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시포스

진정한 예술가 서태지

초단편소설

by 남킹


내 이름은 서태지. 올해 스물아홉. 물론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으며 사뭇 중요하기까지 한, 나를 잉태하신 어머니는 서태지 팬이었다. 비록 하룻밤 불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내 아버지라는 작자는, 고귀한 국방의 의무를 수료함과 동시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완벽한 빤스런을 시행하여, 외가 혈족의 공분을 삼과 동시에, 청순가련함의 그 자체를 구현하셨던 어머니에게 미혼모라는 주홍글씨를 남기셨다. 하지만 그분의 우수한 허우대를 구성하셨던 DNA를 온전히 물려받은 나는, 흐르는 세월 속에 세포의 정상적 분화와 발달이 골고루 잘 형성되며, 종국에는 사랑의 샘에 풍덩 빠진 듯, 자고 나면 넘쳐나는 매력덩어리를 골고루 철철 흘리고 다녔으니, 그 향에 취한 파리들이 어찌 꼬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 절정의 순간은 내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고 대학에 찰거머리처럼 떡떡 붙은 내 친구들의 의기양양하지만 소박한 모습의 졸업식 후 행사에 반해, 지난 3년 동안 줄곧 밑에서 전교 1등을 한 나는, 대학 응시조차 꼰대 같은 담임에게 거부당한 상태였지만, 나의 사회 출정식을 사무치게 반가워하던, 미자 숙자 은혜 광자 혜숙 인해 혜교 도연이가 저마다의 경제적 능력에 맞춘 수려한 꽃다발을 내게 안기니, 이 놀라운 장면을 예의주시하던 많은 학부모의 가슴에는 다음과 같은 의구심이 맺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쟤는 서울대 법대라도 들어간겨?‘


아무튼 장대한 꿈을 안고 우리 사회의 판도라 상자를 속히 열고 싶었던 나는, 다음날 병무청을 방문하여 성스러운 병역의무를 조속히 결행하여 신속하게 마무리를 하였으니, 이름하여 사회복무요원. 이를 본 동기들은 시샘이라도 하듯, 똥 방위라고 빈정댔지만,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잘난 청년으로서의 자긍심을 한껏 북돋워 줄 훌륭한 보직을 배당받았으니, 동부공원 녹지사업소 소속 개나리 공원 관리사무소 근무. 나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산책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철학자 칸트처럼, 빈틈없는 시간에 아리따운 개나리 공원 산책길을 고귀한 사색의 문으로 여기고 주변의 정리 정돈과 청결 유지를, 깨달음을 수행하는 비구니처럼 청아한 마음으로 수행하였으니, 이를 감탄과 탄복의 시선으로 보시던 동부 공원녹지사업소 소장님의 마음 한구석 저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울림을 그분이 어찌 듣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쟤는 진정으로 청소를 예술로 승화시킨겨!‘


아무튼 가치 있는 하루를 소중하게 사용한 복무기간이 훈훈한 결말로 마무리됨으로써 (소장님은 내게 눈물까지 보이셨으니….) 나는 이제 페가수스처럼 날개를 달고 훨훨 이 사회의 정점으로 향해가는 고졸 성공 신화를 매일 같이 상상하며, 규모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분위기의 살벌함에 개의치 않고, 총성 없는 전쟁터, 바야흐로 영업사원에 이력서를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날이며 날마다 나는 뽀얀 담배 연기 속에 자신의 아름다운 판타지 세상을 흠집 내는 악당들을 때려잡기에 여념이 없으신 피시방 고객분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알바 이력 한 줄 없이 깨끗하다 못해 삭막하기까지 한 내 소중한 이력서를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닥치는 대로 지원하였으니, 어느 순간 내가 보낸 이력서 개수가 적게 잡아도 우리나라 기업 수 총개만큼 되었을 때쯤, 강원랜드 건물 끄트머리가 간신히 보이는 어느 한적하기 그지없는 회사 겸 공장에서 연락이 왔으니, 이 감격을 어찌 나 혼자 삭히고 앉아 있을 수 있었겠나? 내 소중한 보석 같은 미자 숙자 은혜 광자 혜숙 인해 혜교 도연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미남 서태지의 면접 사실을 전하고, 그녀들이 광속으로 내게 보낸 하트 이모티콘을 훈장 삼아, 나는 그날로 동부 시외터미널 6번 라인에서, 막 뽑은 듯 삐까번쩍하는 대형 버스를 타고 강원랜드로 고고.

나는 당당하게 면접관에게 자부심을 듬뿍 담은 눈길로 이렇게 외쳤다.

“두고 보십시오! 꼭 세계적인 회사로 키우겠습니다. 사장님.”


이에 감복한 사장님은 그날로 내게, 잉크 자국도 채 마르지 않은 취업 계약서에 굵고 빨간 도장을 꾹 찍으시고 나의 엄지손가락에 빨간 칠을 하여 도장 옆에 골고루 손가락을 돌려가며 지장을 바르셨으니 서태지 인생의 봄날은 이렇게 화려한 개화를 꿈꾸게 되었도다!


일주일간의 현장 실습을 명받고 사무실에서 열여섯 발자국 옆에 있는 공장으로 달려 가 보니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는 탐스럽기 그지없는 까만 연탄들…. 나는 하얀 면장갑이 까맣게 변색하는 감동으로 다가올 때까지 굵고 짠 땀방울을 혓바닥으로 날름날름 음미해가며, 다들 힘들다고 하는 입사 첫날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였으니, 어느새 나의 늠름한 현장 모습에 반한 사장님과 사장님 아내이자 부장이신 고 여사께서는 이구동성으로 과한 칭찬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연탄 배달을 예술로 승화시킨겨!”


어느새 창공을 수식하던 새들도 짝을 찾아 떠나고, 저 지평선 너머 산 끄트머리에 겨우 매달린 햇살은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듯, 한잔 걸치고 뻘겋게 달아올랐으니, 무던한 표정의 사장님이 손수 내 침소를 안내하는 수고로움을 실천하시니 나로서는 그저 이렇게밖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인복 하나는 타고 난겨!‘


숙소는 생각보다 좁고 지저분하고 물은 흐리멍덩한 황톳빛이요 창은 더럽고 바닥은 냉방이었지만, 이 모든 편의 시설이 자애로우신 사장님이 하사하신 공짜 방인지라, 나는 그저 감지덕지하며 선량한 마음을 쏟아 기도하니 부디 만수무강하옵소서 우리 멋진 사장님!


1월의 비 Book Cover (1).jpg
거짓과 상상 혹은 죄와 벌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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