 조용하고 소박한 미소를 잠시 짓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 내게 키스하였다. 나는 그녀를 안았다. 내가 추측하였던 것만큼이었다. 그녀는 손을 제외한 모든 곳에 물풍선을 집어넣은 듯한 탱글탱글한 촉감이, 마치 러브돌이라고 착각이 들 만큼 내밀하게 끌어당겼다. 몸이 즉각 반응하였다. 나는 엉덩이를 조금 뺐다. 그녀의 이가 네게 딱하며 부딪쳤는데, 그러자 그녀는 포옹을 풀고 배시시 웃으며, 백에서 작은 거울을 꺼내 이빨을 비추었다. 지나치게 하얀 이.


일은 어땠어?

나는 그저, 뭘 하나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형식적인 질문을 하였다. 물론 그녀도 나의 질문이 주는 의미에 무신경하였으므로, 그저 형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응, 괜찮았어. 뭐, 항상 그렇지만. 너는 어때?

나? 나야 좋지. 나도 뭐 늘 그렇지.


비가 안개처럼 내렸다. 하늘의 절반은 이미 구름이 사라졌다. 텅 빈 곳으로 하얀 줄이 여러 개 났다. 그 순간, 한 가지 특이한 일이 기억났다. 내가 트럭을 몰고 프랑크푸르트 공항 근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지나가는 항공기가 이상하게 크게 보이는 구간이 있다. 가끔 유튜브나 틱톡에도 영상이 올라왔다. 나는 한 번씩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휴대폰을 창에 고정하고 영상을 촬영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날, 내가 찍은 동영상을 살펴보다 느낀 건데, 왠지 낯이 익은 항공기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당일 이 비행기는 알프스의 어느 높은 산에 추락한 거였다. 사고 원인에 대한 추측이 만무하였지만 – 당연하게도 항공기 사고는 늘 세간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니까 – 최종 결론은, 내가 그 사건을 잊을 만할 때 뉴스에 나왔다. 부기장의 자살 비행. 나는 그 동영상이 그 여객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사실에서, 우연 이상의 의미를 두려고 하였다.


이처럼 큰 사건의 목격을, 순간처럼 사라질 내 인생에서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날, 나는 그다지 영상을 찍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운전대를 잡을 때부터, 나는 <Kwoon><Ayron Norya>에 푹 빠져, 줄곧 반복적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데 제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는 촬영 직전에 더러운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그녀의 자위 영상을 보았다. 무척 야하고 만족스러웠다. 나는 흥분했다. 그녀에게 뭔가를 던져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때마침 그 비행기가 내 앞의 창에 크게 다가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너에게 예전에 보낸 비행기 동영상 기억나?

그녀는 벌써 잊은 듯, 어쩌면 보지 않을 수도 있었으므로, 약간 무안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잘 기억나지 않아. 왜?

응, 내가 보낸 그 비행기가 그날 추락했어. 미안해. 느닷없이 그 생각이 났어. 부기장이 자살 비행을 했거든.

그래?

그녀는 갑자기 빗어진 이 상황이 못내 흥미로운지, 휴대폰을 뒤지기 시작했다. 제나는 화면에 손가락을 꽤 여러번 위아래로 스크롤 한 뒤, 겨우 찾아냈다. 잠시 화면을 보는 듯하더니 내게 물었다.

이거 방송국에 보냈으면 돈 좀 받지 않았을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마지막 비행 모습이잖아. 누가 이런 행운을 잡겠어.

그러게. 그 생각은 미처 못했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까.

아쉽네, 그런 공돈이 생겼다면, 우리 오늘 무척 고급스러운 식당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오늘 이미 이 도시에서 가장 빛나고 우아하고 사치스러운 식당의 주방을 샅샅이 뒤지고 왔으니까.

그래, 뭐라도 건진 거야?

주방은 무척 깨끗했어. 내 손수건보다 하얗더구먼. 그런데 한가지가 우리 모두를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었지.

뭔가 나왔구나?

응, 쥐가 나왔어.

와! 그건 사건인데.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옥상에 있는 물탱크에서 나왔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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