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2

남킹 SF 장편소설

by 남킹


2일

선장은 향긋한 커피 향에 눈을 떴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무거웠다.

잘 주무셨습니까? 선장님.

골렘파이브가 그의 곁에서 큰 눈을 껌뻑이며 은색으로 반짝이는 모카포트 손잡이를 들어 큰 컵에 커피를 다 붓고 찬물을 섞었다. 그리고 쟁반에 담아 그에게 커피잔을 내밀었다.

온도가 적당한지 봐주시겠습니까?

고맙네.

강선장은 잔을 들어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씁쓰레한 커피가 입안에 퍼지다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시큼한 맛과 구수한 맛이 어우러져 그의 두툼한 입가에 미소를 전달했다. 누군가는 커피 중독이라고 했지만, 그는 홀림이라고 정의했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한 그 느낌이 언제나 좋았다. 고통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청소년 시절을 구원한 것 또한 홀림이었다.

소년원 옥상에 누군가 설치한 천체망원경. 매일 밤 그는 잠든 동료들 사이를 조심스레 헤집고 옥상으로 올라가 하늘을 들여다봤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들은 더욱 빛나고, 우주의 신비는 더욱 감미로워졌다. 도시의 불빛이 혼잡한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곳은 마치 다른 세계로의 문이 열려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점점 마음이 빼앗겼다. 바다에서 쉼 없이 불어오는 바람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듯 부드럽게 그의 뺨을 스치고, 별들은 고요한 속삭임으로 그의 귀를 매료시켰다.

저 광활한 우주 속엔 무한한 이야기가 감추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은하수가 흐르는 듯한 희미한 빛줄기는 마치 시간의 강을 헤엄치는 듯했다. 그 속에는 미래의 호기심이 녹아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만큼, 그는 하늘과 하나가 되어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렸다. 그는 비로소 삶의 혼탁함에서 빗겨날 수 있는 몰입을 경험했다. 그에게는 작은 우주여행이었다.

30분 뒤 아침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선장님.

골렘파이브가 샌드위치를 잘라 그에게 내놓으며 말했다.

안소진 대원은 어떤가? 아직도 의식이 없는가?

네, 아직 변동사항은 없습니다. 하지만 뇌파 기기와 뇌 자기공명영상에 따르면 뇌의 전기적인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정상인의 수십 배에 달할 만큼….

그럼 다행이군. 그녀에게는 그게 정상이니까.

그리고 헬리오파우스(Heliosphere) 우주 정거장에서 보내온 축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뭐, 내용은 안 봐도 되겠지?

네. 지극히 형식적인 인사치레입니다.

*************

회의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선장의 등장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다들 잘 주무셨습니까? 뭐, 사실 7년 동안 줄곧 주무신 분들에게 할 아침 인사는 아니지만….

대원들이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웃음이 잦아들 때까지 강선장은 대원 하나하나의 안색을 살폈다.

혹시 긴급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 있나요?

선장은 질문을 던지고 다시 한번 대원들을 훑었다.

없으면 예정된 일정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송도영 박사님은 오늘 여기 남아서 이미 전달받은 데로 일부 방사선균류의 갑작스러운 사멸 원인을 파악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동추 대원은 오늘 저와 함께 검은 아리아 계곡 탐방에 나설 겁니다. 각종 분석 장비와 보호 기구 그리고 잠수정을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살만 팀장님은 김재준 박사님, 빅토르 대원과 함께 테라포밍 중앙 센터 돔으로 가셔서 지금까지의 진척 사항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질문 있나요?

골렘 패밀리는 데려가는가요?

아, 깜빡했군요. 골렘원과 투는 안소진 대원 간호를 맡을 겁니다. 쓰리와 포는 살만 팀장님과 함께, 파이브와 식스는 저와 함께 가겠습니다. 출발은 오전 10시로 하겠습니다. 행성 날씨와 외부 환경 변화는 헤르메스가 실시간으로 전달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통신 장비를 열어두겠습니다. 그러니 약간의 변화에도 서로에게 연락하는 것 잊지 마시기를 바라며 약간의 의심에도 무조건 철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으니까요.

*************

선장은 눈 앞에 펼쳐진 모습에 바짝 긴장한 듯 침을 꿀떡 삼켰다. 검은 아리아 계곡.

가장 밝은 빛의 그림자가 가장 어둡다더니 정말이군요.

오동추 대원이 그의 옆에서 신음하듯 읊조렸다.

환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행성의 밝은 면을 지나자마자 왕복선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반사하는 곳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그들을 맞았다. 왕복선은 천천히, 안정적으로 깊은 계곡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안 되겠어. 헤르메스. 모든 외부 조명을 최대로 밝혀라.

네.

강렬한 빛을 발하는 센서들이 왕복선의 주변을 점점 크고 선명하게 밝혔다. 빛에 드러난 곳은 깎아지르는 절벽이었다. 크고 작은 돌과 암석들이 마치 쏟아질 듯 위태로운 광경이 계속 이어졌다. 왕복선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압도적인 어둠과 고요함이 주변을 감싸고 있다.

헤르메스! 몇 킬로 하강한 거지?

현재 3.7km 하강했습니다.

물이 있는 곳까지는 얼마 남은 건가?

곧 도착합니다.

미지의 것에 마주한 선장은 기대와 두려움이 휩싸였다. 이윽고 왕복선 엔진에 분수처럼 흩날리는 물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의 바닥은 무한한 심연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물로 뒤덮여있었다. 그 심연의 바다는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어 보였다. 물의 표면은 달그락거리며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광채도 아닌 것이 분명하였다. 왕복선은 조용히 수면 위를 미끄러져 가며 주위를 살폈다.

헤르메스! 이 웅덩이는 얼마나 넓은 거지?

아하, 웅덩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스럽습니다. 선장님. 지나치게 넓거든요.

넓다고?

우리는 지금 계곡에 난 구멍으로 들어 온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하지만 라이더스 측량(LIDAR Survey)으로 스캔한 결과는 놀랍습니다. 끝없이 넓은 동굴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 크기는 5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습니다. 지구의 흑해보다 큽니다.

이럴 수가?

사실입니다.

그럼 땅속에 바다가 있단 말이야?

네.

그런데 왜 이걸 초기 개척선이 발견하지 못한 걸까?

그들은 햇빛이 비치는 낮의 지역만 조사했습니다.

그럼 이 바다는 오직 어두운 지역에만 분포한단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암흑 속에 끝없이 펼쳐진 심연의 바다라?

선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헤르메스. 깊이는 알 수 있겠나?

알 수 없습니다. 어떤 광선도 반사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지나치게 깊거나 혹은 빛을 흡수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거나. 깊이를 알려면 현재로서는 직접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헤르메스의 말에 선장은 암울한 기운에 빠지기 시작했다.

젠장, 이런 곳이라면 어떤 기괴한 생명체가 산다고 해도 믿겠어요.

오동추 대원이 선장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 순간 헤르메스의 전자음이 다시 울렸다.

한가지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선장님.

뭔가?

해수면에 물풍선 모양이 포착되었습니다.

*************

그곳으로 점점 가까이 가보니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빛에 반사된 방울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춤을 추는 듯 흐느적거리다 공중으로 사라졌다.

해저 화산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니면 생명체가 내뿜는 공기일 수도 있고.

잠수정은 준비되었는가?

선장은 오동추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선장님.

자네는 여기 남게. 나는 골렘식스와 함께 수면 아래로 내려가 보겠다.

혹시 모르니 무기를 장착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어느 정도 깊이까지 내려가야 할지 모르니 가벼운 것을 장착해주게.

네, 그럼 자기방어용 수중 소나 (Sonar) 및 음파 포, 소형 수류탄, 레이저 타격과 에너지 무기 정도만 준비하겠습니다. 승인 절차 부탁드립니다. 선장님.

*************

선장과 골렘식스가 잠수정에 올라타자 왕복선이 서서히 해수면으로 접근했다. 왕복선 바닥이 물에 잠길 때쯤 외부 경고등이 번쩍이며 요란하게 울렸다.

선장님. 플로팅 도크 (Floating Dock) 시작하겠습니다.

스피커에서 난 오동추의 목소리가 에코처럼 울려 퍼졌다. 도크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러자 바닷물이 굉음을 내며 잠수정으로 몰려들었다. 잠수정이 파도에 밀쳐 요동치기 시작했다. 선장과 골렘식스가 손잡이를 잡고 버텼다. 전면 스크린에 물이 점점 차올라 마침내 잠수정 전체가 물속에 잠겼다.

분리 시행합니다. 선장님.

오동추의 말과 함께 잠수정이 왕복선에 떨어져 나와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모든 통신 열려있습니다. 선장님. 잘 다녀오십시오.

왕복선에서 완전히 분리된 것을 확인한 선장은 골렘식스에게 명령했다.

엔진 시동. 하강 시작.

골렘식스가 패널 정면에 있는 붉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잠수정이 잠에서 깬 듯 부드럽고 저음의 진동으로 전체 구조물을 흔들면서 서서히 나아갔다. 선장은 운전대를 잡고 천천히 당겼다. 수평으로 가던 잠수정이 서서히 각도를 아래로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둥근 창밖은 온통 암흑천지였다. 잠수정 전면 헤드라이트조차 바로 코앞의 장면만 비추었다. 결국 운전은 패널 전면에 붙은 각종 모니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선장은 차분하고 숙련된 동작으로 잠수정을 운전했다. 점점 내려갈수록 잠수정 내부가 환하게 비췄다.

내부 조명이 너무 밝은 것 같다. 모두 소등시켜라.

골렘식스가 스위치를 모두 내렸다. 그러자 전면 시야가 좀 더 밝아졌다. 선장은 잠수정이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음을 확신하고 시스템 점검 시행을 골렘식스에게 명했다.

조명 시스템 이상 없음. 통신 시스템 이상 없음. 음향 탐지기 (Sonar System) 이상 없음. 수집 넷(Net) 및 트롤링 장비 이상 없음. 카메라와 비디오 시스템 이상 없음. 바이오로그거(Bio-logger) 이상 없음. 바이오프로브(Bio-probes) 이상 없음. 유전자 시퀀싱 장비 이상 없음. 조직 샘플러(Tissue Sampler) 이상 없음. 수중 드론 (ROV, Remotely Operated Vehicle) 이상 없음. 센스 장비 이상 없음. 바이오마커(Biomarkers) 분석 장비 이상 없음. 로봇 팔 (Manipulator Arm) 이상 없음. 음압 컨테이너 이상 없음. 모두 정상입니다. 선장님.

좋아. 그럼 샘플링 시작하도록.

네. 선장님.

골렘식스가 바쁘게 잠수정 내부를 오고 갔다. 선장은 줄곧 앞을 바라보며 혹시 모를 미확인 물체와의 충돌 대비에 정신을 집중했다. 심해로 들어갈수록 온도가 떨어지며 압력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가끔 패널에 표시된 외부 온도와 압력을 지켜봤다.

잠시 후 골렘식스가 선장을 불렀다.

액체 성분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선장님.

어떤가?

물 97%, 염화나트륨(NaCl) 3.5%, 소량의 마그네슘 (Magnesium), 칼슘 (Calcium), 칼륨 (Potassium), 산소 (Oxygen), 이산화탄소 (Carbon Dioxide), 질소 (Nitrogen), 인 (Phosphorus)을 소량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기합니다.

신기하다고?

네. 오염되기 전 지구의 바닷물과 아주 흡사합니다.

그래? 태양계 밖 외계 행성의 바다가 지구와 같다?

선장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럼 생명체도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잖아?

네, 잠시만요. 음…. 그러니까 유기탄소 농도가 0.1mg/L(밀리그램/리터) 로 나왔습니다.

그럼 어떤가? 이것도 지구와 흡사한가?

대략 지구의 10% 정도 됩니다.

그럼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구만.

네. 아주 높습니다.


샘플링을 계속하도록…. 그리고 모든 생명 탐지 시스템을 가동하고 자세히 분석하기를 바란다.

네. 선장님.

그동안 잠수정은 조용하고 균형 잡힌 상태로 심해로 끝없이 내려갔다. 불빛은 물속으로 파장되면서 곧 희미해지고, 대신 흑회색의 단조로운 세상이 줄곧 이어졌다. 모니터에 비친 잠수정의 조명 아래로는 푸른 빛이 옅게 번지고 있었다. 어색한 정적이 계속되었다. 선장은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 채 어둠 속에서 왠지 모를 뭔가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공포와 새 생명체에 대한 기대감을 동시에 느끼기 시작했다.

현재 잠수정 깊이는 5km를 돌파했습니다. 선장님.

골렘식스의 말을 듣고 선장은 온도와 압력을 체크했다. 온도는 1°C에서 계속 머물렀다. 하지만 압력은 500기압까지 치솟았다.

우리 잠수정이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지?

900기압까지입니다.

그럼 대략 9km까지는 내려갈 수 있다는 뜻인가?

네. 잠수정 매뉴얼에 따르면 그러합니다. 하지만 장담은 못 합니다.

무인 수중 드론은 어떤가?

11km까지입니다.

왜 그렇게 설계했지?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이니까요.

*************

마침내 잠수정은 9km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여전히 이 심해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무인 수중 드론을 내보냈다. 골렘식스가 드론을 조종했다. 선장은 드론에 장착한 4대의 카메라가 보내오는 각각의 영상을 유심히 지켜봤다. 지금까지 화면에 비친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뿐이었다. 생명체는 고사하고 부유하는 먼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11km까지 내려왔습니다. 선장님. 어떡할까요?

골렘식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선장을 쳐다봤다.

계속 내려가 보자고.

하지만…. 아무래도 안전이….

어쩔 수 없는 것 같네. 적어도 심해 깊이는 파악해야 하니까.

드론은 점점 더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선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에 집중했다.

12km 넘었습니다. 선장님.

계속 내려가게.

이윽고 드론이 버거운 듯 움찔움찔하면서 오작동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더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선장님.

조금만 더.

조종장치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골렘식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중 드론이 삽시간에 찌그러졌다.

완전히 맛이 갔습니다. 선장님.

골렘식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선장을 쳐다봤다. 하지만 선장은 모니터의 화면을 정지시킨 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뭔가 있어. 여기. 여기에 뭔가 있단 말이야.

골렘식스가 황급히 모니터를 쳐다봤다. 화면 속에는 흐릿하지만 매끈한 곡선의 모습을 한 인공구조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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